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지 기반 프리미엄 서비스 추구

아일랜드박스의 박용순 대표.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아일랜드박스의 박용순 대표.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스타트업투데이] 아일랜드박스의 박용순 대표는 싱가포르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다 자녀의 대학 진학 시기에 맞춰 한국으로 이주했다. 좋은 곳을 찾던 중,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보고 싶단 생각에 제주도를 선택하게 됐다.

박 대표는 제주도에 살면서 얼마 되지 않아 맛있는 귤을 골라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자칭 ‘까다로운 소비자’였던 그는 “지금 먹고 있는 이 과일, 정말 잘 익은 게 맞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아일랜드박스는 여기서 시작했다.

 

프리미엄 제철 식품 예약 구매, 연간 구독 서비스

과일은 나무에서 제철까지 길러야 당도와 풍미가 올라간다. (사진=아일랜드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과일은 나무에서 제철까지 길러야 당도와 풍미가 올라간다. (사진=아일랜드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아일랜드박스는 생산지에서 전문가 시식 평가를 통해 엄격하게 검증한 과일만 가장 맛있는 제철에 선별해서 보내는 '프리미엄 제철 식품 예약 구매, 연간 구독 서비스'다. 현재 제주의 대표 생산품인 다양한 귤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귤은 겨울철에만 생산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주도에서는 1년 내내 10종이 넘는 다양한 종류의 귤이 생산된다. 제주도 여행에서 늘 귤을 살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각의 귤은 품종별로 맛이 가장 좋은 제철이 있다. 레드향은 1~2월, 천혜향은 2~3월이 제철이다. 한라봉, 하우스 감귤, 황금향 등의 품종은 또 다르다.

박 대표는 제철이 아닐 때 수확한 귤은 모양은 그럴 듯해도 좋은 맛을 내기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모든 과일은 나무에 매달린 채 오래 길러야 당도와 풍미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과일들은 최고로 맛있는 시기까지 나무에서 익지 않고 일찍 수확돼 유통 과정에서 후숙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이를 수익성과 재고 부담 등 유통상의 이유, 즉 경제성의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귤은 품종별로 제철이 다르다. (사진=아일랜드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귤은 품종별로 제철이 다르다. 가장 맛있는 기간은 대부분 1~2 개월 사이다. (사진=아일랜드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왜 우리는 맛이 들쭉날쭉한 과일을 먹어야 할까요? 저는 소비자가 과일을 구입할 때마다 하게 되는 ‘맛없으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전문가의 검증을 통해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대표는 국내 대기업, 외국 대기업 정보기술(IT) 업종에서의 기술과 마케팅 업무를 해온 경력이 있다. IT와 전통적인 산업의 융합에 관심이 많아 해외 여행객을 위한 민간 숙박 공유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등 세 번의 창업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그와 아일랜드박스에서 함께하고 있는 아내 김소진 이사는 금융과 온라인 서비스 전문가로, 외국계 은행에서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외환 온라인 트레이딩 상품 개발과 마케팅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며 경력을 쌓아온 이들 부부는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자 서비스 기획을 시작, 준비 과정을 거쳐 2019년에 아일랜드박스를 창업했다. 현재는 2명의 직원까지 총 4명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당도·산도·풍미 등 종합 평가 후 '가장 맛있는 귤' 선정

아일랜드박스는 일반적인 온라인 쇼핑몰과 다른 유통 구조를 가졌다. (사진=아일랜드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아일랜드박스는 일반적인 온라인 쇼핑몰과 다른 유통 구조를 가졌다. (사진=아일랜드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그렇다면 아일랜드박스의 서비스는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을까?

아일랜드박스는 각각의 귤이 가장 맛있는 제철에, 농사가 잘된 생산자의 귤 중에서도 고당도 귤만 선별하는 과정을 거쳐 예약 주문과 정기 구독 신청을 한 소비자에게 보낸다.

“저희는 편리한 ‘빠른 배송’보다 좋은 품질을 위해 ‘느린 배송’을 추구합니다."

일반적인 온라인 쇼핑몰은 주문 후 상품이 즉시 배송된다. 하지만 아일랜드박스는 미리 확보한 물건을 오랜 기간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주문 시기와 상관없이 제철에 맞춰 배송이 진행된다. 주문은 1년 내내 언제든지 가능하다.

귤은 원하는 품종만 골라서 단품으로 구매하거나, 1년 동안 4회 혹은 6회에 걸쳐 다양한 구성으로 배송되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주문할 수 있다. 아직은 단품 판매의 비중이 훨씬 높으며 구독 서비스는 약 300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다.

귤의 당도를 검사한 후 선택적으로 수확 작업을 진행한다.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귤의 당도를 검사한 후 선택적으로 수확 작업을 진행한다.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아일랜드박스는 같은 품목의 귤이라고 해도 매년 농가를 새롭게 선정한다. 과거 우수 생산자에 대한 데이터는 참고만 할 뿐, 매해 당도 선별과 시식 평가를 통해 가장 좋은 상품을 생산한 생산자의 귤만 구매한다는 것이다.

“우수 생산자들의 귤은 평균적으로 맛있지만, 그해의 날씨, 작황, 생산자의 개인 사정 등에 따라 ‘가장 맛있는 귤’의 생산자는 계속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생산자를 미리 정하지 않고 수확기에 엄격한 평가를 통해 농가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귤 농가는 매년 새롭게 선정한다.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귤 농가는 매년 새롭게 선정한다.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박 대표는 2018년 겨울에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제철 귤 배송을 50차례 이상 진행하면서 핵심 고객층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첫 번째는 가격보다 맛과 품질의 가치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로 젊은 직장인, 자녀를 둔 가정 주부 등이 해당합니다.

두 번째는 고급 농산물 유통망이 잘 갖춰지지 않아 프리미엄 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크지만, 구매 방법이 마땅치 않은 지방 도시 지역의 소비자들입니다. 1인당 소득 수준은 서울의 강남만큼 높지만, 고급 상품 소비 여건이 좋지 않은 기존 유통 시장의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족도가 높은 선물을 찾는 소비자들도 주 소비자로 꼽았다. 부모님과 따로 생활하는 대도시 소비자, 기업 차원에서 만족스러운 선물을 찾는 선물 구매 담당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농산물 소비 경험 제공

협력 생산자 단체의 당도​·산도·크기 자동 선별기.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협력 생산자 단체의 당도​·산도·크기 자동 선별기.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박 대표는 아일랜드박스와 그들의 서비스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이유 있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아일랜드박스는 와디즈에서 20 차례의 펀딩을 진행하면서 소비자 만족도와 재구매율을 인정받았다. 와디즈의 '메이커 어워드'를 2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는 맛있는 귤을 보내드릴 수 있는 공급 능력이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생산자 단체와 함께 구축한 선별 프로세스를 통해 소비자가 1년 내내 맛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문할 수 있는 고품질 상품 대량 공급 능력을 갖췄습니다. 빠른 배송, 새벽 배송 등 속도를 주요 경쟁 요소로 삼고 있는 기존 유통과 명확하게 대비되는 ‘제철 느린 배송’도 아일랜드박스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우리의 가치를 전달하면서 생산지 기반 프리미엄 서비스라는 인식을 주고 있죠. 나아가 우리는 새로운 농산물 소비 경험을 제공합니다. 온라인으로 생산지에서 농산물을 구매할 경우 품질, 패키지, 마케팅, 사후 처리 등에서 판매자가 소비자의 높은 수준을 맞추지 못해 불쾌한 경험을 하기도 하는데요. 저희는 백화점 수준 이상의 소비자 경험을 하실 수 있도록 상품과 서비스를 설계하고 개발했습니다.”

아일랜드박스 배송센터의 모습.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아일랜드박스 배송센터의 모습.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올해 4월, 저온 숙성한 한라봉을 발송한 직후 과일이 상해서 도착했다는 소비자들이 발생했다. 아일랜드박스는 바로 비상 대응 체제를 가동했고, 박용순 대표는 직접 수백 명의 구매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바로 환불 절차를 진행했다.

박 대표는 상품 선별과 포장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택배 운송 과정에서 상품이 손상되는 경우가 발생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특히 과일 선정 과정에서 보관성에 대한 평가가 미흡한 경우 과일 손상은 대량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한 불만과 불평을 걱정했던 것과 달리, 거의 모든 소비자가 대표가 직접 전화로 연락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오히려 더 믿음이 간다는 피드백을 보내왔고, 박 대표는 품질 문제가 오히려 고객의 신뢰를 얻게 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일랜드박스의 본질적인 서비스 가치는 '검증된 품질의 프리미엄 제철 상품'이다.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아일랜드박스의 본질적인 서비스 가치는 '검증된 품질의 프리미엄 제철 상품'이다.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아일랜드박스는 아직은 외부 투자를 받지 않았다. 박 대표는 작년 내부 사업 평가에서 시장 진입과 성장에 대한 확신을 가졌지만, 서비스의 성공을 결정할 핵심 요소는 수요를 늘리는 것에 앞서 수요 증가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고품질 상품 공급 능력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올해 초에는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실행하기보다는 공급 능력과 운영 시스템 보강에 집중했다. 그는 다가오는 겨울 시즌부터는 빠른 성장을 목표로 하며,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략적인 투자자가 있다면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일랜드박스는 귤 이외의 상품으로도 확장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다. 곧 축산물, 수산물, 가공식품 판매를 차근차근 시작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상품 종류가 다양해져도 아일랜드박스가 추구하는 ‘검증한 품질의 프리미엄 제철 상품’이라는 서비스 가치는 똑같다고 말한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애플망고를 추석에 맞춰 후숙이 필요 없는 완숙 상태로 수확해서 선물용으로 판매했습니다. 또한, 제주 지역 전통 과자인 과즐을 여러 업체 시식 평가를 통해 선정, 스토리텔링과 함께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귤 외에도 상품 품목을 차근차근 확장하고 있다. (사진=와디즈 아일랜드박스 애플망고 판매 상세 페이지 갈무리)
귤 외에도 상품 품목을 차근차근 확장하고 있다. (사진=와디즈 아일랜드박스 애플망고 판매 상세 페이지 갈무리)

아울러 아일랜드박스의 생산지 기반 직접 유통 모델을 다른 지역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능력과 열의를 가진 스타트업에 아일랜드박스가 축적한 경험과 운영시스템을 제공하면서 초기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일랜드박스는 지난해 지방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지원 사업인 로컬크리에이터로 선정돼 여러 도움을 받았다. 박 대표는 로컬크리에이터 프로그램이 창업 단계, 성장 단계, 도약 단계 등으로 구분돼 단계별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지방에서도 각 지방의 특성을 잘 살리는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이 늘어날 것 같다고 전했다.

(사진=아일랜드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올해 아일랜드박스는 공급 능력과 운영 시스템 보강에 집중했다. (사진=아일랜드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지방에는 많은 능력 있는 분들이 지역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직접 유통에 필요한 상품기획, 소싱, 디자인과 패키지, 마케팅, 운영시스템, 정보통신기술(ICT)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분들께 유통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 제공자이면서 전략적 투자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전국 각 지역에 파트너 네트워크가 완성되면 파트너들이 모여 전국 규모의 프리미엄 제철 식품 예약구매, 구독 서비스 ‘마켓 플레이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박 대표는 이를 통해 소비자가 월별로 정리된 전국 각지의 제철 식품들을 주문하고, 검증된 맛과 품질의 먹거리를 제철마다 받아본다면 매력적인 서비스가 될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감귤 농장에 방문한 박용순 대표.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감귤 농장에 방문한 박용순 대표. (사진=아일랜드박스 제공)

[스타트업투데이=신서경 기자] sk@startup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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