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기업과 정규직, C 기업과 프리랜서∙∙∙사실상 이중계약
정부 공공사업 참여 시 정규직이어야∙∙∙‘반프리’ 등장 배경
일할 땐 정규직, 사고당하니 프리랜서?

[스타트업투데이] IT업계에는 다른 업계와 다른 새로운 고용형태가 있다. ‘반(半)프리’다. 정규직이면서 프리랜서의 급여를 받는다. 이렇게 말하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다.

반프리는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정규직이면서 여러 단계의 하도급을 거쳐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 즉, 프리랜서다. IT 업계에서는 이런 고용형태를 ‘반프리’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개발자 A 씨가 반프리 노동자라면 B 기업에는 정규직으로, C 기업에는 프리랜서로 일한다. 근로계약서는 B 기업과 C 기업과 맺은 각각 두 장이다. 급여도 B 기업은 보통 4대 보험을 적용한 최저시급 또는 계약서상 급여가, C 기업은 3.3%의 세금을 뗀 급여가 지급된다. 사실상 이중계약이다.

IT업계에서는 반프리 계약이 오랫동안 관행으로 자리 잡아 왔다. 소프트정책연구소는 지난해 1월 발표한 ‘국내 SW프리랜서 개발자 현황과 정책 시사점’을 통해 “하청업체는 유연한 방식으로 정규직 인력을 확보하고 프리랜서는 4대보험 혜택과 소득세를 절감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반프리 고용 관행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IT업계도 “기업이 이런 점만 강조해 사실상 노동자를 ‘꼬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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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프리’가 등장한 이유?

반프리가 유독 IT업계에 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IT업계 노동자들의 현실을 살펴보기로 한다. 공공기관이나 금융기업, 대기업 등 원청업체가 SI(시스템통합, System Integration) 작업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원청업체 ‘A’가 대형 SI업체 ‘B’에 프로젝트를 발주한다. B는 중소 SI업체 ‘C’와 계약을 맺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인력이 부족하면 일명 ‘보도방’이라고 불리는 IT 노동자 파견업체를 통해 프리랜서를 고용한다.

A가 B에 발주하는 것은 1차 하청, B와 C의 계약은 2차 하청, C와 프리랜서 간 고용계약은 3차 하청이다. 프로젝트의 끝남과 동시에 고용계약도 종료된다. 1년 넘게 일해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퇴직금조차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결과만 놓고 볼 때 프리랜서가 원청업체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지만 원청업체는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다. 프리랜서가 실제로 소속된 곳은 보도방 업체이기 때문이다. 처우가 열악한 것은 물론 노동법에 적용조차 되지 않아 고용도 불안하다.

하지만 정부의 공공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인력이 있어야 한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제20조 3에 따르면 공공 소프트웨어사업에서는 하도급 비중을 50%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수주업체는 사업 수행을 위해 일정 비중의 정규직 인력 확보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B 기업이 정부의 공공 프로젝트를 따내면 C 기업에 발주하고 각각 정규직과 프리랜서로 일하는 A 씨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정부가 보기에 A 씨는 B 기업에 소속된 정규직이다. 따라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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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문제가 없는가?

일각에서는 반프리는 ‘편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반프리는 기업 입장에서 유능한 인력 확보가, 회사 입장에서는 고용안정이 처음 목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변질된 부분도 어느 정도 발생했다는 것이 IT업계의 주장이다.

기업은 프리랜서에 대한 해고가 정규직에 비해 자유롭고 퇴직금 지급 의무도 없어 비용면에서 유리하다. 반프리로 고용하면 정규직 급여에 대한 부분만 퇴직금으로 지급해도 되기 때문에 그만큼 비용 부담도 적다는 것이 IT업계의 설명이다.

만약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하더라도 반프리는 사실상 노동자로 볼 수 없어 노동법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가장 큰 문제는 IT 노동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다. 산재보험에 가입된 정규직이라면 사고를 당했을 때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사고를 당했을 때 프리랜서로 계약한 회사에서의 업무수행으로 인한 사고라는 이유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이때 이중계약이란 것을 밝혀야 하지만 실제로 두 회사의 연관성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IT업계가 강조하는 것은 IT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이다. 김환민 IT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반프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IT업계에 정규직을 늘려야 하는 정책적 기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IT 인력을 키우는데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노동자 입장에서는 정규직보다 프리랜서가 돈을 많이 받는 것이 사실”이라며 “실제로 정규직에서 프리랜서도 전환하는 노동자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IT업계가 프리랜서만 채용한다면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 개발자가 자신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게 김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반프리는 단순한 노동문제가 아닌 IT 산업 자체가 도태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며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정책이 세워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투데이=염현주 기자] yhj@startup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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