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다양성을 볼 때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에 초점을 둔 첫 정책연구는 2015년의 ‘국내외 액셀러레이터 심층 분석 및 법제화 방안’이다. 당시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의 의뢰는 창업생태계 안에 액셀러레이터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의 업에 대한 정의가 부재하고, 투자법인 지위를 얻지 못하다 보니 일반법인으로 활동하며 이중과세 적용을 받는 등 애로사항이 크다는 것이었다.

당시 1990년대 말 벤처 붐에 이은 ‘제2의 창업 붐’이라 할 정도의 창업 대중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시의성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중요했다. 3개월간 연구진과 집중적인 작업을 통해 액셀러레이터를 정의하고, 최소의 요건을 정하며, 이들의 의무사항과 정책적 지원 사항을 정리했다. 이 내용은 중소기업창업지원법 2장에 구성돼 2016년부터 시행됐다.

위 연구를 기억하면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첫 번째는 액셀러레이터 법제화를 통한 기대효과 계산 부분이다. 초기 액셀러레이터는 자발성에 기반해 우수 창업팀을 발굴했는데, 이들에 법적 지위가 부여된다면 액셀러레이터는 얼마나 늘 것이며, 창업은 얼마나 성과를 거둘 것인가를산출해달라는 발주처의 요청이 있었다. 수치적으로 확신은 없었으나 액셀러레이터의 활동은 지속력이 유지될 것이며, 유사한 활동을 수행하는 잠재적 액셀러레이터를 제도화해 활동의 공신력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2015년 당시 28개이던 액셀러레이터가 법제화로 인해 얼마까지 늘어날까, 생태계에 기여하는 효과가 얼마일까. 정량적 수치 산출을 위한 가정은 두 가지였는데 첫째, 2025년까지 3년 이내 초기 창업 단계 투자 비중이 글로벌 수준(58.8%, 당시 한국 30.0%)에 도달한다고 가정했다.

둘째, 액셀러레이터 신규 등록이 75%, 유사지원기관의 전환이 15%, 해외 액셀러레이터의 국내진입을 10%의 비중으로 가정했다. 이렇게 도출한 정량적 수치가 <표 1>이다.

출처: 김선우 외 (2015), 국내외 액셀러레이터 심층분석 및 법제화 방안, 창업진흥원.
출처: 김선우 외 (2015), 국내외 액셀러레이터 심층분석 및 법제화 방안, 창업진흥원.

현재 액셀러레이터는 259개가 등록돼 있다(2020년 6월 30일 기준, K-스타트업(K-startup) 홈페이지). 5년전 예측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액셀러레이터가 등장, 등록했다. 주식회사나 비영리법인뿐만 아니라 유사기관(창업투자회사, 기술지수회사, 신기술사업금융회사, 신기술창업전문회사, 유한회사형투자회사(LLC))의 액셀러레이터 등록도 15.1%다. 무리한 가정이 아닌지 의심했던 기대 효과가 현실에서는 더 큰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액셀러레이터의 법적 기반을 제정법으로 갈 것인지, 개정법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정책연구를 마칠 때까지 지속된 것이다. 액셀러레이터가 투자하는 대상이 극초기기업 혹은 예비창업기업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되며, 기존 벤처캐피탈이나 창업보육센터가 물질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액셀러레이터는 무형적 지원이 대부분으로, 기존 법제상에 담기 어렵다는 것이 연구진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정법으로는 국회 통과가 어려워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제2장에서 액셀러레이터의 등록, 초기 창업자의 선발 및 투자, 전문보육 등에 관한 사항을 담는 개정법으로 반영됐다. 얼마 전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이 시행됐다(2020년 8월 12일).

법제처에 나타난 제정 이유로 ‘벤처투자 주체별로 여러 법에 분산돼 있어 국민들이 쉽고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투자대상 등을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생태계의 변화에 탄력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 부각됐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투자 활성화의 기반을 마련하고, 벤처투자 산업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취지에 공감하며, 5년 전 제정법으로 추진하지 못한 내용이 더 깊어지고 확장된 개념으로 반영돼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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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셀러레이터의 ‘3면 활동’

액셀러레이터의 기대 효과 이상의 성장과 법적 기반 정비 이외에 최근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발표를 들으며 새삼 놀란 경험이 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주관한 ‘2020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의 ‘구성원이 바라본 생태계’ 트랙에서 DHP 최윤섭 대표는 액셀러레이터로서 보는 액셀러레이터의 활동을 ‘3면 활동’으로 제시했다.

유한책임투자자(Limited Partner·이하 LP)에게 출자를 받아, 극초기 창업기업에 투자하고, 전문보육을 받은 스타트업이 벤처캐피탈에 후속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한다는 점에서 3면이었다. 그러면서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을 초기창업기업의 파트너이자 벤처캐피탈의 파트너이며, 기업 LP를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게 하는 채널로 제시했다.

먼저, 액셀러레이터는 극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전문보육 및 투자한다는 점에서 스타트업의 위게티이미지뱅크험 감수를 낮춰준다. 초기 창업기업은 경험이 없고, 네트워크나 전문성이 부족해 이들의 시행착오를 파트너 관계에서 줄여준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초기 창업팀의 구성을 돕고, 아이템을 보완•검증하면서 비즈니스모델을 구체화하는 것, 그리고 기관투자자의 후속투자를 유치하기 전까지 버틸 수 있는 시드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 벤처캐피탈의 검증 비용을 낮춰주는 파트너 역할이다. 신기술이나 이머징마켓에 벤처캐피탈이 직접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액셀러레이터가 선제적으로 팀을 구성해 기술 사업화, 시장 검증한 곳에 벤처캐피탈이 투자하도록 해 자본의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이다. 법제화 이후 5년,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 가교인 동시에 가치 창출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셋째, 액셀러레이터와 LP의 연계는 대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채널의 역할이 된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처럼 새로운 시장에서 학습이나 실행이 어렵고,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고 멘토링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액셀러레이터가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액셀러레이터의 기능으로 자본 증식의 수단은 고려하지 못했는데, 기업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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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셀러레이터 역할의 변화

2010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프라이머(Primer)를 시작으로 쿨리지코너, 패스트트랙아시아 등이 초기 액셀러레이터 업계를 이끌었으며, 2015년 연구 당시 28개의 액셀러레이터가 곧 300개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단지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수행하는 역할과 제도권 내 기반이 5년 전과 확연히 다르다. 앞으로 5년 후 또다시 역동적으로 변화해 있을 액셀러레이터의 역할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기대하며 몇 가지 발전적 조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스타트업이 액셀러레이터에 대해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객관적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액셀러레이터 300개 시대’라고 하지만 스타트업 입장에서 적합한 액셀러레이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최윤섭 대표의 말처럼 액셀러레이팅은 과정(process)이기 때문에 결과가 쉽게 드러나지 않고,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액셀러레이팅으로 인함’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측정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소위 돈만 많이 투자하는 곳이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와 라이스대학은 액셀러레이터의 활동을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해 랭킹을 발표함으로써 이들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씨드 액셀러레이터 랭킹 프로젝트(Seed Acclerator Rankings Project•SARP)가 그것인데, 이 프로젝트는 액셀러레이터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이들의 성과(performance)에 대한 정보는 창업가에 제공되고 있지 않아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개별 거래 세부사항은 밝히지 않는 선에서 전체적인 성과를 창업가에게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성과는 투자기업의 기업가치(valuation), 기업공개(IPO) 혹은 500만 달러 이상의 자본 증가, 액셀러레이팅 졸업 후 1년 내 2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은 투자기업의 비율·생존, 창업자 만족도 등이다. 우리도 우리 스타트업생태계에 적합한 지표를 찾고 이를 공개하는 한국형 씨드 액셀러레이터 랭킹 프로젝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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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셀러레이터가 다양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

역동적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야기하며 우리는 창업자의 다양성만을 봐왔다. 연쇄창업자가 얼마인지, 여성 창업자는, 대기업 출신은, 우수 대학 출신은, 교수 및 연구원 창업자는 얼마인지 등을 모니터링했다.

그러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창업자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이 투자자(액셀러레이터)의 다양성이다. 액셀러레이터는 투자 단계, 선호(기술) 분야를 기반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씨드(Seed) 단계 투자를 중심으로 하는지, 프리 시리즈 A(Pre-Series A) 단계 투자를 중심으로 하는지 선호 투자단계로 세분화해 강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선호하는 기술이나 분야를 중심으로 세분화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대형 액셀러레이터만이 살아남는 시장이 아니라 중소형 액셀러레이터도 본인의 강점으로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 정부는 이스라엘의 TIP를 벤치마킹해 팁스(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를 2013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액셀러레이터 가운데 역량 있는 기관을 운영사로 지정해 연구개발(R&D) 자금(5억 원 이내), 사업화, 판로 등의 자금을 일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중소형 액셀러레이터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운영사로 지정받기 어렵다. 예를 들어 요건 가운데 ‘보육공간 500㎡ 이상 갖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규제성 요건은 없애고 특정 분야, 특정 단계에서 액셀러레이팅을 제대로 하는가로 평가 지표가 바뀔 필요가 있다.

액셀러레이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액셀러레이터 법제화 이후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생태계 초기 단계라 시장의 원리로만 작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일정 부분 정부의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액셀러레이팅은 불확실성이 크고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시장구조로, 단기적 수익 창출이 어렵다. 이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으로 벤처캐피탈의 후속 투자 연계와 조기 회수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 즉, 보육한 스타트업에 벤처캐피탈이 후속 투자를 할 경우 일부를 회수(exit)해 수익을 창출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벤처캐피탈이 액셀러레이터의 구주를 인수할 때 신주 투자에 준하게 인정함으로써 이러한 메커니즘이 인센티브로 작동하게 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기업가정신 생태계, 중소기업 기술혁신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글로벌창업네트워크 이사, 기술혁신학회 이사, 한국창업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외에 도 중소기업심의회 전문위원회 창업벤처 전문위원회 위원, 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 민간위원,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전문위원회 중소기업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기업연구단 김선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기업가정신 생태계, 중소기업 기술혁신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글로벌창업네트워크 이사, 기술혁신학회 이사, 한국창업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외에 도 중소기업심의회 전문위원회 창업벤처 전문위원회 위원, 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 민간위원,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전문위원회 중소기업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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