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전) 중국 주시안 총영사
이강국 전) 중국 주시안 총영사

주진한당(周秦漢唐) 등 13개 고대 왕조의 수도로서 역사유적이 즐비한 시안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친링(秦嶺)산맥에 다다른다. 진(秦・친)나라의 땅이었기에 친링(秦嶺)이라고 부르며, 동서길이 1,500km, 남북길이 100~150km, 해발고도 1,500~2,500m의 장중한 산맥으로 중국 중부를 동서로 관통하면서 황허(黃河) 수계와 창장(長江) 수계의 분수령(分水嶺)을 이룬다. 

친링산맥 북쪽에 떨어진 빗물은 웨이수이(渭水)로 흘러가고 웨이수이는 황허로 합쳐지며, 친링산맥 남쪽에 떨어진 빗물은 한수이(漢水)로 흘러가 창장에 합쳐짐으로써 원천이 갈리게 된다. 

‘어떤 사실이나 사태가 발전하는 전환점, 또는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결정되는 고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분수령이라는 말은 이처럼 친링산맥을 기점으로 황허와 창장의 원천이 갈린다는 데서 나왔다. 친링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인 타이바이산(太白山, 3,767m)에는 ‘分水嶺’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 (출처: 필자 본인)
케이블카에서 바라다 본 타이바이산의 위용(왼쪽)과 타이바이산 분수령 비석(오른쪽). (출처: 필자 본인)

다사다난했던 2019년이 가고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가 끝나고 내년이 시작될 즈음에 우리는 ‘다사다난했던 해’라는 말을 또다시 할 것이다. 새해에도 많은 일이 예정되어 있고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국제적으로 보면 미국 대선이 있는데,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하원에서 가결되고 상원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홍콩사태 태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대만 총통 선거도 실시돼 양안 관계 파고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압승함으로써 그동안 혼돈을 거듭했던 브렉시트는 속도를 낼 것이다. 비록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서명이 곧 이뤄지지만 패권 경쟁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미·중 관계 긴장 국면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연이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희망을 갖게 했으나, 그 후 북한은 수차례 미사일을 발사하여 긴장을 조성하더니 김정은이 최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미국을 상대로 ‘충격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새로운 전략무기까지 예고하면서 한반도 정세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강제징용 배상문제로 촉발된 한일 대치국면은 새해에도 낙관을 불허할 것이다. 4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사인 총선이 예정돼 있다.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 평가와 함께 2022년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건곤일척의 승부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중요한 문제는 경제문제일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2020년 중소기업 경기 전망 및 경영환경 조사’에 의하면 응답 기업의 36.0%가 내년 국내 경제가 ‘나빠질 것’으로 답했다고 밝혔고, 중소기업 경영환경을 전망하는 사자성어로 암중모색(暗中摸索)을 꼽았다고 한다. 한국경제를 그만큼 어둡게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하반기에 1% 성장률에 빠졌고, 올해 경제성장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3%로, 국제통화기금(IMF)은 2.2%로 내다보고 국책연구기관들은 2.4%로 예상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내외 민간연구기관들은 1%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간 1%대 경제성장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한국이 경험하지 못한 길이다. 물론 최근 경기 부진은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국제경제 환경 악화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등 국내 정책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경기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확대재정 정책을 채택하고 금년도 예산을 사상 최초로 500조 원 넘게 편성했다. 경기 회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권고한 사항이지만 복지급여 확대와 같은 의무지출 증대는 장래의 재정 건전성을 제약하고 국민들의 노동의욕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정부 역할을 늘리는 것은 기업의 경제활동에 상충된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투자를 늘리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잘되는 것이 국가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국민들의 고용과 산업경쟁력과 직결된 기업의 발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기업 투자 견인, 특히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제조업 기지를 두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들이 미국에 얼마나 공장을 건설하는지를 체크하고 있다. 자국 기업들에게는 외국에 투자하지 말고 국내로 돌아오라고 하고, 외국 기업들에게는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도록 유무형의 압력을 포함하여 각종 조치를 취하고 있다. 

LG화학이 미국 오하이오주에 제너럴모터스(GM)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고,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미국 내 공장 신설은 중국, 유럽과 더불어 중요성이 커지는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 변화에 적기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글로벌 기업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일자리 창출에 사활을 건 트럼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맞추는 측면도 있다. 

우리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해 발전을 도모한다니 좋은 일이지만 우리나라에 이러한 공장들이 들어섰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도 일자리 창출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2017년 5월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일자리였고, ‘1호 업무 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주문하고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해 놓고 점검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기 반환점을 넘긴 지금, 출범 당시의 기대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은 우리 경제가 가야 할 방향이지만 너무나 경직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오히려 있는 일자리도 무너뜨리고 경제의 발목을 잡는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제정책은 어떤 분야보다 유연해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이치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세계 13위권의 작지 않은 규모이고 수출액은 6위를 달리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IT 부문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유주의 시장경제 발전의 성공적인 사례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자학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자본주의 경제가 생산성이 높고 활력이 있는 이유를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서 찾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발전해 가도록 격려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이 정부지원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신명나게 일하도록 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 세계 각국은 친링산맥 타이바이산(太白山) 보다 더 높은 4차 산업혁명의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친기업이니 친노동이니 공론을 일삼을 때가 아니다. 우리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나라들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한 번 뒤처지면 만회할 기회가 없어 영영 후발주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정책을 전환하는 용기를 보여준다면 높은 봉우리에 오를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저력을 바탕으로 한국경제가 어려움에서 빠져나와 재도약의 분수령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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