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도시는 유죄? 무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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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개발 시대의 도시는 희뿌연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로 대변되는 삭막한 도시로 많은 문학 작품에서 회색 도시로 표현되곤 했다. 날로 폭력과 범죄가 급증하며 희망 없는 암흑시대, 검은 도시일 때도 있었고 메마른 현대사회를 빗대 색깔 없는 도시, 투명도시로 비유되기도 했다. 요즘 우리네 도시들은 참 많이 밝고 화려해졌다. 도시의 색깔이 그 도시의 품격과 개성을 나타내고 상징이 되기도 한다. 도시에 색깔을 입히자. 이제 도시도 색깔을 먹고 자란다!

 

붉은색, 오렌지색 지붕의 유럽 도시

유럽 여행길 유럽 전역에서 만난 도시들은 대체로 붉은색, 오렌지색 지붕을 올린 아름다운 도시들이 많다. 독일,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많은 유럽 도시들에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 차창 밖을 내다보면, 대체로 비슷한 풍광을 가지고 있다. 

붉은색 벽돌 지붕에 하얀 벽, 누구라도 시(詩) 한 편 떠올리게 하는 도시의 색을 품고 있다. 단조롭기도 하지만 정갈한 느낌이 차분해 보인다. 하늘에서 본 색이 다가 아니라 땅 밑에 내려 도시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다양한 문화의 색깔들로 채색돼 있다. 

 

하얀 색의 미학···그리스 산토리니, 스페인 안달루시아, 일본 나가현 마츠모토성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의 외딴섬. 산토리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먼저 꼽힐 만큼 유명하다. 푸른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산언덕에 빼곡히 자리 잡은 산 마을이 온통 하얀색 집들로 가득하고 군데군데 마치 파란 점을 찍은 돔 지붕 풍광이 완벽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산토리니는 전 세계 CF 광고와 방송 야외 촬영지(로케이션)로 손꼽힌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는 독특한 하얀 마을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베헤르데라프론테라와 아르코스데라프론테라는 마을 언덕과 골목골목마다 하얀 집과 건물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나가현의 마츠모토 성(城)은 일본의 히메지 성, 하코네 성, 이누야마 성과 함께 4대 성으로 꼽힌다. 특이한 것은 마츠모토 성의 색깔이 흑백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것과 마츠모토시(市)도 흑백의 상징을 고스란히 반영한 도시 디자인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한층 정갈하며 깔끔한 도시의 이미지를 물씬 픙기고 있다.

 

코발트 파란색의 도시 스페인 후스가르

스페인 남부 말라가주의 작은 도시 후스가르의 일명 ‘스머프 마을’은 독특한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을 전체가 온통 파란색 옷을 입었다. 집집이 스머프 캐릭터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이 마을은 평범한 마을이었지만 애니메이션 영화 ‘스머프 3D’를 홍보하기 위한 단기 프로모션 차원에서 꾸며졌다. 하지만 프로젝트 이후에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자 원래대로 마을 모습을 복구하지 않고 유지해 ‘스머프 마을’로 남았다. 오히려 유명한 관광도시로 우뚝 섰다. 

 

알록달록 파스텔톤으로 변신한 멕시코 라스 팔미타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파벨라, 부산 감천 마을

멕시코 중부 파추카 지역에 라스 팔미타스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우리로 치면 완전 산동네인 이 마을은 200여 가구의 외벽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다. 해발 2,700m의 고원에 있는 파추카는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은광 도시다. 노동자들이 주로 살던 콘크리트 블록집이 산꼭대기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던 볼품없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한 예술단체의 노력으로 14개월간 2만 리터의 페인트를 사용해 거대한 마을 벽화가 완성된 후 유명해졌다. 마치 신(神)이 내려와 한밤중에 색칠하고 간 듯 놀라운 마법이 펼쳐졌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막식의 감동을 기억하는가? 소박하지만 브라질의 감성과 정서를 한껏 뽐낸 역대 급의 개막식이었다. 인상적인 장면은 무대 디자인 콘셉트로 등장한 리우데자네이루의 달동네 파벨라다. 

여행객이던 네덜란드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의기투합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마을을 빚어냈다. 마약과 범죄의 온상이던 암흑천지의 마을이 환한 색깔 옷을 입자 범죄도 줄어들고 주민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우리나라에도 그림 같은 마을이 있다. 피난민의 마을인 부산 산복도로에 위치한 감천 마을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해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한해 15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최고의 명소가 됐다. 저녁이면 부산 앞바다의 풍광과 함께 알록달록 채색된 달동네의 풍경이 일품이다. 일개 달동네가 연간 벌어들이는 관광 수입이 만만치 않은 규모로 성장했다.

 

노란색의 도시 멕시코 유카탄, 아자말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노란색 도시 아자말이 이채롭다. 1500년대부터 건축된 스페인풍의 건물들이 대부분 노란색으로 채워져 마을은 온통 해바라기 꽃이 활짝 핀 흡사 정원 같은 모습이다. 작은 도시 아자말을 유명 관광도시로 우뚝 서게 한 노란색이 경이롭기만 하다.

 

신비로운 붉은 도시 티베트자치구 써다

중국 쓰촨성 티베트 자치구 써다는 빨간색 도시의 풍광이 매우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원래 작은 마을이던 이곳에 빨간 지붕의 티베트 불교 사원이 자리 잡은 후, 수행자와 신도들이 대거 몰려들어 작은 마을이 큰 마을로, 곧이어 도시로 발전했다. 도시는 온통 단아한 빨간색으로 물들어 도무지 이 곳이 인간계(界)인지 신선계(界)인지 헷갈릴 정도다. 색깔이 갖는 힘,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는 힘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부산 산복도로에 위치한 감천 마을은 도시재생사업으로 한해 15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최고의 명소가 됐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부산 산복도로에 위치한 감천 마을은 도시재생사업으로 한해 15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최고의 명소가 됐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우리의 색깔 도시 아산 지중해 마을, 제주 스위스 마을, 남해 독일 마을

충남 아산에 위치한 지중해 마을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본떠 단지가 통째로 색깔 입은 마을이 됐다. 단지 조성부터 설계까지 인위적으로 계획된 마을이지만 그래도 무색무취의 밋밋한 도시보다는 운치 있다. 

제주 스위스 마을도 주황색과 노란색, 오렌지색을 입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제주의 훌륭한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많은 관광객이 들르지만 작년 여름 태풍 피해를 적잖이 입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작은 규모지만 어찌 됐든 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인상 깊은 인증사진을 찍기에 충분하다.

풍광 좋기로 유명한 남해 독일 마을은 독일 탄광 출신 광부들이 귀국해 조성한 마을인데 독일 한 개 마을을 송두리째 옮겨온 것처럼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 작은 마을도 연간 150만 명이 찾는 남해의 대표적인 관광 예술 마을이 됐다.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 그리고 주홍색 지붕의 마을이 수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쯤이면 고흐의 유채화가 부럽지 않다. 바다와 함께 마을 전체의 풍광을 담아 인증사진을 찍어보라. 누구나 유명 모델이 된다.

 

옐로우 시티 전남 장성

최근 우리 지방 도시 중 최초로 노란색을 상징색으로 한 컬러 마케팅을 본격 도입한 곳은 전남 장성이다. 서울, 부산, 대구 등 비교적 재원이 넉넉한 대도시도 어려운 이 과제를 해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어쩌면 복잡한 대도시보다 다른 여러 도시의 경우처럼 소박한 중소도시에 더 어울리지도 모르겠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번화가 라 보카는 파스텔 색조, 인도 자이푸르는 핑크, 스페인 안달루시아는 파랑, 그리스 산토리니는 순백과 파랑을 관광 자원화해 세계적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색깔이 돈이 되는 셈이다. 장성군이 컬러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배경이다. 

장성의 황룡강(江)에 누런 용이 산다는 전설이 있는데 노란색은 황미르에서 따온 것이다. 황색은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적, 청, 황, 흑, 백)의 중심 색이고, 황제의 색, 부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장성이 부자 고장이 되고, 호남과 전국의 중심으로 성장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도 한다. 또한, 예전부터 노란색은 황제의 색이었다. 고종 황제가 머물던 덕수궁 창틀에 유일하게 황색이 사용됐다고 한다. 

장성에 가면 도심 곳곳에 회전교차로, 광장, 4차로 거리에는 노란색 물결이다. 공공 디자인부터 노란색을 적용하고 차츰 지역주민의 건축물에도 노란색 활용을 권장하고 있어 노란색이 물들어가는 느낌이다. 

별다른 스토리와 랜드마크가 없던 장성군은 황룡의 전설을 품은 강을 관광 상품화했고, 그 상품에 걸맞도록 지역을 꾸몄다. 장성역 광장, 장성대교 등 읍면 20곳에 연중 노란색 꽃이 활짝 피도록 화단도 조성했다. 황룡강변에는 매년 10월 노란 꽃 축제가 열려 관광객을 맞는다. 전남의 작은 도시 장성이 스토리텔링과 컬러 마케팅을 도입한 이후 외관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예전보다 연간 도시 방문객이 늘고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공감하고 합심하는 분위기다. 장성군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상가 간판과 건물, 버스, 택시에 노란색 옷을 입히고 옐로우 시티를 상징하는 해바라기 빵, 황룡 빵, 꽃차, 꿀차 등 상품을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전남 강진은 반대로 붉은색이다. ‘레드(Red)3 마케팅’으로 불리는 붉은색 컬러 마케팅은 동절기에는 딸기, 장미, 파프리카와 하절기에는 방울토마토, 장미, 파프리카가 생산되는 것에 착안해 만든 마케팅이다. 관광 마케팅이라기보다는 지역 특산물 홍보 마케팅 성격이 강하다. 

전남의 장성, 강진이 차례로 컬러 마케팅을 도입 추진하는 것이 참 이채롭다.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아이디어와 사례가 롤모델이 됐겠지만 아직 초기 단계이니 초반 번죽만 올리다 그치지 말고 차분히 꾸준하게 지역민과 함께 훌륭한 컬러 도시를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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