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혁신 지향적 공공조달, 도전의 변곡점
[기고] 혁신 지향적 공공조달, 도전의 변곡점
  •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 이승철
  • 승인 2019.09.0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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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 이승철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 이승철

[스타트업투데이] 2015년 어느 여름날 두 명의 남성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산길을 올라간다. 어느 지점쯤 올라가서는 미리 출력해 온 듯한 지적도와 핸드폰 화면에 띄어진 지도를 비교해가며 어딘가를 찾는 듯하더니 곧이어 디지털카메라를 꺼내서 그 지점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마을 어르신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주 그런 일을 겪은 듯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국유지 조사하는 조달청 직원이라고 웃으며 답을 했다. 

조달청 업무 중에 국유지 실태조사 업무가 있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하루 온종일 조사할 수 있는 국유지는 20여 필지에 불과하다. 국유지가 한 곳에 몰려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여기저기 차량으로 옮겨 다니고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은 어쩔 수 없이 도보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드론을 이용해보자는 것이었다. 상공에서 촬영함으로써 한꺼번에 넓은 지역에 대한 조사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굳이 사람이 바로 현장까지 힘들여 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수천만 원이 소요되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장비의 구매예산확보 문제와 혹시라도 추락 시 발생되는 손해에 대한 책임 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2016년에 드론을 도입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이전에 비해 약 4배 이상의 국유지 조사가 가능하게 됐다고 한다. 

주로 레저용으로 사용되던 드론을 공공부문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은 당시로써는 꽤나 혁신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는 토지조사를 주로 하는 한국국토정보공사나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에서도 드론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2일 ‘혁신 지향적 공공조달 방안’을 발표했다. 국가가 투자한 R&D제품과 기업들이 자체 개발한 상용화 전 시제품을 공공부문에서 적극적으로 구매해 혁신 기업들의 도전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복잡한 절차와 기준으로 진입 자체가 어려웠던 혁신 제품들이 공공에서 선도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구매기관의 적극 행정을 유도하는 인센티브와 징계면책도 함께 시행될 예정이다. 앞선 사례와 같이 혁신성은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제품 구매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 동안 정부는 공공조달을 통해 정책을 지원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어왔다. 2006년 참여 정부에서는 혁신형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술개발제품을 의무 구매하도록 조치한 바 있다. 2006년 1.3조 원 규모의 기술개발제품 구매실적이 지난해에는 약 4.5조 원으로 3배 넘게 성장했다. 그러나 구매제품 내역을 살펴보면 공공에서 사용하기에 무리 없는 수준의 품질이거나 단순히 성능을 개선한 제품이 대부분으로 혁신제품을 구매하기보다는 구매목표 실적을 달성하는데 치중한 까닭이다.

비슷한 시기 EU에서는 ‘수요기반형 혁신’이라는 목적 하에 공공의 수요와 혁신제품의 연계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혁신조달 핸드북을 발간해 회원국들의 혁신성장 토대를 제시했다. 공공이 앞으로 필요로 하거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래 수요를 바탕으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 결과물을 공공에서 다시 구매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2010년 캐나다는 연구개발을 넘어 시장에 출시하지 않은 혁신 시제품을 국가의 예산으로 구매해 공공에서 시범적으로 사용해보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검증된 품질과 안정된 계약을 강조하는 공공조달 영역에서 시장에 없는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접근이나, 혁신을 구매한다(Buying Innovation)라는 개념을 반영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선진 사례들이 국내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당장의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아닌 공공영역에서 가지는 수요를 제안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그동안 사용해보지 않았던 제품을 공공이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혁신’이란 경험해 보기 이전에는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기존과 다른 방식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형성돼야만 비로소 혁신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누군가는 사용해봐야 진위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지향 공공조달 방안은 과거의 구매실적이라는 통계적 수치에 얽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도전적 시도에 높은 가치를 인정하도록 계획됐다. 국가가 공공의 영역에서 선제적으로 활용해보고 확산하는 마중물 역할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공에서 가지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재보다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해 국민 삶의 질 개선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혁신지향 공공조달의 목표이다.

이번 방안을 통해 더 많은 스타트업·벤처기업들이 자유롭게 도전해 혁신성장의 변곡점을 그려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