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세계와 사물을 달리 보는 눈과 마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예사롭지 않게, 의미 있게 보는 이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그리고 그 눈과 마음의 결과물이 바로 작품이다. 여기 두 개의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주차장 풍경을 그린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길가에 놓인 돌을 찍은 사진이다. 우선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부터 보자. 

김현정, 끈적한 밤, 목소리 캔버스에 유채,  90.5x116.3cm,, 2010
김현정, 끈적한 밤, 목소리 캔버스에 유채, 90.5x116.3cm, 2010

지극히 평범하고 누추한 어느 주차장의 밤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한갓 비근한 일상의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늘 보던 대상이자 수시로 접하던 사물임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이유를 알 수 없이 다가와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거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김현정이란 작가는 어느 날 밤 건물 옥상에서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어둠이 깔리고 어디선가 들어오는 노랑 조명과 그 불빛에 의해 드러나는 주차장 바닥, 노란색선, 그리고 트럭과 자가용 한 대가 덩그러니 놓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장면이 기이하게 말을 건네는 것도 같고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딱히 언어나 문자로 설명하거나 기술할 수 없다. 모든 것들을 꿈틀대고 끈적이며 어떤 소리들을 내지르는 것도 같았다. 누추하고 괴이하면서도 다소 눈물겨운 일상의 풍경이 자꾸 말을 건넨다. 작가는 그 모습을 늘 보았고 오래 전부터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시선과 마음을 붙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 마디로 갑자기 ‘필’이 꽂힌 것이다. 그런 현상을 이른바 ‘아우라’라고도 말한다. 그러니까 주차장 바닥과 주차된 차, 노랑 불빛, 여기저기 흩어진 시시한 물건들과 적막함, 인적의 부재 등이 총체적으로 묘한 분위기를 만들며 자신을 사로잡은 것이다. 비로소 그 대상들과 작가의 교감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한갓 평범한 풍경과 사물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다가오는 것을 체험하는 일이다. 이른바 접신이자 사물과의 교감이며, 상상력이 마구 작동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해서 사물은 주체가 되어 그것을 바라보는 이와 대등한 존재로 길항한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감지하는 것을 그리는 일이 회화다. 김현정은 자신이 본 그 주차장 장면을 다시 화폭에 옮겨놓았다. 이 그림은 단지 특정한 주차장 풍경을 재현한 것이 아니다. 늦은 밤 옥상에서 내려다 본 주자창이 자신에게 주었던 인상, 경험, 기이한 만남의 기억, 그 아우라에 도달하려는 제스처다. 따라서 모든 그림은 무지하게 애매한 것을 그리려는 허망한 시도일 수 있다. 단지 자신을 날카롭게 찔렀던 한 순간의 분위기, 감각을 재현하고자 하는 일인데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리려는 시도가 다름 아닌 회화/미술이라는 얘기다. 

이성희, No.4 (plants). 컬러사진
이성희, No.4 (plants), 컬러사진

또 다른 작가의 시선을 보자. 한 장의 사진이다. 허름한 벽면에 배경으로 드럼통이 하나 놓여 있다. 뜬금없이 놓인 드럼통과 벽면은 흔하고 흔한 일상의 장면이다. 드럼통이 왜 그 자리에 놓여있는지 의아스럽다. 이곳은 어디일까? 허름하고 누추한 장소임을 유추시키는 시간의 흔적과 퇴락한 사물들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무심하게 놓인 드럼통과 우연히 발견한 작가는 이를 사진으로 담았다. 무슨 설치미술을 보는 것도 같다. 벽과 드럼통은 사람이 부재한 자리에 주인공이 되어 현존한다. 그러자 우리는 이 사물들을 오랫동안, 고요히 응시하게 된다. 이성희란 사진작가가 어느 날 길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사진으로 찍은 사물, 공간이다. 자신의 삶의 언저리를 배회하다가 문득 접한 대상이고 세계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소소한 사물의 초상은 참으로 볼품없고 초라하다. 무관심 속에 버려진 이 사물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대상을 발견한 이에 의해 비로소 사물/대상은 생기와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사실 사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 방식에 따라 그 외연이 달리 보일 뿐이다. 작가는 이상하게 자신의 시선을 붙잡은 대상, 사물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작가는 바라보는 자이고 반성하는 이다. 이 바라봄은 특정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동시에 작가 내부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문득 자신의 내면을 그 대상에서 발견했다. 알다시피 사진 찍는다는 행위란 스쳐 지나치거나 무시될 수 있었던 사물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어 특별한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진의 프레임 안에 사물이 들어옴으로써 매우 평범한 그 일상적 사물은 비로소 시각적인 의미를 지닌 특별한 그 무엇이 된다.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작가 자신의 마음의 결에 의해서이다. 기이하면서도 쓸쓸하고 아이러니한 이 풍경은 결국 작가가 세계를 보는 눈이고 마음이다. 바로 그것이 미술이고 예술이다. 그렇게 사물과 세계를 보고 읽으며 이를 형상화하는 일이 다름 아닌 미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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