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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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번째 부동산 대책이 23번째 혼란에 빠졌다. 흔들리는 민심을 잡기 위해 일방적 독주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내놓은 고강도 대책이 관계 당국 간 불협화음과 복잡계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 허술함으로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부•여당은 7월 국회에서 이른바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과 `부동산 3법(소득세법, 법인세법,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 등)` 등 부동산 관련 법안 11개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시장이 안정되지 않고 혼선이 계속되자 추가 규제 입법 얘기가 나온다. 여당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가격 상승, 전세 실종, 임대차 분쟁 증가 등 시장의 부작용에 부딪히면서 땜질식 대책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최근 간담회 석상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정부에서는 보조금 줄 테니 사람을 뽑으라고 하는 격”이라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여당은 아랑곳하지 않는 기색이다. 경찰까지 나선 ‘부동산 특별단속’이 시작됐다.

전•월세 5% 상한제 적용 확대’, ‘전•월세 전환율(현행 4%) 하향 조정’, ‘표준임대료’ 도입 검토 등 국민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발언이 이어진다. 반시장적 규제에 따른 부작용을 더 강한 규제로 덮겠다는 식이다. 민의 수렴과 여야 간 대화의 생략은 물론 국회법의 법안 심의 절차마저 건너뛴 일방통행 속도전은 초보자의 역주행처럼 아슬아슬하다.

현 정부 들어 반시장적 규제 논란을 야기한 정책 이슈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분열과 공포를 앞세운 시장과의 싸움에서 승자와 패자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 임기의 전반기를 지배한 정책 이슈는 일자리 생태계에 혼란을 가져온 최저임금, 주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 제로화 등 노동정책 3종 세트였다.

아마도 차기 대선으로 이어지는 후반기는 부동산과 이와 관련된 금융 세제 문제가 될 전망이다. 자칭타칭 ’촛불 혁명’ 정부를 상대로 정규직 기회의 불공정과 징벌적 조세 인상 그리고 부동산 폭등에 항의하는 촛불집회가 열리는 모습은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을까?

지난 3년여간 사회적 논란이 된 정책 이슈들을 돌이켜보면 과거 정부의 불통과 무능에 실망했던 국민들의 감성에 울림을 주는 비전과 화려한 이벤트는 많았지만 정작 성공한 정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실패의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자며 ‘실패박람회’까지 열면서도 정작 정부는 지난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한다. 정부 정책이 실패하면 그 피해와 부담은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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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실패 원인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자원의 최적 배분과 공정한 소득분배 실현 등 본래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거나 기존의 상태를 오히려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를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라고 한다.

정부실패가 발생하는 원인은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 정확한 지식과 정보 결여, 정책수립과 집행 과정의 비효율, 조직의 비공식적 목표를 추구하는 내부성(internality), 예측지 못한 부작용에 따른 파생적 외부 효과, 관료주의 폐단과 정치적 제약, 정부 독점으로 인한 경쟁력 저하, 권력과 특혜로 인한 분배의 불공평성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이루려고 하는 조급증이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시장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대두된 정부 개입의 실패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협치’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거버넌스(governance)’ 개념이다.

‘참여정부’나 ‘국민의 정부’라는 비전도 근본적으로는 거버넌스의 철학을 지향하는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하는 현 정부에 대해 ‘정책의 배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건대 처방의 타당성을 논하기에 앞서 문제의 인식 자체에서부터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이념적 편향과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른 오진(誤診)이 처방의 실패를 결과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D.N.A+(빅데이터,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 인공지능, 자율주행)’와 디지털•그린 뉴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한다는 정부에서 오진으로 인한 정책실패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한 해답은 심리학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인간이 찾은 해법은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만 골라서 처리하는 선택적 인지(selective perception)였다. 시끄럽고 복잡한 파티장에서도 자신이 아는 사람은 잘 찾아내는 ‘칵테일파티 효과’ 혹은 같은 사물임에도 그림의 바탕이나 형태에 따라 달리 보이는 ‘착시’ 현상도 선택적 인지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선택적 인지가 위험한 것은 치명적인 판단 오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 편견, 망상과 같은 인지 왜곡이 인지적 오류의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여기에 정치가 결합되면 위험도가 배가된다.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정치 사회적 균열의 심화는 트럼프의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와 뉴스만 골라 보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영상매체의 급증으로 정보 채널이 다양화되면서 개인의 선택지가 늘어난 탓도 있지만 진영 대립 심화가 주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확증편향의 인지적 오류가 진영으로 갈라지고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과 내 지역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정치적 님비현상’이 만나면 정부와 정책의 실패를 낳고, 이는 정권을 넘어 국가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내놓는 경제정책마다 실패가 반복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이 바로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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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가치의 재발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사회적 위기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주권자인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위축되고 정부는 견제받지 않는 통치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2020년 총선은 개헌을 제외한 모든 법안•예산안의 단독처리가 가능한 180석에 가까운 거대 여당을 탄생시켰다.

자칫하면 개혁의 완성을 향한 국정 운영 동력이 일방독주로 치달을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다주택자는 도둑이고 게티이미지뱅크다주택자가 집을 사고팔면서 차익을 남기려는 사람들은 범죄자로 다스려야 한다. 논의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정부가 제시한 공공재건축 조건에 반발하는 데 대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정부 정책을 수용하면서 신속하게 새집에 들어가서 사는 게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부동산 정국에서 나온 여당 관계자들의 발언 몇 가지를 모아본 것이다. 발언의 맥락과 진정성을 신중하게 살펴야 하겠으나 정작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요동치는 민심 앞에서 여야 모두 조심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근본적인 자세 전환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야권의 비판은 차고 넘치지만 대안은 무기력하고, 여권에서는 속도가 붙은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으려면 질주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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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혁신과 기업가정신이 사라진 시장, 그리고 설득, 타협, 숙의는 없고 독주와 퇴장만 있는 민의의 전당은 2020년 대한민국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처해 있는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노자 도덕경 35장과 마태복음 13장 13절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우매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문이 닫힌 세계가 디스토피아의 공포를 실감하게 만들고 있는데, 전 국민의 지혜와 용기를 모아 희망의 문을 열어젖히려면 우선 국정 운영을 맡고 있는 이들부터 마음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구글, 아마존 등 초일류기업의 리더들은 레드 팀(red team)을 만들어 위기를 극복하고 도약을 이뤘다. 국민을 힘들게 하는 정책 실패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려면 우선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정책 시계의 속도를 정권의 시간이 아니라 시민과 국가의 시간에 맞춰야 한다.

화려한 비전이 허울의 레토릭이 되지 않도록 하고, 명실상부한 ‘국민의 나라’를 만들려면 오만과 독선, 인식의 오류를 경계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를 존중해야 한다.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시장과 싸우려고만 해서는 결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지난 3년간 이어

진 획일적 규제의 역기능과 ‘보호의 역설’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희망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역주행을 멈춰 세우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같은 나라에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나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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