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순환 재도전 생태계 활성화 위한 제도 혁신의 당위성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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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나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빌 게이츠(Bill Gates)나 페이스북(Facebook)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같은 기업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그 이유는 실패를 관용하는 제도와 문화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가는 창업에 성공하기 전 평균 2.8회의 실패를 경험한다고 한다. 창업도 학습이기 때문에 실패 경험이 많아질수록 우수한 혁신기술을 사업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재도전 창업 지원의 필요성


본질적으로 기술창업은 고위험의 모험사업(high-risk venture business)이다. 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단절적 미래 기술일수록 현재의 표준과 달라 실패의 위험이 크다. 하지만 성공할 경우의 보상도 크다.

이런 혁신적 창업은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은 이미 외국에서 검증된 기술과 사업모델을 모방해 국내에 도입하거나 또는 연장선상에서 사소하게 개선해 적용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야말로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개척자적인 창업은 전무하다고 할 만큼 드물다.

과거에 대기업이 빠른 후발자(fast-follower) 전략을 추구했듯 창업도 안정적으로 추종하는 토양이 글로벌 1등 기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위험도가 낮은 안전한 창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한번 실패한 경우 다시 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도전 지원정책과 제도


정부에서도 재도전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해 2010년부터 재도전 지원정책을 시작했고 2014년 재도전종합지원센터를 설립했다. 현재 전국 18곳에서 운영 중인 재도전종합지원센터는 재창업 기업이 경영 애로를 극복하고 실패경험을 자산화하도록 법률, 세무, 회생절차, 신용회복, 재창업자금, 사후관리 등의 지원을 종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2020년 재창업자금 예산 규모는 1,200억 원에 달하며 이 중에서 기술혁신형 재창업자에게 60%가량인 720억 원을 지원해 주고 있다. 재창업 기업은 대출금리 2.15% 수준에 60억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재창업자금을 지원받게 되면 신용회복, 파산면책, 개인회생, 채무조정 등에서 우대를 받을 수 있다. 신용도 상승이 가능해 서울이행보증보험의 이행 및 인허가 보증보험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원제도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아직 뚜렷이 나타나지 않고 않다. 이제 겨우 10년이 돼 가는 재도전 지원은 여전히 미완의 정책으로 현장과의 괴리가 커서 개선 체감도가 미흡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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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도전 억제 요인


재도전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일차적 이유는 사업 실패 비용(cost of business failure)이 과도해 재도전 잠재력을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재기중소기업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폐업할 때 평균 8억 8천만 원의 부채와 4,400만 원의 세금 체납을 안게 되며, 회사정리 비용에 약 1억 9천만 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대보증 채무비율은 75%로 사업이 실패하면 대다수 기업인과 가족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신세에 처한다.

실패기업은 파산면책을 받기도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장을 가동하지 않고 파산면책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면 설비와 자산의 가치가 헐값이 돼 재창업 자금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융자 중심의 자금조달, 창업자 연대보증, 채무조정의 경직성, 납세채무 가산금, 파산 시 면제재산 비현실성 등의 제도적 한계는 실패 비용을 극대화해 사업실패를 인생파산으로 직결시킨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기업인이 사업에 실패하면 사람도 못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금융기관의 관행도 기업 실패를 조장하고 재도전을 억제한다. 중소기업은 환경변화에 취약하다. 경기침체나 전염병과 같은 외생변수가 발생하면 사업이 일시적으로 부진해진다. 이런 경우에 대출 유예가 필요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역으로 리스크 관리를 내세워 대출을 회수하려 든다.

수십년 동안 사업을 잘해 오던 기업인이 일시적 경영난에 봉착해 한번 원리금을 연체하니 모든 금융기관이 몰려와 대출을 회수해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비 올 때 우산을 걷어가는 관행이 아직도 팽배한 것이다.

실패한 기업인이 금융시장에서 재창업 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 한번 신용불량자가 되면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보증기관도 이전에 상환하지 못한 보증서를 핑계로 재도전에 필요한 보증을 해주지 않는다. 과거의 실패 이력이 낙인으로 남아 재창업에서도 차별받는 이중처벌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재창업가는 대부분 제조업이 아닌 소상공인으로 시작한다. 생계형 취업에 불과한 소상공인 수준의 재도전에서 혁신 창업은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벽은 재도전 기업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다. 우리 사회에는 창업에 대한 모순된 시각이 혼재돼 있다. 창업을 칭송하면서도 기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도전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부정적이다.

실패기업인으로 낙인찍힌 재창업가와는 아무로 거래하려 하지 않는다. 정부도 재도전에 대한 자금 지원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복지성 예산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재도전 지원이 원론적 수준을 넘어 제도 개선의 각론에 들어가면 온통 걸림돌 투성이인 것이다.

 


재도전 활성화 위한 정책 방향


재도전을 장려하려면 우선 사업 실패를 예방하고 실패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사업전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사업이 부진해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전환과 기업회생에 관한 교육과 컨설팅이 강화돼야 한다. 기업회생 절차와 워크아웃 프로세스도 개선해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관행도 획기적으로 변화돼야 한다. 신용불량 정보의 공유를 제한하고 일정 기간 이후에는 삭제하는 정책을 추진해 낙인효과를 완화해야 한다.

대출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연대보증 제도의 폐지도 필요하다. 2018년부터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의 정책금융기관은 연대보증제도를 폐지했는데 앞으로 민간금융으로도 확대해야 한다.

재도전에 대한 자금 지원도 융자에서 투자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태펀드에 재도전펀드를 설립해 혁신기술의 재창업가에게 상환의무에서 자유로운 자금이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재도전 기업도 ‘가벼운 창업’(lean startup)으로 실패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2014년 ‘중소기업창업 지원법’에 재창업을 지원하는 조항이 포함돼 재도전 지원제도가 수립됐으나 아직 불충분하다. 성실 실패자의 재도전에 대한 신용회복, 조세 채무 부담 완화, 금융지원, 투자펀드 등을 제도화하려면 별도의 재기지원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 인식과 정부의 시각이 부정적이어서 ‘재기지원법’을 입법화하는 것은 요원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실패를 사회적 자산으로 접근하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재기지원은 사회안전망이며 새로운 혁신성장의 발판이라는 사회적 선언과 범국민 캠페인이 전개되기를 소망한다. 패자부활전이 제도와 관행으로 정착된 사회가 건강하고 건전하다. ‘창업 → 성장 → 회수 → 재창업’의 선순환 생태계가 활성화돼야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시장을 흔드는 선도적 혁신기업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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