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을 윤이상의 음악으로 물들인 ‘청년 윤이상 연주단’ 첼리스트 이하나

 

지난 6월 4일, 서대문구 연세대 교정에 있는 ‘금호아트홀 연세’에 약 서른 명의 학생들이 오디션을 보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바이올린,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클래식 학도들로, 8월 25일부터 9월 17일까지 매주 금·토요일에 문화역서울284, 윤동주문학관, 서울로7017, 다시세운광장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윤이상 음악을 들려줄 <프롬나드 콘서트>에 참여할 연주자들이다. 프랑스어로 ‘산책’이라는 뜻을 가진 ‘프롬나드’를 제목으로 정한 이번 콘서트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고(故) 윤이상(1917~1995)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독일에 공부하러 갔을 때 베토벤, 브람스 등 여러 곡들 사이에서 어떤 곡이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었어요. 문득 윤이상 선생님의 곡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어려서부터 국악을 좋아했거든요. 어른이 되어서도 왜 진작 국악을 공부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으니까요. 윤 선생님은 첼로로 가야금이나 거문고 등과 같이 우리나라 고유의 소리를 냈습니다. 이 점이 제겐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윤이상의 현대음악을 들려줄 ‘청년 윤이상 연주단’의 멤버 12명 중 한 사람인 이하나(29·숙명여대 대학원 재학)씨가 밝힌 오디션 참가 이유다.

이 씨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민요와 국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공부하러 가던 상황도 그렇고 윤이상 음악을 선택했던 이유도 명확했다. “오디션을 볼 때 윤이상 선생님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더욱 그래요. 오히려 외국 학생들은 종종 있는데 말이죠. 조금 아이러니하죠?”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그녀가 국악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없다. 대신 학창시절부터 한국무용과 협연으로 연주할 기회가 많았다. “제가 아는 한국무용과 교수님이 현악기랑 국악을 접목하는 시도를 많이 했어요. 그 분과 협연을 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관심이 늘었던 거 같아요. 한국무용이나 국악의 힘이 보통은 아닌 거 같아요. 뭐랄까. 제가 가늠하기 어려운 내공이 있는 거 같아요. 학교를 다니면서도 국악을 듣는 걸 멈추지 않았고요.” 이 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 오디션에 응하면서도 이 부분을 계속 생각했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 별도의 프로그램을 짜야 하는 상황에 민요는 조금 아쉽고, 조금 더 호소력 있는 곡이 필요해 국악을 선택했다.

 

“우리 고유의 음악과 지속적인 협연으로 전통음악 세계에 알릴 터”
“윤이상 선생님은 한국보다도 오히려 유럽에서 유명하시니까 그 분의 곡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꼭 윤이상의 음악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작곡가를 선택했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우리 같이 클래식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윤이상이나 진은숙과 같은 한국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봐요. 음악은 연주로 실현되는 것이니까요.” 이 씨에게 윤이상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유럽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윤이상이 한국 학생들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의 학생들로부터 관심 받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우리의 것을 놓치는 것 같은 기분이라 전했다.

이번 콘서트를 통해 유럽에서는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꼽혔지만 국내에서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던 윤이상의 일생을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올해가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라서 보다는 클래식의 숙명으로 이런 음악적 흐름이 계속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리 같은 음악 전공자들은 보통 예술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와 콩쿠르 등을 치르면서 지정곡을 접하게 돼요. 그런데 이런 곡들은 테크닉과 음악성 등 자신의 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반면에 윤이상 선생님의 곡은 음악성, 소리의 질감을 연주자들이 제대로 표현하기에 어려운 편이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정곡으로 선택되기 어렵습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 대부분 콩쿠르에서는 기회가 없어요. 대학원과 유학을 가서야 윤이상과 같은 음악을 접할 수가 있거든요. 한국인들이 이런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건 바로 이런 환경이나 시스템의 문제인 거 같아요.”

이하나씨는 마지막으로 젊은 음악 학도들이 가져야할 최소의 의무를 전했다. “<프롬나드 콘서트>가 단지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이벤트성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음악 콘서트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물론 저희와 같은 프로젝트 그룹은 단지 이번 행사만을 위해서 생긴 임시 그룹이지만, 앞으로 우리 젊은 예술학도들의 노력도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앞으로 독주나 협연 기회가 올 때, 앙코르 공연으로 민요나 우리나라 작곡가의 곡을 넣어서 연주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서와 함께 할 수 있는, 컬래버레이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콘서트 <프롬나드 콘서트>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 세계를 들려주는 <프롬나드 콘서트>는 클래식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태어난 비운의 문학인 윤동주의 작품과 <심청> 오페라의 모티브가 됐던 판소리, 우리나라 춤을 전 세계에 알린 비보이, 현대무용까지 다양한 장르와 협연이 이루어졌다. 1917년 탄생 이후 2017년까지 100년을 기다렸다는 뜻을 가진 콘서트 「17~17」의 주요 프로그램은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의 음악을 통해 윤이상의 음악적 업적과 위치를 되새긴 살롱 콘서트인 ‘100년의 정거장’(8월 25일, 문화역서울284, 그릴홀) ▲100년 전 같은 해(1917년)에 태어난 윤이상과 윤동주를 아우르는 공연 ‘윤이상×윤동주’(9월 2일, 윤동주문학관, 시인의 언덕) ▲음악에 묻어나는 윤이상의 의도와 생애를 알아보는 야외 토크 공연인 ‘연주하는대로’(9월 8일, 서울로 7017, 장미무대) ▲윤이상의 네 곡의 오페라 중 마지막 곡이었던 <심청>에 담긴 자기희생과 구원, 박애의 가치를 국악과 힙합의 사운드로 재해석한 음악 공연인 ‘윤슬음(音)’(9월 15일, 공공미술작품 윤슬) ▲서양의 악기로 동양의 소리를 구현해낸 윤이상의 다양한 실내악곡 연주와 국악 공연이 함께한 실내 장르 복합공연인 ‘행화청청’(9월 16일,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윤이상 생일(17일)을 맞아 민족독립과 자유의 가치를 담은 베토벤, 말러의 곡과 윤이상의 생애를 닮은 <마이 웨이>를 ‘TIMF 앙상블’과 ‘청년 윤이상 연주단’이 협연한 오케스트라 공연 ‘다시 만난 이상, 다시 세운 광장’(9월 17일, 다시세운광장)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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