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는 실패할 수 있고, 훌륭한 창업자는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다만 실패 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새롭게 생겨나는 다른 스타트업들 성공의 밑거름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1. 시장요구에 정확히 맞춰지지 않은 제품을 출시한 경우
코로나 사태로 미팅을 미루던 중 최근 A기업의 CEO를 만나게 되었다. 이 회사는 기존에 외산 의료장비를 수입하여 국내 대형 병원과 의원에 판매하고 있는 회사이다. 몇 년 전 그를 만났을 때 신규 사업 아이디어로, 병원에 납품되는 의료장비를 온라인 사이트를 통하여 거래하는, 소위 ‘온라인 플랫폼 구축사업’을 필자에게 소개하였었다. 그 후 그는 이 아이템으로 창업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최근 미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플랫폼 비즈니스란 플랫폼에 대한 수요자들의 신뢰가 중요할뿐더러 이러한 플랫폼의 존재를 수요자에게 알리는 활동에 엄청난 물질적, 시간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플랫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내 유수의 포털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트래픽(사용자 접속)이 일어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게다가 이 의료장비 온라인 거래 플랫폼의 경우, 콧대 높은(?) 병·의원 구매자들이 바쁜 시간을 내어 이름 없는 플랫폼에 들어와서 제품을 잘 구매하지 않는다는 시장의 실제 상황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이와 같이 플랫폼 비즈니스는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굴러갈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사전분석이 필요하다. 즉, 목표 고객과 시장에 적합한 제품(Product-Market Fit)이라야만 성공할 수 있다.
2. 우수한 개발자 채용 및 유지에 실패한 경우
B스타트업은 2018년 CRM(고객관리 솔루션) 개발을 위한 사업계획을 세우고 개발자 채용에 들어갔다. 국내 유명한 채용 회사에 광고를 내고 취업을 원하는 개발자들을 상대로 면접 일정을 잡아 나갔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면접 일정을 확정한 후보자들이 자꾸 일정을 취소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원인을 파악해 보았더니 이들이 채용 관련 정보공유 사이트에 들어가 취업 희망 회사의 평가를 확인해본 뒤 인터뷰 계획을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창업 초기라 기업인지도가 없어 이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인 추천 등을 통하여 어렵게 개발팀을 꾸려 열심히 개발하던 중 개발자 한 명이 퇴사하였다. 초기 개발에 투여되는 시간이 상당히 많아 그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직하였던 것이다. 한편, 여러 사정으로 솔루션이 당초 일정대로 출시되지 못하고 지연되자 이번에는 개발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회사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작할 때는 CEO와 의기투합하여 프로젝트를 맡아 개발을 추진하였으나 급속한 외부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따른 개발 변경, 개발 실무자들의 불완전한 성과 등으로 인하여 개발총괄로서 막중한 책임을 다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스타트업의 경우 우수한 개발자를 채용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껏 채용하여 훈련을 시켜놓으면 떠나고 하니 회사로서는 손실이 크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CEO는 확실한 개발자 확보 및 운영에 대한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제품개발 시작 단계부터 완성될 때까지 이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제품개발을 완수할 수 있어야 한다.
3. 자금 유치 실패 사례
2019년 봄 필자가 베를린에 근무할 당시 국내 우수 스타트업을 베를린에 초청하여 벤처캐피털 앞에서 피칭을 하고 투자유치 기회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다. 참가한 스타트업들은 국내에서 나름 유망한 회사들이었고 대부분 시리즈A 단계 투자유치를 희망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사전에 전문가로부터 발표자료 작성, 발표 시 표현 방법, 질의응답 등에 대한 코칭을 받았다고 들었으나 행사 당일 피칭세션에 참가하였던 유럽의 다른 스타트업과 비교하면 수준 차이가 났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 스타트업들의 영어 실력은 생각보다 좋았으나 투자유치를 위한 핵심 메시지 전달이 다소 부족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국내에서 정부 프로젝트로 사업을 시작한 C스타트업은 자전거 헤드라이트의 각도를 넓혀 야간 주행 시 주변 상황을 더 넓게 파악함으로써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제품을 소개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투자자들로부터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하여 투자유치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원인을 확인해 본 결과, 투자자들은 ‘자전거 이용자들이 추가 비용을 내고 이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지 않다’고 평가하였다고 한다.
스타트업 CEO는 사업 초기 계획하였던 대로 자금이 확보되지 않으면 회사를 낭떠러지 앞에 세워 놓는 심정이 될 것이다. 급한 마음에 여러 투자자에게 콜드콜(Cold-call : 나를 모르는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연락하는 것)을 하지만 성공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창업 초기부터 사업추진 일정별, 자금출처별 IR 계획을 수립하고 차근차근 끈질기게 추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전통적인 자금출처인 은행이나 벤처캐피털 외 SNS 등을 통하여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활용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4. 조직 운영상의 문제가 있는 경우
D스타트업은 현재 제품의 출시가 계속 미뤄지는 상황이다. 당초 금년 6월에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초기 설계도에 따라 개발되던 제품이 이제는 거의 다른 형태의 애플리케이션이 되어가고 있다. 솔루션이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CEO가 외부 미팅만 다녀오면 고객의 소리를 반영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 기능이 추가되거나 UI/UX를 변경한다고 한다.
회사 내 기획담당자와 개발책임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CEO의 의지대로 제품의 변경되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하지만 CEO 입장에서는 경쟁사 제품과 비교하여 보면 자사 제품이 늘 부족하다고 느껴 당초 개발계획의 틀을 바꾸게 되고, 지금은 초기 설계도의 모습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도 잘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이와 같이 스타트업 경우 CEO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기술개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린 후에는 개발업무는 개발책임자에 맡기고 CEO는 회사경영 전반, 투자유치 등에 집중해야 경영 효율이 오른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처럼 조직을 세분화하여 정확히 업무를 분장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기획, 개발, 마케팅, 투자유치 등 주요 영역별로 역할분담을 명확히 함으로써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조직 운영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스타트업이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은 CEO로부터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