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
텀블벅서 '신이어마켙' 첫 주문 진행중
24일 기준 목표액 700% 웃돌며 성공
폐지 수거 노인에 '정규직 일자리 창출'
10월께 팝업스토어, 상담소 오픈 준비도
"더 많은 노동시간 보장 기대...관심 필요"

아립앤위립 심현보 대표. (사진=아립앤위립 제공)
아립앤위립 심현보 대표. (사진=아립앤위립 제공)
폐지 수거 노인들의 손에 색연필이 쥐어지자 노인들은 작가로 변신했다. 신이어마켙의 창작자, 근로자로 참여 중인 노인들의 사원증. (사진=아립앤위립 제공)
폐지 수거 노인들의 손에 색연필이 쥐어지자 노인들은 작가로 변신했다. 신이어마켙의 창작자, 근로자로 참여 중인 노인들의 사원증. (사진=아립앤위립 제공)

[스타트업투데이] “밥 잘 챙겨 먹어” “잘 될 거야”

삐뚤빼뚤한 손글씨가 마음에 꾹꾹 새겨진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메시지가 잔잔하게 귓가에 맴돈다. 힘겨웠던 세월의 무게가 그 한 줄에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일까.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간절했기 때문일까.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위로가 고픈 이들에게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라며 마음을 토닥여주는 이들은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 등 한 번 제대로 펼 시간도 아까워하며 폐지를 줍던 어르신들이다. 주름지고 거칠어진 손에 색연필을 쥐여주고 ‘마음껏 이야기해보시라’ 북돋워 준 청년들 덕분에 소외당하던 노인들은 작가로 재봉사로 변신했다.

예비 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은 온종일 일해도 끼니 때울 걱정에 시달리던 폐지 수거 노인들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선물하고 있다. 아립앤위립 심현보 대표는 “어르신들이 살아오신 긴 세월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를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어르신들에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 선생님, 준비물 등을 제공해드린다”고 말했다.

손자, 손녀가 된 듯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르신들 이야기에서 세대를 초월하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아립앤위립은 그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쓰고 그려내도록 돕는다. 초안이 완성되면 이후 디자인을 입혀 아립앤위립의 브랜드 ‘신이어마켙’ 굿즈로 팔린다.

아립앤위립은 참여한 어르신들에게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있다. 제품 제작과 포장 역시 어르신들의 손길을 거친다. 신이어마켙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르신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심 대표는 “신이어마켙의 첫 번째 주문이 8월 31일까지 텀블벅에서 진행된다”며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질수록 더 많은 노인에게 노동시간을 보장할 수 있고 이것이 반복되고 있는 노인 빈곤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폐지 수거 노인들이 직접 그리고 쓴 문구,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이어마켙'의 굿즈들. (사진=아립앤위립)
폐지 수거 노인들이 직접 그리고 쓴 문구,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이어마켙'의 굿즈들. (사진=아립앤위립 제공)

▲ 아립앤위립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 안녕하세요. '신이어마켙'을 운영하는 아립앤위립입니다. 2017년 10월에 설립됐고, 현재 구성원은 대표, 마케터, 디자이너 총 3명입니다. 9월부터는 기존 파트타이머로 함께해주던 시니어 멤버가 정식 멤버로서 출근할 예정입니다. 

아립앤위립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폐지 수거 노인들에게 폐지 수거를 대체 할 새로운 일거리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폐지 수거는 노동강도 대비 수익이 많이 적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온종일 폐지를 주워도 하루 3끼는커녕 1끼도 제대로 먹기 힘들 정도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어르신들의 손에 폐지 대신 색연필을 쥐여 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살아오신 긴 세월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를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 선생님, 준비물 등을 마련해드리고, 창작활동을 지원합니다.

창작된 작품에 ‘저작권료’를 드리고 구매해 1차 일자리를 만들고, 저작물을 활용해 다양한 굿즈의 디자인으로 활용합니다. 이후 크라우드펀딩 및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소비자와 만나게끔 연결하고, 구매가 이루어진 제품에 대해 어르신들이 제품을 포장하는 2차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 기존 '인생꿀팁' 브랜드를 '신이어마켙'으로 재정비했다고 들었어요.

- “좋은 대학 가야지”, “취업은 어떻게 되어가니?”, “결혼할 사람은 있고?”, “아기소식은 없니?” 등등 어른들은 관심의 표현으로 하시는 이야기지만, 정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야기는 “밥 잘 챙겨 먹어라”, “괜찮아, 할 수 있어”, “좋다가도 못하면 싫어질 수 있어, 괜찮아” 이런 이야기잖아요.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들을때 위로가 많이 되더라고요. 그 감동을 '인생꿀팁'이라는 브랜드로 전해 왔는데요. 

이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더 다양해지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마켙’이란 컨셉을 고안해냈습니다. 아립앤위립 구성원들 모두 옛날, 레트로 등의 감성을 좋아하는데, 예전 간판들을 찾아보면 슈퍼마‘켙’ 이라고 쓰여있는 간판들이 많더라고요.

켓도 아닌 ‘켙’. 인생꿀팁은 문구류에 무게가 실렸던 브랜드라면, 앞으로 선보일 신이어마켙은 문구류 외에도 생활소품, 일상용품 등에서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연관된 제품들을 선보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폐지 수거 노인들이 직접 그리고 쓴 문구,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이어마켙'의 굿즈들. (사진=아립앤위립)
폐지 수거 노인들이 직접 그리고 쓴 문구,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이어마켙'의 굿즈들. (사진=아립앤위립 제공)

▲ 현재 텀블벅에서 '신이어마켙'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요.

- 네, 신이어마켙이란 브랜드로 처음 선보이는 프로젝트입니다. 기존에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쌓인 창작물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가 가장 잘 만들고 자신 있는 ‘문구류’를 통해 첫 발걸음을 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문구류만 있는 건 아니고요, ‘카드지갑’ 제작을 통해 문구류 외에 생활소품, 일상용품 등 다음 카테고리로 넘어가기 위한 시도도 함께 하는 셈입니다.

폐지 수거 노인들이 직접 그리고 쓴 문구,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이어마켙'의 굿즈들. (사진=아립앤위립)
폐지 수거 노인들이 직접 그리고 쓴 문구,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이어마켙'의 굿즈들. (사진=아립앤위립 제공)

▲ 삐뚤빼뚤 손글씨로 눌러 담은 글귀와 그림이 잔잔한 울림을 주더라고요. 어떤 내용을 담을지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어떻게 정해졌나요?

- 함께하는 어르신들은 3개 복지관에서 지원이나 관리를 받고 계신 분들인데요. 각 복지관별로 3~4회차씩 창작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저희가 먼저 기획하기보다는 만나는 전체 회차 중 약 절반(복지관별 1~2회차씩)을 함께 이야기하고 수다 떠는 데 사용해요. 

어르신들 대부분이 독거노인이고, 특히나 요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부활동이 제한되다 보니 가지고 계신 에피소드도 많고, 하시고 싶은 이야기도 많으셔서 그 이야기들을 듣는 데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면 꼭 ‘맞아’, ‘그랬지’ 등등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이 저희가 기획하는 포인트가 됩니다. 어르신들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 일화 등을 포착해 젊은 세대들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죠. 

 

▲ 폐지 수거 노인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일이지만 오히려 그분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 처음에는 혈기왕성, 의욕 충만하게 고물상으로 찾아갔어요. 폐지 수거 노인을 돕겠다는 청년이 당돌하게 가니 고물상 사장님은 당황하셨고, 그래도 좋은 일이라며 고물상 한쪽을 잠시 내어주셨죠.

준비해간 물과 음료, 장갑과 몇 가지 폐지 수거에 필요한 물품들을 꾸러미로 만들어 한 분 한 분 전달 드렸는데, 저를 사회복지사로 오해하시고 받아 가시더라고요. 이후에도 찾아가 인사드리고 조금씩 친해지려고 말도 건네 봤는데 사회복지사가 아닌 일반인이라는 걸 아시곤 태도가 확 바뀌셨어요. 없는 사람한테 뭘 더 가져가려고 그러느냐고. 

설득이 쉽지 않았고, 고민하던 중 이 어르신들이 가실만한 곳이 복지관이어서 제가 사는 지역의 복지관들을 수소문해 폐지 수거 노인들을 지원하거나 관리하는 기관을 찾고 그곳에 삼고초려 해가며 담당자를 설득해 어르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어 지금의 아립앤위립이 탄생했습니다.

폐지 수거 노인들이 직접 그리고 쓴 문구,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이어마켙'의 굿즈들. (사진=아립앤위립)
폐지 수거 노인들이 직접 그리고 쓴 문구,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이어마켙'의 굿즈들. (사진=아립앤위립 제공)

▲ 그림 작가로 재봉사로 상담가로 어르신들에게 다양한 재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어르신들 반응은 어떤가요?

- 매번 어려워하시긴 해요.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 펀딩 페이지에 본인들이 제작한 샘플 사진을 보며 신기해하시고, 이후 제품을 포장하는 일자리까지 이어지면 어떻게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팔려서 포장까지 하느냐고 즐거워하시기도 합니다.

어르신들의 보편적인 공통점은 처음에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점인데, 옆에서 그런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사그라들수있게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요. 

 

▲ 제품 가격만 놓고 보면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노인분들의 수작업으로 공정이 이뤄지기 때문이겠죠?

- 네, 맞아요. 어르신들이 직접 작업에 관여하시는 부분이 많기 때문인데요,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에 따라 함께하는 분들 내에서도 작업 속도와 퀄리티가 많이 차이가 납니다. 그 격차를 줄이며 최대한 효율을 내기 위하다 보니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세밀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에선 실수하시는 빈도가 일반 성인 대비 높기도 합니다. 

효율이 적고 제품가격이 올라가더라도 저희가 만드는 제품은 최대한의 노력과 정성을 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르신들이 폐지 수거를 하던 과거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실 수 있고요. 연습하고 반복하면 조금씩 나아지겠죠? (웃음)

폐지 수거 노인들이 직접 그리고 쓴 문구,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이어마켙'의 굿즈들. (사진=아립앤위립)
폐지 수거 노인들의 손에 색연필이 쥐어지자 노인들은 작가로 변신했다. 신이어마켙의 창작자, 근로자로 참여중인 노인들의 사원증. (사진=아립앤위립 제공)

▲ 신이어마켙 프로젝트에 어르신 몇 분이 참여하고 있나요?

- 이번 제품 디자인에 참여하신 어르신들은 총 16분이세요. 3개 복지관에서 만난 분들인데요. 직접 그리신 창작물을 하나씩은 꼭 넣으려고 했고, 창작물 외에도 필체, 신이어상담소(청년 세대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채널) 등을 통해 참여하셨어요.

보통 한 번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3시간 정도 운영하고, 최대 4회차 정도 되니 한 분당 12시간의 창작 노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펀딩 이후 제품을 포장하는 일자리도 생기는데 지난 펀딩 기준으로 3시간씩 3~5일 정도 소요가 됐습니다.

이번엔 펀딩 후원자분들이 2~3배 정도 증가해 포장 일자리에 대한 노동시간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포장 일자리의 경우 각 복지관과 협의하고, 어르신들의 참여 의사를 다시 여쭈어 인원을 편성하게 돼, 아직 인원수가 명확하진 않습니다. 약 5~8분 사이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아립앤위립의 최우선순위가 노인들의 임금이잖아요.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료 지급과 포장작업 임금은 어떤 기준으로 산정되나요?

- 창작물의 경우 어르신들과 협의를 통해 결정됩니다. 프로젝트 단위별로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료 산정은 상이합니다. 고려대상은 창작물의 퀄리티, 창작활동에 대한 지원요소 등이 고려되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합니다.

또한, 포장 일자라는 서울시 생활임금(2021년 기준 시간당 1만702원. 서울지역의 가계지출, 주거비, 교육비, 물가수준 등 지역특성을 반영하여 근로자의 실제 생활이 가능한 최소한의 임금으로 최저임금보다 높다)으로 산정해 계산합니다.

처음 펀딩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최저임금’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우리의 일자리를 통해 최저임금 이상은 받으실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재봉, 프레스 등 기술을 가르쳐 드리고 기술자로서 모시고 있기에 울시 생활임금이라는 기준을 적용해 지급하고 있습니다. 

 

▲ 아립앤위립의 목표는 '노인들의 정규직 일자리 창출'이라고 들었습니다.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려면 진행 중인 텀블벅 펀딩처럼 다른 프로젝트가 필요할 것 같아요.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 어르신들과 청년 세대가 만나는 접점을 계속 만들어 갈 겁니다. 우선 텀블벅 펀딩이 완료된 뒤 제품을 제작하고, 포장하는 일자리를 만들면서 그 과정을 저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개할 예정이에요.

이후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인데요. 그 때 맞춰 10월 1~3일 총 3일간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준비중입니다. 지난 펀딩과 온라인 플랫폼에서만 확인하던 제품을 실물로 구경할 수 있고, 노인의 날 기념 새로운 제품 라인들도 그 때 소개할 예정입니다. 

특히 제품 제작에 참여했던 어르신 몇 분이 직접 큐레이션 해주거나, 본인들의 활동과 작품, 제품 등을 설명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있어요.

또 2030 청년 세대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7080 할머니, 할아버지가 속 시원하게 상담해주는 ‘신이어상담소’도 추가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스타트업투데이=김나영 기자] mmm@startup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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