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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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미국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찔하고,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UCSD)에서 공부할 때였다. 학교에서 건강보험을 지정했기 때문에 월 보험료가 얼마인지 모르고 미국에 갔는데, 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500달러 가까이 나왔기 때문이다.

딸도 있고 보험이 없으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보험료를 지불했다. 며칠 후에 치주염이 심해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 주치의에 연락했으나 연락이 제대로 안 돼 병원에 읍소하다시피 해서 겨우 이용할 수 있었다. 미국은 주치의에게 연락한 후 병원을 예약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높은 보험료를 내다보니 생활비 압박이 심해져 결국 몇 달 후에 보험을 해약했다. 그 후 얼마 안 돼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는데, 보험이 없으니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세 식구가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버텼지만, 미국을 떠날 때 큰 문제가 생겼다. 미국은 중고 생활용품을 사고파는 ‘이전시장(moving sale)’이 발달해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사서 요긴하게 쓰다가 떠날 때는 물건들을 팔아 집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침대가 일찍 팔려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더니 아내의 건강에 이상이 왔다.

평소에도 허리가 좋지 않았는데 만삭이고, 특히 방바닥에서 한기가 올라 통증이 더 심해지고 허리뿐만 아니라 배가 아프다고 했다. 발을 동동 굴렀다. 다행히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서울에 와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어떻게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았느냐고 꾸짖듯이 말했다.

이것은 남편인 필자의 잘못이 크지만, 미국 의료시스템 앞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한 존재가 되기 쉽다. 병원 이용이 자유롭지 않고 보험에 가입돼 있어도 추가로  내야 하는 비용이 많아 병원에 가게 되면 돈 걱정부터 해야 한다.

수술을 하려면 오랫동안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며칠 전에 신문과 유튜브를 봤더니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개선된 것이 없이 아직도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 의료시스템의 장점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대형병원을 제외하고 예약이 쉽고 예약을 하지 않아도 당일에 동네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감기에 걸려도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의료 수준은 높고 의료인들은 친절하며 병원시설은 쾌적하다. 게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한국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려고 하나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과 같은 우수하고 헌신적인 의료인력 확보가 어렵고 건강보험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에서 의사들이 파업하고 학생들이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다행히 대한의사협회가 민주당, 보건복지부와 각각 합의서를 작성해 파업을 철회했지만,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문제가 남아 있다. 이 문제도 합의정신에 입각해 조속히 해결되기 바란다.

 

공공의대 설립 문제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 공공의대 신설,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및 비대면 진료(원격의료) 육성 등 4대 의료정책 저지를 내걸고 총파업을 했다. 물론, 이번 파업은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 19)이라는 미증유의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네 가지 모두 큰 사안이지만 공공의대 신설이 가장 큰 논란이 됐다.

공공의대라고 불리지만 학부과정이 아니라 석박사과정의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이다.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공공의대 설립 취지는 이 대학 학생들에게 학업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고 졸업 이후엔 낙후된 지역에 의무복무를 하게 하고, 아울러 인력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감염내과·소아외과·중증외상·역학조사관 등 특수·전문분야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의대와 관련해 의사들이 크게 반발한 이유는 바로 “보건복지부 장관, 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배치기관의 장은 제24조에 따른 의무복무기간이 종료된 의사를 보건복지부 또는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우선 채용할 수 있으며, 국제기구 파견 등에 우선 선발할 수 있다”고 명시한 동 법안 29조 2항 때문이었다.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서울대학교병원 등 국립대 병원이 포함돼 있는데, 의사들이 공공의대가 ‘서울대학교병원’ 등의 의사가 되기 위한 일종의 우회로가 될 수 있는 ‘현대판 음서제’라고 비판했다.

또한, 보건복지부가 “공공의대 학생 추천은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중립적인 시도추천위원회에서 진행한다”는 해명이 ‘음서제’ 논란을 확산했다.

의대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입학하고 있는데, 추천 방식으로 뽑는다는 것은 공정의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특히 부모가 시민단체 출신이면 자식을 쉽게 의대에 보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와 여당은 한국의 공공의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턱없이 낮기 때문에 공공의료 확충 차원에서 공공의대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따져 볼 것이 많다. 먼저, 한국의 병원은 비영리법인으로서, 공공적인 측면에서 설립·운영 등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체계가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 있어 저렴한 가격으로 편리하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지방에는 도립병원, 의료원, 보건소가 있어 공공의료 기초가 마련돼 있다. 한 마디로 한국은 사실상 공공의료 시스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의대를 만든다고 하는데, 먼저 학생들에게 거의 모든 것을 무료로 해주기 때문에 공공의대를 운영하는데 막대한 예산이 들게 돼 있다.

임상실험을 할 수 있는 대형병원도 있어야 하지만, 환자 수가 제한돼 있어 인구 10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에서 대형병원은 결코 유지될 수 없다.

또한, 공공의대 신설은 세무대학을 없애고 경찰대학 정원을 줄이는 등 특수 목적 대학을 제한하고 있는 추세에도 맞지 않다.

대신 지방의대 부속병원 증설 등을 통해 의료시설을 확충하고, 좀 더 많은 의료인들이 지방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특히, 지방대학 의대생들이 그 지역에서 가능한 많이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방대학과 협력해 추진하겠다는 지역의사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그리고 공공의대에서 감염내과·소아외과·중증외상 등 필수 분야 의료 인력을 양성한 뒤 일정 기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겠다고 하나, 지금도 대부분의 의대에서 필수분야 의료 인력이 배출되고 있다.

다만, 의료 수가가 낮고 위험하기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 필수 분야 인력 활용도를 높여나가야 한다. 공공의대에서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면 기존의 의대들의 필수분야 교수인력과 시설은 사장돼 버리고, 결국 우리나라 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

두 번째 이슈는 의대 정원 증원 문제다. 정부는 2022년부터 10년 동안 연간 최대 400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400명 중 300명은 의사 수가 부족한 지역에서 근무하는 ‘지역의사’가 되고, 50명은 감염내과 등 특수·전문분야 의사, 50명은 바이오·제약·의료기기 등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장래 의료 수요를 면밀히 따져보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결정해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공청회도 개최하지 않고, 특히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정원 증원을 발표한 것은 다소 성급했다고 판단된다.

정부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인구 대비 의사 수가 낮다고 하면서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의사 수가 많다고 해서 좋은 서비스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의사 비율이 가장 높은 그리스의 경우 수술을 받으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한국만큼 병원 접근성이 높은 나라가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형병원에 환자가 몰리고 진료시간이 짧은 것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를 위해 1-2-3차 병원체계를 좀 더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환자들이 원한다고 쉽게 3차 진료기관으로 곧바로 갈 수 있게 하는 온정주의가 작용해 병원체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만 대형병원에 몰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고 지방병원도 활성화될 수 있다.

아울러 감기 같은 경미한 질병은 병원에 곧바로 가기보다는 가능한 약국을 이용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형병원 설립이 활성화되도록 법적, 제도적으로 유연성을 부여해야 한다.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문제

셋째,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문제다. 안면신경마비, 만 65세 이상 뇌혈관질환 후유증, 월경통 등 세 가지 질환에 처방하는 첩약에 건보 급여를 적용하는 시범사업으로 3년간 매년 500억 원, 총 1천5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로 결정되면, 세 가지 질환에 대한 첩약에 건보 급여가 적용돼 첩약 10일분에 14∼16만 원을 책정해 이 중 절반만 환자 본인이 부담케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에 대해 의료단체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과 약재의 안전성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는 반면, 대한한의사협회 등 한의계에서는 의료계가 한의학·한약의 효능을 폄훼하고 있으며, 시범사업으로 인해 드는 비용 또한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해칠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한다.

사실 이 문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는 매우 폭발적인 사안이다. 건보 급여가 적용되면 한약을 찾게 되고 한방이 활성화돼 상대적으로 일반 병원 환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과 같은 경우 국가에서 중의학을 양성하고 있다. 대형 중의병원도 적지 않고 중약도 많이 복용하고 있다. 한국도 한의사가 연간 700여 명이 배출돼 의료시스템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약이 더 잘 맞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첩약 급여화는 국민의 건강증진과 진료권 확대,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주장도 마냥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의료계의 이해가 크게 관계된 문제인 만큼, 관련자들의 우려도 적극적으로 수렴해 가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보험료가 계속 오르고 있어 국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데,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납부 부담과 재정 건전성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원격의료) 육성 문제

넷째, 비대면 진료(원격의료) 육성 문제다. 현행 의료법 제34조(원격의료)에 따르면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에서만 원격의료가 가능할 뿐, 의료진과 환자 간 원격의료는 금지되고 있다.

원격의료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이 된 문제인데, 의료계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코로나19 이후 원격의료는 세계 각국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고, 미국, 일본 등 의료 강국뿐만 아니라, 의료 후진국으로 분류되던 중국도 2014년부터 원격진료를 전면 허용했다.

코로나19으로 모든 산업군이 인공지능 및 비접촉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기존의 대면진료를 중심으로 구성됐던 의료시장의 패러다임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의료서비스 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앞으로 비대면 의료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펄펄 나는데 나 홀로 역주행하듯이 한국이 시행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국민과 기업에 고스란히 가고, 관련 산업 발전이 뒤처지게 된다. 이 문제는 의료계에서도 대승적으로 생각하고, 정부도 긴밀한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

단언컨대,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의료수준은 세계 최고이고,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의료 서비스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좋은 것을 깨뜨리지 말고 더 발전되도록 해야 한다. 의료인들은 의료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특히 4차 산업혁명 도래에 따라 의료 분야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는 정책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의료계와 협의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국가의 백년대계를 먼저 생각하면서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강국 전) 중국 주시안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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