[채선홍의 스타트업 팁]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것이 위기
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인공을 기다린다
한글이나 워드로 작성한 파일을 저장할 때 무심코 클릭하는 아이콘을 ‘플로피 디스크’ 모양에서 따온 걸 아는 ‘요즘 사람’은 얼마나 될까? 스마트폰의 ‘전화 걸기’ 아이콘이 유선전화기 시절의 ‘수화기’ 모양이라는 것도 언젠가는 이해하기 힘든 세대가 나타나겠지.
사소하지만 이제는 흔적만 남아버린 것들을 볼 때마다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한다는 걸 새삼 느껴. 과거에는 당연하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는 변형되거나 더욱 진화해서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때도 있고, 아예 사라져 버린 것들도 있어. 백악기, 쥐라기 또는 기원전·후로 나뉘듯 세상은 어떠한 때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변하기도 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 세상으로 나뉠 거라는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에이. 설마 그 정도까지야’라는 심드렁한 반응이 대다수였어. 그런데 지금은 ‘아~세상이 또 크게 변하는구나’라는 탄식과 ‘이제야 내 시대가 도래했구나’라는 기쁨이 공존하는 것 같아. 우리에게 큰 파도가 몰아치고 있는 상황이야. 파도를 거슬러야 할지, 아니면 타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비대면 그리고 콘텐츠·문화의 시대
재레드 다이아몬드라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하교(UCLA) 교수가 쓴 <총, 균, 쇠(Gun, Germs, and Steel)>라는 책이 있어. 대학 다닐 적 필독서라고 귀가 따갑게 듣다가 무심코 첫 장을 펼쳐봤는데, 그때부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있어.
굉장히 재미있는 유머나 자극적인 상상력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문명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증을 선사하는 지극히 학문적인 책이었지. 요약하면 세상이 크게 변화했던 시기에는 총이라는 무기, 균이라는 전염병, 쇠라는 발명의 산물이 문명의 주류를 움직였다는 내용이야.
그런데 여기에 현재에 맞춰 몇 가지 더 추가해도 될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총, 균, 쇠 그리고 인터넷과 춤은 어떨까? 이미 전통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이뤄졌던 이런 활동들이 인터넷의 출현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온라인으로 활동영역이 확대된 지 오래야.
최근에는 아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주류가 이동하고 있는 경향이 보여. 그리고 ‘춤’은 ‘문화’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 같아. 그 예로 BTS나 블랙핑크를 들 수 있는데, 이 외에도 드라마, 영화, 음식, 음악, 패션, 뷰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
이런 흐름에 힘입어 콘텐츠나 게임, 엔터테인먼트, 개인방송 장비 관련 스타트업이 부쩍 관심을 받기 시작했어. 게다가 온라인 배송, 주문이 폭주하면서 신선식품부터 조리식품까지 집 혹은 사무실로 바로 배송해주는 시대가 됐어.
외출이 줄고, 대면 만남을 자제하면서 반려동물 시장 역시 급속
로 확장되고 있어. 사내 회의나 교육도 온라인 화상 툴을 통해 기존의 오프라인 생활방식을 바꿔나가기 시작했지. 한편으로는 여행·숙박업, 오프라인 교육, 유흥업, 노래방 등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최악의 상황에 비명을 지르고 있어.
자국보호주의가 강화되는 시대
코로나19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가 출입국 제한과 격리•보호를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였어. 그러면서 국가 간 외교적 마찰도 발생하고, 경제적으로 우호적이었던 나라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몇몇 나라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느낄만한 사건들도 발생하더라고.
지금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해외 소식을 살펴보면, 베트남, 미국, 일본 등 다수의 국가와 우리나라 간에 물적·인적 교류에 있어서 많은 사건과 해프닝이 일어났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바이러스 감염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자국 산업과 경제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자연스레 시행하면서 내수보다 수출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에게는 큰 위기가 도래했어. 굴뚝 없는 공장이라고 불리던 관광업에 치중한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와 관광도시들은 순식간에 실업률이 높아졌어. 그러면서 “코로나19에 걸려 죽으나 굶어 죽으나 그게 그거”라는 자조적인 인터뷰를 하기도 했어.
타국에 대한 경제적 보복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내 대응하는 국가 간 싸움에 많은 기업의 희비가 갈렸지.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듯해. 모든 국가가 방역 제품이나 백신을 비롯해 4차 산업혁명에 더 속도를 낼 거야. 그리고 이왕이면 자국 기업과 국민에게 유리한 어드밴티지를 준비하겠지.
상반기 스타트업계에서는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쏙 들어갔어. 하반기가 돼서야 다시 슬슬 ‘글로벌’에 대한 담론이 살아나기 시작하겠지만, 여전히 해외진출을 망설이고 있거나 한동안 생각조차 안 하겠다는 의견이 많아.
반면, 꼭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현지어로 된 애플리케이션을 론칭하거나 온라인 직거래 비중을 높이는 스타트업들이 늘고 있어.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한류 문화 호감도가 나날이 좋아지는 상황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이지.
국가가 통제한다고 모든 것이 막히는 시대는 아니야. 수많은 정보와 다변화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오히려 더욱 강렬한 니즈를 만들어내는 시대거든. 특히 코로나19 시대에 우리나라는 우수한 질병 대처와 방역 능력으로 이전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어.
우리만 느끼는 게 아니라 실제로 해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어. 다른나라에서는 자국보호주의가 심화될 상황이 역으로 우리에게는 독보적으로 글로벌화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측해볼 수 있어.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고객, 새로운 비즈니스의 파도
2019년 일본에 갔을 때, 현지에서 받았던 많은 피드백 중 유독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 있었어. 우리가 준비하고 있던 플랫폼 서비스를 소개한 자리에서 “스마트폰이 없으면 이 플랫폼은 사용하지 못하는군요”라는 질문에 잠시 어리둥절했었거든.
일본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생각보다 낮다는 사실과 여전히 편의점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하는 비율이 독보적이라는 걸 몰랐었어. 그래서 굳이 애플리케이션으로 체험하고 구매하는 게 일본 시장에서는 큰 메리트가 없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
미국 시장 조사기관인 퓨 리서치에서 2019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스마트폰 보급률이 가장 높은 곳은 95%로 한국이고, 일본은 66%로 14위더라고. 게다가 소셜미디어 사용자 비율은 한국이 76%로 2위인데, 일본은 43%로 평균치인 67%보다 더 낮았어. 선진국 중 최하위 수준인 거지. 심지어 멕시코나 필리핀,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도 45% 이상인데 말이지.
그런데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일본 사회에서도 스마트폰 보급률을 높이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진자의 이력 등을 확인하는 것에 대한 뒤늦은 논의가 크게 이슈가 되고 있어. 더불어 정보기술(IT) 정책을 다시 손보고 있고, 한국을 향한 시기와 질투, 부러움을 비롯해 위기감을 매일 언론을 통해 어필하고 있지.
지금은 외교 정치적인 상황으로 냉각된 한일 간의 시장 흐름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 정보기술 기업들은 기대감이 점차 커지고 있어. 이전과 달리 새로운 니즈와 고객, 비즈니스가 생겨나면서 일본 시장에 원활하게 진출할 수 있는 지름길이 생겼다고 보는 거지.
어찌 보면 일본이 모든 산업영역에서 우리보다 뛰어나다는 막연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사실은 우리가 더 잘하고, 앞선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위드(with) 코로나’와 ‘비욘드(beyond) 코로나’ 시대를 고려할 때, 우리가 새로운 관점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점유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되는 시기가 아닐까? 꼭 일본뿐만 아니라 러시아나 브라질, 동유럽 국가들에서 이전과 다른 비즈니스 기회가 계속 찾아올 거야.
또 지금은 제조업이 매우 힘든 시기지만,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나 손소독제, 검사 키트를 비롯한 방역제품들이 품귀 현상을 보이면서 중국이나 베트남 제품보다 수량은 뒤처져도 품질로 인정받고 있어. 거기에 한국이란 브랜드가 입혀져 제조한류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 안전과 신뢰라는 가치를 더하는 한국제품들로 말야.
사실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어. 우리 회사도 그 중 하나지. 신규채용은 언감생심이고 오히려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하고, 고정비를 줄이기 위한 비상경영 체제로 신사업을 줄줄이 연기하는 상황이 대부분일 거야.
일단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에 오늘만 보일 거야. 하루하루 버티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느라 피폐해져 있을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잠시나마 희망을 전하고 싶어. 오늘도 수고 많았고, 내일도 고생이 많을 우리 대표들! 꼭 모두 살아남아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