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하겠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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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변호하겠습니다. 스타트업은 나쁘다? 이의 있습니다.”

사회적 이슈가 난무하는 SNS나 뉴스 페이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라오는 댓글에 무던한 편이고 굳이 시시콜콜하게 대댓글 달고 싶지도 않아.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업무 서류를 더 검토하든가 하다 못 해 잠을 더 자는 게 나으니까. 그런데 간혹 멈칫하게 되는 댓글들에 쓴웃음이 무의식적으로 나오지.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향한 날 선 피드백들에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서도 찝찝한 구석이 남더라고. 때로는 몇몇 스타트업의 잘못된 행동으로 사회적 물의와 도덕적 문제에 대한 이슈가 발생하고, 그런 점을 송곳으로 찌르는듯한 대중들의 피드백에 동감하기도 해. 하지만 사실을 제외한 감정적이고, 도매 급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글들을 볼 때마다 손가락이 근질근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내 안의 레지스탕스 성향인가봐. 그 중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 볼게.

 

스타트업에게 워라밸이란

2019년, 스타트업 대표들이 삼삼오오 모였을 때의 주된 수다 내용은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맞춰 나타난 워라밸이였어. 내외적으로는 모두 드러내지 않고 쉬쉬했고 스타트업 대표들이 워라밸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자체를 언급하는 게 금기처럼 여겨졌었지. 

딱히 누가 입막음을 하거나 주의를 준 건 아니었는데 다들 굉장히 껄끄러워했어. 눈치를 보거나 굳이 회피할 이유가 없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많은 대중이 워라밸에 대한 열망과 지지를 보내면서 워라밸이 없는 회사에 대한 적대감이 커졌고, 동시에 공격 타깃이 될까봐 노심초사했기 때문일 거야.

스타트업 대표 중에는 직장생활 하다 나온 이도 있고, 학생창업이라서 워라밸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사람들도 많아. 우리도 6시 칼퇴근 규정과 야근과 주말근무 없는 근무환경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기업이야. 더불어 최저임금제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 이미 신입 입사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를 주고 있던 터라 그게 있든 말든 우리랑 상관이 없었거든. 

스타트업은 조그만 기업이기에 워라밸과 최저임금제에 반대하는 거 아니냐는 외부의 우려와 달리, 의외로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제도적 규정이 이슈가 되기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이러한 규정들을 시행하고 있어. 그 이유는 작은 기업이라 인재를 영입하기도, 붙잡기도 쉽지 않다 보니 시간이라는 개념의 복지 수단으로 워라밸을 중요시하고 있는 거야.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던 때는 워라밸을 생각 못 했던 게 사실이야. 그리고 사업영역에 따라, 특성에 따라 워라밸을 적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워라밸 시행 여부를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는 거야. 

우리와 같은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우려하는 바는 있어. 언제까지나 스타트업일 수 없다는 거야. 조직이 커지고, 시스템이 갖춰질수록 처음의 회사 운영방식을 바꿔야 하는 타이밍을 반드시 마주하게 되거든. 때문에 직원도, 회사도 너무 고정적인 제도에 연연하기보다는 서로 유연하게 대응 할 수 있어야 해. 

워라밸에 대한 이슈는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시각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해. 이왕이면 직원들에게도, 회사에도 좋은 방향으로 제도를 적용·활용하는 방안이 좋겠지만, 언제나 다 같은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기는 어려워. 

미흡한 복리후생과 넉넉지 않은 자금상황의 연속인 스타트업에 워라밸의 유무는 직원들을 붙잡는 무기이기도 하고, 직원들이 떠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해. 분명한 점은 아무리 좋은 제도나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직원과 경영진 간에 의견이 조율되지 않거나, 회사 독단적으로 의사결정 하는 구조가 지속되는 경우, 서로를 불편해하고, 신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로 인해 각자 다른 꿈을 꾸는 계기가 된다는 거지. 

그러니 직원과 회사 간의 협상과 조율을 통해 우리에게 맞는 회사 문화와 규율을 만들어가는 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을까?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하는 과정이 그 어떤 복지와 까탈스러운 규정보다 직원이 안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회사의 매력이고, 직원들이 희망하는 회사의 대화 자세가 아닐까?

 

경영진의 대부분이 대표와 가까운 지인들

“대표와 경영진들끼리 다 해 먹는 게 스타트업이다”, “대표와 친한 지인들이 다 경영진이더라”, “’가족 같은 기업’이라더니 진짜 가족이 임원이던데?” 스타트업에서 인턴 경험을 하고 나온 이가 작성한 글과 그에 대한 댓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 

‘가족 같은 기업’이란 말은 불신을 넘어 혐오에 이르게 됐는데, 직원을 가족이라고 부르면서 월급도 용돈처럼 고무줄 같이 늘였다 줄였다를 오가는 정도를 넘어 수시로 밀리기도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어. 

게다가 회사가 필요할 때만 가족처럼 부려 먹더라, 대표가 진짜 가족에게도 그렇게 하대하고, 막 대하는지 궁금해지는 회사란 뜻이더라고. 그래서 구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가족 같은 기업’은 일단 거르고 지원하라는 게 공공연한 룰이 됐더군. 

잘못된 기업문화나 사례, 관행들은 고쳐지고, 개선돼야 하는 게 맞아. 특히, 직원들을 가족 같이 대한다면서 가족 아닌 노예처럼 부리는 경영진이 존재하고, 회사 자금유용이나 횡령 등의 주체로 언급되는 사건들을 보면서 그들이 지탄과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 전혀 옹호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

하지만 스타트업의 경영진에 가족이 있다고, 지인이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사람들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어. “당신은 회사를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나요?”

스타트업이 고속성장을 하고 있고, 매출과 수익이 늘어나며 확장하고 있을 때, 직원들은 경영진이 누리고 있는 보상을 보게 되지. 그냥 자리에 앉아 있는 듯 보이는 경영진들에 비해 나 자신은 오늘 하루도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정신없이 살았는지 비교하게 될 거야. 

대표와 혈육이거나 친구, 학연, 지연으로 얽혀 있는 경영진이라면 더욱 불합리하다고 느끼겠지. 그런데 이런 현상의 재미있는 점은 꼭 회사가 잘 될 때 보인다는 거야. 반대로 회사가 위태로운 시기일 때는 내 한 몸 건사하는데만 신경 쓰지. 

혹시나 회사가 망하거나 구조조정이 있기 전에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든가, ‘퇴사해서 실업급여와 퇴직금은 받을 수 있는지’, ‘혹여나 월급이 밀리지는 않는지’와 같은 걱정만 하는 거지. 나 역시 직장인일 때, 동일한 사고방식을 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회사를 바라보면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거든. 

처음 아이디어나 기획 정도의 수준으로 창업을 준비할 때, 주변에서 선뜻 함께 하자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 아무리 그럴듯한 아이템이더라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앞으로 넘어야 할 문제와 장애물들이 엄청날 거라는 게 뻔히 보이는데 누가 합류하려고 하겠어. 

더군다나 십중팔구 월급은커녕 괜히 발 담갔다가 돈을 들이부어야 하는 상황이 될 거라고.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헛꿈 꾸지 말라고 말릴지언정 창업을 독려하는 경우는 드물어. 이러한 상황에서도 창업자와 고난의 행군에 동참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현재의 경영진이야. 그들은 시작부터 리스크를 감수하고 참여한 사람들이라고. 

또한,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여전히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지. 그들이라고 겁이 없을까? 리스크를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야. 때문에 가족, 친구, 지인이 경영진으로 있다는 것은 오히려 그 사업에 대한 대표의 자신감이라고 생각해. 

대표 입장에서는 회사를 더욱 견고하고 착실하게 경영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 소극적으로 생각해 봐도 네가 대표라면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더 회사를 잘 이끌어 가려 하지 않겠어? 그러니 경영진에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고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비판하지 않길 바라. 

알려진 스타트업보다 안 알려진 스타트업

언론보도나 마케팅을 통해 대중들에게 일약 스타가 된 스타트업들이 있어. 그러나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음 직한 스타트업들과 달리 이름 자체가 생소하고 제품이나 서비스조차 알지 못하는 회사들이 태반이야. 흔히 ‘듣보잡 스타트업’이라고 부르면서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댓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는 건 우리 회사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스타트업이기 때문이겠지? 

매출이 ‘빵빵’ 터지고, 엄청난 투자유치 소식이나 해외에서 잘 나간다는 뉴스로 알려진 스타트업이 있는 반면, 조용하게 아는 사람만 아는 알짜 스타트업들도 있어. 일 년에 두 번 전 직원 해외 여행을 보내준다거나, 성과급이 몇천만 원을 넘나든다거나, 개인회사이고 직원이 6명이라 작을 줄 알았는데 연 매출이 백억 원을 넘는 기업도 있어. 

5년 째 1인 기업인데 빚 없이 집 사고, 차 사고 넉넉하게 사는 대표도 있어. 이런 스타트업 대표의 특징은 은둔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사업을 영위하고자 하는 것이야. 오히려 알려지면 독점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시장에 괜한 경쟁이 생길까봐 더 쉬쉬하며 자기들만의 영역을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어. 

유명하다고 다 좋은 스타트업이 아니야. 화려한 겉보기와 달리 속은 골병들어 엉망진창인 곳도 있고 외부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 줏대 없는 경영으로 인한 잦은 구조조정과 높은 퇴사율·이직률을 숨기고 있는 곳들도 있거든.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있는 스타트업들 중에서도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골수팬들을 거느리고 오순도순, 알콩달콩 그들만의 멋과 꿈을 이루고 있는 이들도 있어. 대중들이 알아봐 줄수록 생존할 수 있는 회사가 있는 반면, 대중들은 모르더라도 소수의 구매자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사업 모델들이 있거든. 그래서 유명세가 꼭 좋은 스타트업의 기준이라고 볼 수 없어. 내외부의 흔들림 없이 구성원 모두와 나눌 수 있게 수익을 내고,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되, 모두가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 좋은 스타트업이지.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편견은 이보다 더 많고, 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딱 이 정도까지만 변호하는 이유는 나에게 주어진 하고 싶은, 꼭 해야 할 본 업무만으로도 빠듯하기도 하고, 무의미한 소모적 다툼에 끼고 싶지 않아서야. 스타트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응원하는 것도 문제지만 잘 알지 못하면서 돌을 던지는 것도 문제야. 

스타트업 창업자 동지 여러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처럼 우리는 신념과 뜻이 있기에 당당하게 전진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소명과 목적을 떠올리며 흔들림 없이 성장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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