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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뉴딜사업 진단] 도시재생과 정책몬스터
[도시재생 뉴딜사업 진단] 도시재생과 정책몬스터
  • 김현아 국회의원(자유한국당 비례대표)
  • 승인 2019.01.08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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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앞으로 도시재생은 필연적이다. 도심의 노후화, 떠나가는 청년, 늘어나는 빈집 등 여러 가지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여 커뮤니티를 유지하고 성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미래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이러한 맥락에서 중차대하다. 전문가의 시각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사업의 방향을 점검해본다.


공약의 수명
선거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공약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선거에 이긴 사람은 그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정책과제를 만든다. 대선공약은 곧바로 “국정과제”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다. 국정과제가 된 공약은 담당 부처가 정해지고 연도별 목표량과 실행계획에 따라 매년 그 실적을 점검받게 된다. 부처별로 국정과제 달성도를 가지고 성적을 매기게 되니 부처 간 경쟁도 치열하다. 여기서 경쟁이란 가시적인 실적 경쟁이다.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 보면 공약 달성을 위한 시간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국정과제는 단기간에 성과가 드러나는 ‘사업’ 위주로 짜인다. 당초 공약의 근본 취지의 달성은 퇴색해질 수밖에 없다. 제안 주체와 집행주체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어공과 늘공의 차이라고나 할까? 공약은 주로 정치인이나 교수들(어공: 후에 어쩌다 공무원이 될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 만드는 반면 국정과제는 부처 공무원(일명 늘공: 늘 공무원)이 만들고 집행하다 보니 혼연일체일 수가 없다. 대통령 공약마다 성공하는 경우보다는 다음 정권에서 폐기처분 0순위가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늘공도 할 말은 많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실적을 만들려다 보니 졸속이 불가피하고 부실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핵심공약일수록 국정과제의 결말은 비참하다. 설사 결과가 좋아도 문제다. 정권마다 이전 정권의 치적을 계승하기보다는 이름을 바꾸어 현 정권의 치적으로 포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 정책과제나 관련 사업의 이름이 바뀐다. 중장기적으로 분명 효과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정책사업이 과거 그렇게 욕을 먹던 그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뀐 이름에, 결과가 나타날 즈음의 당선인에게 고스란히 그 영광이 돌아갈 뿐이다. 

어떤 정책이 정권의 성향에 상관없이 약간의 수정 보완을 통해 최소 10년 이상 지속했더라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 아쉽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러한 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선거공약에서 핵심 어젠다였던 과제나 사업들의 수명은 짧거나 아예 성질이 다른 것으로 변질된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공약들을 ‘정책 몬스터’라고 부른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가 바로 ‘도시재생 뉴딜’이다. 약간 수정이 되었지만 당초 도시재생 뉴딜은 5년 동안 500개의 사업 총 50조의 정부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으로 꾸며진 공약이었다. 원래 도시재생은 낙후된 지방도시나 쇠퇴한 대도시의 활력을 되찾는 정책으로 물리적인 건축물의 복원이나 기능 향상 이외에 용도의 전환, 공간 내 프로그램의 도입을 통해 커뮤니티를 회복하고 나아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물론 도시화의 정도나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도시재생의 개념은 수정과 변형이 가능하다. “뉴딜”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은 공공주도의 일자리 창출사업으로 느껴진다. 원래 ‘뉴딜(New deal)’은 미국에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추진되었던 정부 주도의 구제, 부흥, 개혁 등의 제반 정책을 의미한다. 미국은 뉴딜 정책으로 연방정부의 기능과 대통령의 권한 확대를 실현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도 정부 주도 주거복지문제 해결을 위한 임대주택사업을 포함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미국의 뉴딜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미 시행되고 있었던 도시재생사업의 단위를 더 소규모로 나누고 대신 사업수를 늘리는 양적 확대를 추구하면서 일부 사업의 경우에는 광역시 자치단체장에게 공모사업 선정권을 부여하는 등 도시재생사업의 분권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대의 공공자본을 다량의 소규모 사업에 동시다발적으로 투입하는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은 다음 두 가지의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첫째, 사람들이 체감할 만한 가시적인 성과 대신 미미한 환경개선에 그침으로써 공약 실천의 결과에 실망하는 국민들의 반응이다. 내용적으로 보면 도시재생 뉴딜이 추구하는 가치가 충분히 명분이 있으나 단기간에 실적을 내기는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이 되려면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지역 여건마다 사정이 다 다르니 소요되는 시간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면 소외감을 느낀다. 해당 지역 담당 공무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클 것이다. “왜 우리만 하지 않는 거야”라는 압박에 자유로운 선출직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역 사정에 적합한 방식보다는 기존의 한두 개 성공사례를 따라 하기에 급급하다. 국회도 마찬가지이다. 결산이나 예산심사 때마다 성과가 없는 사업에 지속적으로 자금 투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부처는 더 가시적인 성과에 목을 맬 것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될 수 없다. 순환 모순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둘째, 도시재생 뉴딜의 미흡한 성과가 추후 도시재생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져 지속가능성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과거 정부의 공약이었던 녹색성장, 창조경제가 그 좋은 예이다. 잠깐 유행처럼 지나갔다고 볼 수 있으나 에너지 정책, 스타트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지금 더 적합하다. 세상이 주목하지는 않지만 뒤늦게 성과가 나타나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 정책들이 누군가의 공약이었다는 이유로, 당대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되거나 정책대안으로 취급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보조금의 무덤” 사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도시재생사업은 우리나라보다 저성장과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도시재생 답사를 간다. 성공사례만 반복하여 보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본 도시재생은 두 얼굴을 가졌다. 성공과 실패의 사례가 공존하는데 정부 주도의 보조금으로 진행된 사업들은 실패사례가 많고, 민간의 자금과 참여를 독려한 사업들은 성공사례가 많다. 특히 일본의 사례는 보조금에 의존적인 사업의 한계와 부작용을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조금에 의존적인 사업은 초기에 최대한의 보조금을 확보하게 위해 사업의 규모를 과대 포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조직의 경우 담당 공무원들은 초기 투자금만 확보하면 사업이 완료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하고 산업이 쇠퇴하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도시재생은 지속 가능한 수요관리와 유지가 더욱 중요하다. 보조금 방식의 도시재생은 이런 점을 구조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에는 ‘도시재생의 묘비’라는 제목의 정부 재정투입 사업의 실패 사례를 정리한 문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민간주도 도시재생의 경우에는 오히려 정부 보조금이 사업 중간에 투입되거나 보조금 대신 공공 부분에서 행정적 지원을 통해 사업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이익만 추구하는 민간들에게 공익적 가치 추구를 유도하는 다양한 행정지원 기술은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민간에 대한 불신 딛고, 민간참여 도시재생으로 전환 필요

현재 정부는 민간이 시행하는 도시재생은 “대규모=개발 중심=공공성 저하”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듯하다. 도시재생 뉴딜이 철저히 공공주도, 소규모 사업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도시재생은 지역이 처한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양한 접근이 요구되는 일이다. 과거 정부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했던 이유는 도시재생사업의 시너지를 위한 거점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정부가 소규모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두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다소 규모가 큰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이 아직 구체적인 결실을 얻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여전히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데 다소 소홀하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의 예산지원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나다 보니, 민간자본의 참여도 부진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민간자본이 참여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시적인 실적 요구가 불가피하고, 지역별로 속도조절을 감내해야 한다면 경제기반형과 같은 대규모 사업과 소규모 사업을 적절히 분산시키고 병행하는 것은 모두가 윈윈 하는 방법이다. 또한 일본의 보조금 중심 도시재생의 경험을 교훈 삼아 보조금이 중단된 이후의 지속가능성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우리가 도시재생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시설을 고치고,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지역주민들을 교육하는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문제의식도 없이 단순히 보조금이 지원되니 너도나도 한번 해보자는 식의 접근은 공공의 실패를 야기하는 전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어떤 지역은 지불 가능한 주택의 부족이, 어디는 노후된 건물로 인한 안전과 쇠퇴의 문제가, 또는 청년들이 떠나고 노인만 남는 도시가 되는 문제, 첨단 인프라가 부족해서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어려운 지역, 가난하기에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운 지역 등등 도시재생이 풀어야 할 우리 도시의 문제는 정말 다양할 것이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도시재생이 이루어진다면 과거 개발시대의 부작용은 또다시 우리 집에, 마을에, 도시에 반복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기술의 변화도 빠르다. 과거 해결이 어려웠던 문제들이 기술의 힘을 빌어 우리 앞에 현실이 되고 있다. 도시문제나 공간의 문제도 이제 기술과의 융합이 필요하다. 스마트 도시를 자꾸 신도시 개발이나 신도시 수출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개량이 불가능한 불량 노후주택단지에, 사람이 떠나가는 쇠퇴산업도시에 적용해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자꾸 ‘도시재생’이 아날로그식 삶의 회귀로만 비취는 것은 도시재생과 첨단기술이 융합된 스마트 도시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이 또 다른 정책 몬스터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속도조절이라도 하자. 너무 많이 진행하면 그만큼 되돌리기 어렵지 않을까.

김현아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김현아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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