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가능에 도전하는 고경찬 벤텍스 대표

“Startup to the Mountain.”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고경찬 벤텍스 대표가 던진 화두다. 고 대표의 표현은 창업이란, 등반하기 어려운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노출되면서 조난을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매순간 땀이 나고 숨이 막히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렇기에 “도전의 가치도 있다”는 것이 스타트업을 둘러싼 창업 생태계에 대한 고 대표의 지론이다. 

고경찬 벤텍스 대표
고경찬 벤텍스 대표

맨손으로 시작한 창업자는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고 대표 역시 맨손의 청춘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여지없이 “손수저”라고 대답한다. 금수저, 흙수저도 아닌 손수저라는 표현이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마이너스에서 시작했습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후 2주 만에 가세가 기울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첫 휴가 때 갈 곳이 없어 용산에 있는 용사의 집에서 휴가 내내 삼시세끼를 라면으로 때우고 복귀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제대 이후에는 더 막막했다. 복학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그래서 양말장사를 시작해 수업료를 마련했다. 고 대표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배추, 밤, 선풍기 커버, 핸드백 그리고 샤워기 등을 팔며 돈벌이와 수업을 병행해야만 했다. 

 

나는 손수저로소이다.

“졸업 후 코오롱에 입사하자마자 빚쟁이들이 찾아오더군요. 3,000만 원의 빚을 갚으라며 현금보관증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안도 가난했거니와 빚쟁이까지 찾아오는 신입사원을 신뢰할 수는 없었겠죠.”

신입사원이던 고 대표에게 주어진 과제는 정전기 방지 소재를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이었다. 신입사원에게 버거웠던 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를 그만두라는 뜻이었다고. 아무 것도 없는 부서에서 홀로 2개월간 정전기 방지 소재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석유화학단지, 자동차 제조사, 심지어 탄광까지 직접 돌아다니기를 3여 년. 고 대표는 아무 것도 없는 환경에서 불과 3년 만에 제로(Zero)였던 정전기 방지 소재 시장 점유율을 90%까지 끌어올렸다. 

이후로 ‘고경찬’이라는 이름은 코오롱에서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의 경력을 눈여겨보던 상사는 코오롱에서 독립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고 대표는 상사가 창업한 회사에 무역부 상무로 입사했고, 6개월 만에 23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저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3년 만에 부도를 맞게 됐습니다. 기업이 부도가 나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곳은 바로 거래처죠. 제 입지보다 거래처의 피해가 더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약 3억 8,000만 원의 빚을 이어받는 조건으로 회사를 인수했죠. 당시 제 연봉이 3,500만 원이었습니다.”

 

생존전략으로 선택한 기술

고 대표 입장에서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생각의 겨를이 없었던 창업이었던 셈이다. 고 대표는 전 대표와 2~3년 정도의 워크업(Work-Up) 기간을 거쳐 1999년 벤텍스를 설립했다. 벤텍스의 처음 사업모델은 일반적인 섬유소재였다. 하지만 해외 전시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상황을 경험하고 나서는 생각을 바꿨다.

“그저 그런 기술, 혹은 카피한 기술로는 승부를 보기 어렵다고 그 자리에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통상 중소기업이 생존하는 데 있어 몇 가지 전략이 있는데, 벤텍스는 생존전략으로 기술을 선택했습니다.”

얼떨결에 도전한 창업자의 길이었지만, 의지는 남달랐다. 확실한 기술집중형 기업으로서 벤텍스는 2006년부터 혁혁한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2006년에는 특수 나노 코팅 기술을 통해 1초 만에 땀을 배출시키면서 보슬비는 막아주는 ‘드라이 존(DRY-ZONE)’을, 2009년에는 특수냉강물질이 체열을 빠르게 흡수한 후 외부로 배출해 쾌적한 상태를 만들어주는 냉강성 섬유인 아이스필(icefil)을, 2010년에는 자외선 세기나 온도 등 외부환경을 감지하는 스마트 필름 타입의 오토센서(AUTO sensor)를, 2011년에는 체열반사 섬유인 메가히트(megaheat) RX를 개발했다. 또한 2014년에는 태양광에 노출되면 특수한 나노 케미컬이 적외선 파장을 흡수해 서로 진동과 충돌을 하며 30초 내에 열을 발산하는 쏠라볼(SOLARball)을 개발했다. 특히 발열, 고내수압, 고투습방수 섬유인 브리맥스(BREAMAX)를 개발, 군 전투화 내피로 납품하고 있다.

“과학은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이존 테스트를 위해 3년간 30km를 뛰어다니다 무릎이 안 좋아지면서 사이클로 테스트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한강변에 폭우가 심하게 내리던 어느 날이었죠. 엄청난 양의 물이 배수구를 통해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섬유에 배구수를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몰입하는 과정에서 주위의 현상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고경찬 대표의 남다른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에 힘입어 벤텍스는 국내 섬유업계 단일 연구소 최초로 장영실상을 4회 수상하는 등 연구개발 중심의 첨단 섬유화학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머물지 않는 천년의 청년정신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사업은 자전거와 같다’라는 것입니다. 자전거는 페달을 멈추는 순간 넘어집니다. 대기업이 네 바퀴의 자동차라면, 중소기업은 바퀴가 두 개 밖에 없는 자전거와 같습니다. 그래서 벤텍스의 사훈도 ‘머물지 않는 천년의 청년정신’이고, 연구소의 슬로건은 ‘불가능한 가능을 만든다’ 입니다. 가능한 것이 아닌 불가능에 도전해야 중소기업은 독창적인 생존전략을 확보할 수 있어서입니다.”

기술 중심의 생존전략은 벤텍스를 특허등록 86건, 특허출원 43건, 상표등록 303건이라는 기술력 보유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R&D 센터인 섬유과학연구소도 설립해 스포츠 소재부터 군수용, 산업용, 농업용, 바이오·의료용까지 다양한 소재를 연구, 개발하고 있다. 

뛰어난 기술력 덕에 글로벌 기업과의 특허전쟁도 벌어졌다. 2013년 4월, 컬럼비아 스포츠웨어는 벤텍스가 체열반사 소재인 메가히트 RX가 컬럼비아 옴니히트 소재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무효 심판을 제기했다. 하지만 고 대표는 오히려 컬럼비아의 특허가 무효라는 맞소송으로 대응했다. 특허 유효기간이 이미 지난 영국의 기존 특허와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앞세운 컬럼비아를 고 대표는 연구원 몇 명, 변리사만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1심, 2심에 이어 항소심까지 모두 벤텍스가 승소했다. 
 
이후 벤텍스는 오히려 해외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4년 12월에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나이키의 기술 파트너로 선정됐고, 2015년에는 아디다스의 기술 파트너로도 선정됐다. 이어 2016년 나이키가 브라질 리우 올림픽 공식 의류 소재로 아이스필 RX를 선택, 소재를 독점공급하기도 했다. 

모세, 차세, 용세의 전략

그렇다면, 중소기업의 생존전략은 기술만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 고 대표 역시 이와 같은 고민을 한 지 오래됐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해답을 찾았다. 고 대표는 평소 중소기업, 특히 스타트업에게는 TBM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TBM이란 기술력(T: Technology)을 갖춘 스타트업이 브랜드(B: Brand) 파워를 지닌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M: Marketing)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다. 

고 대표는 이 TBM을 ‘손자병법’에서 착안했다고 설명한다. 고 대표는 ‘손자병법’ 12편 중 5편에 등장하는 모세(謀勢), 차세(借勢), 용세(用勢)의 전략을 1002 전략으로 재해석했다. 모세란 역량을 극대화해 성과를 창출하는 과정을, 차세는 고도성장을 위해 대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전략을, 용세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기술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을 높이 날리기 위해서는 바람, 실 길이와 강도 등의 한계상황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연을 드론으로 대체하면 이런 한계상황을 고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처럼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철학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모세의 전략이죠. 벤텍스는 모세의 전략 기반 하에 ‘Philosophy’와 ‘Technology’를 결합해 ‘필로테크(PhiloTech)’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없던 기술에 사랑을 더한다는 의미로 비즈니스 모델에 ‘HEALing’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HEALing의 H는 Human Love, E는 Earth Love, A는 Animal Love, L은 Life Love, 그리고 ing는 벤텍스는 머물지 않는 천년의 청년정신으로 불가능한 가능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차세와 관련해 고 대표의 얘기는 이렇다. “창업자, 특히 엔지니어는 A부터 Z까지 모두 자신이 하겠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드론을 만드는 것과 드론을 날리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드론 제작은 기술적 이해가 필요하지만, 드론 비행은 해당 지역의 규제, 환경을 이해하고 그 지역에서의 전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용세는 기업의 지속 성장전략으로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 시장을 입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전략에서 고 대표는 시그마(∑)를 도입했다. 즉 전략을 구상한 것이다. 이는 기술을 재해석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으로, 드론에 무엇을 장착하느냐에 따라 드론의 쓰임새가 바뀌듯이 섬유의 기술을 어느 곳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해당 산업의 문화는 물론이고 기술의 라이프 사이클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이처럼, 고 대표는 스타트업이 기술 등의 핵심 역량을 좀 더 유연하게 이해하고 넓은 시야로 해석할 것을 당부했다. 

“섬유는 장치산업이면서 노동집약적인 산업입니다. 이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섬유는 사양산업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섬유도 충분히 스마트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고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이하 앱)을 담아냈듯이, 벤텍스도 섬유에 앱을 설치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앱은 스마트폰에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는 응용프로그램을 의미하지만, 업계에서는 응용분야를 의미하기도 한다. 고 대표는 이를 섬유에 적용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HEALing의 H에는 헬스케어 기술이 적용된 소재(파워클러, 스포츠 마스크 패치, 수면 리프팅 패치)를, E에는 에너지 저장기술 적용 소재(히터렉스, 메가히트 RX, 아이스필 RX)를, A에는 동물보호 기술 적용 소재(덕다운과 구스다운을 대체할 수 있는 쏘라볼, 쏠라필)를, L에는 라이프 케어 기술(슈퍼드라이존, 드라이코튼, 브리맥스, 오토센서)이 적용된 소재를 담아냈다.

현재 벤텍스는 2017년 고어텍스가 거의 독점해 온 전투화 내피를 납품하게 된 것을 발판으로 국방력 강화에 기여할 계획이며,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또한 2018년에 B2B에서 B2C로 사업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1월에 미국의 파트너와 전략적 제휴로 미국 내 현지법인을 설립해 미국 군납 및 미국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또한 미국 스포츠 시장 공략과 함께 세계적인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인 VIP닷컴과 T 셔츠 사업에 관한 독점계약을 체결해 본격적인 B2C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편 기술 수출 사업도 본격화할 방침이다. 

고 대표는 벤텍스가 아직 성공한 기업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성공은 과연 인류를 행복하게 했는가,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보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이지 외형의 성장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벤텍스가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2018년을 기점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앞으로 벤텍스는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소재혁명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겠습니다.” 

저작권자 © 스타트업투데이(STARTUP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