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선홍의 스타트업 견문록 4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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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창업을 꿈꿀 때, 우리의 아이디어가 멋지게 인정받아 투자를 받고, 세상에 주목받아 성공하는 상상을 하곤 했어. 시작만 하면 쉽게 될 줄 알았지. 그런데 막상 부딪혀보니까 이론과 현실은 다르더라고. 

스타트업의 필독서라는 책들을 죄다 읽어봐도, 그들의 스토리와 나의 길 사이에는 큰 괴리감이 있었어. 창업부터 지금까지 모든 단계마다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교과서적인 지침서들이 딱 맞는 해답을 주지는 않아. 그건 그냥 보편적으로 두루두루 공감하도록 쓰여진 방법론일지언정 너에게 맞춰진 설루션이 아닌걸. 그리고 간단하게 설명된 한 문장조차 현실에서 적용할 때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법인 설립하러 가기 전까지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 팀빌딩은 쉬울 줄 알았고, 회사 경력이 있다 보니 시제품을 만드는 건 시간문제라고 여겼어. 그리고 곧 투자자들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지. 이 글 보니깐 웃기지? 진짜 무식했어. 그때 조금만 더 알아보고, 더 공부하고, 더 준비했더라면 보다 많은 뻘 짓은 안 했을 거고, 시간과 비용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했을 거야. 창업자들은 잦은 실수와 미흡했던 경험들을 큰 자산/수업료라고 애써 포장하려 하지. 하지만 시행착오나 경험을 통한 체험이 항상 좋다고 할 수는 없거든. 이왕이면 실수를 적게 하고, 불필요한 곳에 힘을 빼지 말아야 해. 더군다나 우리 같은 스타트업들은 한 번 삐끗하면 대미지가 크다는 걸 잊지 마. 효과적/효율적이어야 해. 군더더기 빼고 달려야 한다고.

 투자 유치라는 게 서적의 한 챕터처럼 쉽게 되는 건 아냐.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면 이러한 결과가 나온다는 식의 짧은 산출 논리 속에 담긴 많은 숙제들이 있어. 언제부터 언제까지 라는 스케줄을 잡고, 누구를 타깃으로 만나야 하고, 그들을 만나기 위한 방법과 루트, 무엇을 보여주고 어떻게 공감시킬 수 있을 건지 전략을 짜는 행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 실행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응하고 해결해야 하지. 책으로 배운 창업과 실전에서 마주하는 창업은 확실히 다르다고. 

투자라는 것은 신기루와 같아. 신기루는 물체가 실제의 위치가 아닌 위치에서 보이는 현상이야. 일반적으로 사막이나 극지방에서 불안정한 대기에 의한 온도차로 빛이 굴절하면서 생기지.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못 찾겠어.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손에 잡히지는 않아. 여기저기서 투자를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들리는데 왠지 나만 못 받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생기기도 하지. 

나름 계획은 짜 놓았는데 생각만큼 관심을 가져주는 투자자들도 없고, 막상 여러 번, 여러 사람을 만나더라도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해. 투자유치가 될 듯하다가도 손을 뻗으면 사라지는 허망한 경험을 자주 하게 될 것이야. 그만큼 자신감도 떨어지고, 점차 불안해지기도 하지. 까놓고 말해서 자금조달이 필요한데 시간은 흐르고, 노력에 비해 결과가 안 나오는 상황이면 똥줄이 탈 거 아냐. 

그럼 우리는 왜 이렇게 느끼는 걸까? 다시 본질부터 짚어 가자고.

 

투자의 신기루 현상 : 투자자/투자사와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찾고 있어 

투자를 꿈꾸는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투자자를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정작 만나 본 투자자들은 투자할 스타트업이 없다고 말하지. 투자자가 없는 게 아니라 미스매칭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해. 

일단 확실하게 해 둘 것은 투자자가 널 찾아오지는 않아. 그나마 콜드 콜이나 콜드 메일을 보내면서 투자자를 만나려는 창업자들은 나은 편이야. 액션 없이 투자자 만나기 어렵다고 푸념하는 동지들을 보면, 참 안타까워. 마치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곰 같아. 

일단 콜드 콜/콜드 메일은 필수적이야. 해결의 실마리는 반복이고, 업그레이드야. 하루에도 수 십 개의 회사소개서/사업계획서/투자 요청 연락(cold call/cold mail)을 받는데 경험 있는 투자자는 메일 내용을 슬쩍 살펴봐서 눈에 딱 들어오지 않으면 다음 차례 메일로 넘어가지. 근데 일회성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날라 오는 메일에는 관심이 더 갈 수밖에 없어. 반복해서 비비면 마찰열이 생겨서 cold를 hot하게 바꿔줄 거야. 물론 빠르게 스팸처리될 수도 있지만... 그거 두려워서 메일 안 보낼 거야?

그리고 “IR 대회”라던가 “데모데이”를 찾아가. 메일만 보내기는 기본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현장에 가서 만나는 게 더 효과적이야. IR이나 데모데이에서 처음부터 무대에 올라 피칭하려고 하기보다는 그전에 여러 번 참관해서 다른 스타트업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포인트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지 들어봐. 그리고 심사역들이 지적하거나 남겨주는 코멘트들을 하나씩 기록하면서 그 질문들을 나에게 적용해 보는 거야. 그럼 네가 피칭하는 그때에는 더 준비된 모습으로 투자자들에게 어필하고 있을 거야. 

투자상담회도 좋은 기회야. 초기 스타트업에게 1대 1 투자상담회는 어차피 가봤자 투자사들이 원하는 투자 바운더리 범주에 들지 않기에 의미 없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 어디서 그런 루머가 생겼는지 몰라도, 초기 투자에 집중하는 투자사들도 생각보다 많이 참여하지. 그리고 상담회에 가서 지금 우리 현황과 투자유치에 필요한 부분이라든지 궁금한 점을 다 질문해서 답을 받아올 수 있어. 더불어, 꼭 그때 만난 투자상담자와 꾸준히 연락하다 보면, 건너 건너 너의 투자 파트너를 만날 수도 있어. 기회라는 것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야.

개인적으로 지인을 통해 소개받아 연락을 하는 경우와 네트워킹 또는 강연 자리 등을 통해 명함을 주고받은 후, 리스트화하여 연락을 주기적으로 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더라고. 여기서 지인은 어찌 보면 처음에는 모르는 사이였는데 만나고, 소개하고, 커피 마시고, 전화하다 보니 가까워진 케이스지. 
 

신기루는 사막/극지방에 있기에 존재한다

 우리가 투자자를 신기루처럼 느끼는 이유는 환경적인 요인도 있어. 지금 당장 다급하게 투자자를 찾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지. 돈이 막 필요해서 찾아다닌 사람에게 돈은 더 멀어지듯이 눈앞에 닥친 자금난을 해결하고자 투자자를 찾아다니면 시야도 좁아지고, 서두르다 보니 놓치는 게 많아져. 마치 사막이나 극지방에서 신기루가 나타나듯이 우리의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제대로 볼 줄 모르게 되는 거지.

따라서, 투자 유치를 준비하기 위해서 시간과 자금에 여유가 있을 때, 진행하는 게 좋아. 간당간당 쫓기듯이 찾아다니면 바로 앞에 있는 기회도 못 보고 지나치거든.

하나의 팁을 주자면, “내가 만약 이 정도 금액을 투자하는 투자자 입장이다.”라고 생각해 보면서 진행하는 게 도움이 될 거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회사를 냉정하게 평가해봐. 네가 언급하고, 주장하던 많은 제안과 조건들이 새롭게 보일 거야.

몇몇 드물게 짧은 시간에 투자를 유치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정말 드문 경우야. 투자도 역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풀어가는 업무다 보니 회사에 대한 현황뿐만 아니라 대표자와 팀원의 구성과 사업 확장에 대한 계획과 보상, 창업하게 된 스토리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투자자와 소통해야 해. 다시 말해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그리고 그 시간 동안을 버틸 체력(자금)이 있어야 하는 거지. 내일 당장 지급해야 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협상을 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조건임에도 무작정 달려드는 실수를 범할 수 있지. 그래서 시간이나 돈에 쫓겨서 투자 기회를 찾아다니는 상황보다는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시간적 여유와 운용자금이 있는 상황에서 준비하는 게 낫다고 봐.  

 

불안정한 대기에 의한 온도차로 빛이 굴절

 무지개나 신기루와 같은 간섭현상은 빛의 굴절이라는 자연현상으로 발생하는 거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업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게 되면서 신뢰를 형성해야 하는데 급조한 회사 소개서나 대충 구색을 맞춘 IR 준비는 투자자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투자를 많이 받으려고 근거 없이 기업 가치를 올려놓거나 포장만 그럴듯하게 맞춰서 투자자를 만날 생각은 하지 마. 투자라는 영역은 자금과 회사 평가에 이력이 난 프로들의 세계라고. IR이라는 자리에서 어설프게 말발 세워서 잠깐 동안은 호기심 자극을 할 수는 있어. 하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고 실무에 대한 팔로윙(후속 진행)을 하게 되면서 본질은 드러나게 되어 있어. 재무제표 하나만 봐도 대략 돈의 흐름과 회사 현황, 경영진이 어디에 더 집중하고 있는지, 관리는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거든. 

 그리고 여러 투자심사역들 간에 크로스체킹을 하기도 해. 그러니 지키지도 못할 말이나 부풀려진 말들은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 있어. 그러니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 잘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에 대하여 투자자와 함께 고민하는 것도 좋아. 어차피 스타트업이란 게 불안정하고 미흡한 것이 많다는 건 투자자도 알고 있어. 억지로 약점을 숨길수록 그 뒷감당 어떻게 할래? 왜곡된 회사 정보는 투자자 입장에서 굉장히 큰 리스크야. 투자심사역도 괜찮은 투자처를 발굴해야 하는데 교묘하게 포장된 곳을 잘못 선택했다가 커리어에 흠집 잡힐 수 있거든. 그래서 더 철저하고, 확실하게 확인하려 하고, 경영진은 투명한 정보 공개가 기본이야. 

서로 너무 극과 극의 조건으로 미스매칭 되기도 해. 예를 들어, 기업가치에 대하여 투자자와 창업자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어. 그리고 지분 형태, 금액, 납입조건, 배당, Exit 방법 등 다양한 조건에서 온도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어느 정도 서로 좁혀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하고, 조율/협상 가능한 범위가 정해져야 하지. 가끔은 정말 택도 없는 조건들을 고수할 때가 있어. 서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협상 결렬이지 뭐. 투자자도, 창업자도 사람이야. 그러니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 양측 모두 노력하려고 하지. 어느 한쪽이라도 귀를 닫거나 고집이 강해서 더 진전이 없다면, 서로를 위해 신속하게 맺음을 짓는 것도 필요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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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가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이유는?

 투자 유치에 대한 A부터 Z까지 모두 직접 챙긴다면 꽤 고단하고 어렵게 보일 거야. 그래 봤자 창업자가 다 잘할 수 없는 게 현실이야. 그래서 가능한 주변에 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거나 의뢰할 수 있는 게 좋아. 특히 계약 관련한 법적인 자문과 상세 투자조건에 대하여는 멘토 또는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게 더 낫지. 물론 창업자가 아예 신경 끄라는 건 아니야. 너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빌리되, 배워가면서 전체적인 흐름과 체크는 해야지. 

무조건 높은 금액, 높은 가치로 투자받는 게 좋지는 않아. 후속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면, 오히려 너무 고평가 된 회사가치는 다음을 준비하고 있는 투자자에게는 부담이 되거든. 따라서 업계 평균/유사한 체급의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투자 유치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 적절한 가격을 조율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야.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는 꼭 확인할 필요가 있어. 전혀 엉뚱한 분야에 대한 투자 레퍼런스가 있는 곳과 매칭 되면 자금 외에 기대할 수 있는 지원, 도움이 제한적이거든. 투자 포트폴리오에 우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곳이 있는지, Exit 성공사례가 있는지를 살펴보길 바라. 투자자가 회사를 평가하듯이 우리도 투자사를 충분히 알아보고 진행해야겠지? 

 VC(벤처캐피털)이나 액셀러레이터, 엔젤클럽 등 우리가 초기에 접할 수 있는 투자자들은 나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취업하기 위해서 이력서를 비롯한 증빙서류를 내면, 회사 측에서 서류심사라는 단계에서 필터링하는 것과 서류 통과자에게 대면 면접과 인적성 평가를 하듯이 여러 단계를 걸쳐 검증하잖아. 투자자들도 창업자와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단계별 절차를 따라서 다각도로 확인하지. 이 단계를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근데 사실 이건 쉬운 편이야. 매뉴얼화되어진 절차는 그 기준에 충족되기만 하면 통과할 수 있거든. 그리고 이러한 기준들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기에 달성할 수 있어. 

 오히려 어려운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성이야. 투자자와 창업자 서로 간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부분이지. 첫 만남에서부터 신뢰관계가 되기까지가 쉽지 않거든. 그건 투자유치금액의 크기에 따라 더 강한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거든. 투자 심사역을 넘어서 투자사 임원들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창업자의 역량이 중요해지지. 만남이 지속될수록 서류나 숫자에서 알 수 없었던 정성적인 진실에 가까워지고, 사람이 전부인 스타트업의 특성상 회사의 진면목을 보일 수 있게 되지. 

투자라는 것은 단지 돈이 아니야. 만약 자금만 필요로 한다면, 투자보다는 융자가 더 낫다고 생각해. 이전 칼럼에서 융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던 것 기억하니? 잘될 사업이고, 지금 당장 자금만 필요하다면, 융자를 통해 이자를 지불하는 게 더 경제적인 판단이야. 하지만 투자는 자금을 넘어서 동행할 파트너를 얻는다는 점을 인지해야 해. 사업에 대한 여러 영역에 있어 도와주는 인맥/인프라/네트워킹을 끌어 올 수 있거든. 

이렇게 몇 단락의 글을 읽었다고 해서 쉽게 이룰 수는 없는 일이야. 하지만 직접 만나보고 여러 투자자들을 경험하면서 점차 알게 될 거야. 막연함은 실행하지 않았을 때 가장 크다는 것을.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한 숨만 쉬며 고민하기보다 지금 바로 행동하길 바라. 우리는 스타트업이잖아.

글:채선홍 ㈜클린그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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