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등 M&A 활성화 대책 추진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갈 길이 멀다. 국내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M&A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각종 규제는 물론이고, 4차 산업혁명에 반드시 필요한 인공지능, 센싱 기술, 자율주행과 같은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스타트업을 발굴하기가 여의치 않아서다. 이에 중소벤처기업부는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혁신성장 생태계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산업 클러스터를 육성한다는 국가 차원의 전략은 결국 규모를 키워 경제적 가치를 만들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국민을 위한 일자리와 부의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생태계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산업 초기에는 많은 기업이 설립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대기업에 의해 또는 여타의 이유로 통합 과정을 거치게 된다. 기술 중심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금까지 보아온 산업 생태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기업의 진입과 퇴출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고, 인수합병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기업의 기술가치 순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매년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는 미국의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 이하 지놈)은 보고서를 통해 주요 도시별 스타트업 환경을 분석한다. 지놈은 스타트업 생태계의 라이프사이클을 활성화-세계화-확장-통합의 과정으로 본다. 

지놈은 2017년 4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스타트업의 출구전략(Exit)은 직접적인 방법으로 생태계의 크기를 증가시킨다고 분석했다. 기술 중심의 생태계에서 대기업은 풍부한 경험과 자원을 기반으로 미래 유망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더욱더 성공의 길을 걷게 된다. IBM, 인텔(Intel),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치열한 세계 시장과는 달리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놈이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을 통해 분석한 ‘스타트업 생태계 가치’는 실리콘 밸리 2,640억 달러, 중국 베이징 1,310억 달러인 반면, 서울은 24억 달러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네이버 D2SF가 2017년 9월 22일에 진행한 기술 스타트업 비전 및 가치 공유를 위한 데모데이 행사 모습 (출처: 네이버)
네이버 D2SF가 2017년 9월 22일에 진행한 기술 스타트업 비전 및 가치 공유를 위한 데모데이 행사 모습 (출처: 네이버)

삼성전자, 처음으로 국내 스타트업 인수

이렇게 스타트업 생태계가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국내 스타트업 M&A 시장 역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5~2016년의 대기업 또는 대기업 계열사의 스타트업 M&A는 거의 전무했다. 2015년의 경우, 카카오게임즈홀딩스가 셀잇과 카닥을, 카카오가 록앤올과 포도트리를 인수했다. 2016년에는 카카오가 파킹스퀘어를, 동원홈푸드가 더반찬을, SK플래닛이 헬로네이처를 인수한 사례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기업 입장에서 자신들이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그러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될 때 M&A가 이뤄진다. 카카오가 ‘김기사’를 개발한 록앤올을 인수한 후 카카오내비로 서비스를 한 경우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저조했던 2년간의 기록을 뒤로하고 2017년에는 눈에 띌만한 M&A들이 진행됐다. 네이버랩스-에피폴라, NHN페이코-모코플렉스, 카카오게임즈홀딩스-블루핀, 티몬-플라이트그래프, 라인게임즈-넥스트플로어, 네이버-컴퍼니에이아이, NHN엔터테인먼트-아이엠컴퍼니, 라인플러스-네무스텍, 넥슨-코빗, 네이버-캠프모바일 등의 M&A가 진행됐다. 여기에 그간 해외 스타트업 인수에만 참여했던 삼성전자가 11월 28일, 인공지능 챗봇을 개발하는 국내 스타트업인 플런티를 인수한다고 발표하며 화제를 모았다. 플런티는 2015년 1월에 창업한 인공지능 기반의 메시징 앱을 제공하는 회사로, 2016년 9월에 삼성전자 무선사업부(IM)에서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티브 스퀘어 1기 멤버에 최종 선정되면서 1억 원 가량의 지원금을 받고 삼성전자 서울 R&D 캠퍼스에 입주한 바 있다. 플런티는 ‘Fluenty.ai’라는 누구나 쉽게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을 제작할 수 있는 봇빌더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삼성전자는 플런티 인수에 이어 12월 6일, 삼성넥스트를 통해 빅데이터 처리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인 블레이징DB에 290만 달러의 시드 투자를 단행했다. 블레이딩DB는 SQL 엔진을 개발한 회사로, 클라우드 기반의 GPU에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SK텔레콤, 한화자산운용과 함께 AI 얼라이언스 펀드를 설립하기 위해 제휴를 맺었다. 각각 1,500만 달러를 출자해 조성한 펀드는 인공지능(AI)과 핀테크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현재 대기업들은 M&A보다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orporate Venture Capital: CVC)을 통한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텍스트, 네이버는 D2 스타트업 팩토리(D2SF), SK플래닛은 101스타트업 코리아 등을 통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넥스트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CVC로, 루프페이를 인수해 삼성페이 서비스로 출시한 사례가 있다. 

네이버의 D2SF는 기술 스타트업 육성 기관으로, 지난 2년여 간 AI, VR·AR, IoT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16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지난해 11월 29일에는 비닷두(V.DO), 딥메디(DeepMedi), 알레시오(Alethio)와 같은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 중 비닷두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석·박사들이 주축이 된 스타트업으로, 딥러닝 기반의 동영상 분석 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 박사들과 신경외과 전문의가 공동 창업한 딥메디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알레시오는 딥 러닝(Deep Learning) 기반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태아의 입체 초음파 사진을 분석한 후 특징을 추출해 예상 생후 사진으로 변환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알레시오의 솔루션은 최근 이미지 생성, 복원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GAN) 알고리즘을 활용했다. GAN은 서로 다른 인공지능이 상호경쟁을 통해 상호 성능을 개선하는 머신 러닝 방법이다. 구글 브레인 팀의 수석 과학자인 이안 굿펠로우(Ian Goodfellow)는 인공지능에 게임이론을 접목, 효과적인 학습 방법을 구상하다가 GAN을 개발했다. GAN은 데이터의 진실유무를 구분하는 ‘판별기’와 이 판별기를 속일 수 있을 정도로 진짜 같은 데이터를 만드는 ‘생성기’의 한 쌍으로 이뤄져 있다. 이 둘을 한서로 대립관계에 두고 계속 학습을 시키면 더욱 높은 정확도를 지닌 생성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은 해외에서 더욱 치열하다. CB 인사이츠(CB Insights)에 따르면, 구글은 2012년 이래 11개의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인수했고, 애플, 페이스북, 인텔 등도 관련 스타트업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17년 상반기에만 이들 글로벌 IT 기업들이 인수한 인공지능 기반의 스타트업이 34개에 달할 정도로 매우 인기 있는 분야다. 특히 포드자동차는 2017년 2월에 아르고AI를 10억 달러(약 1조 1,500억 원)에 인수한 바 있다. 포드는 이 10억 달러를 5년에 걸쳐 투자하고 2021년까지 아르고 AI 플랫폼 기반의 자율주행 자동차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늘 나오는 이야기, 규제 완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규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벤처기업 M&A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이 벤처기업 M&A를 주저하게 하는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지주회사의 지분율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지주회사는 손자회사 및 증손회사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비용과 경제성이 최우선시 돼야 하는 M&A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2010년 SK는 초음파기기 의료장비회사인 메디슨을 인수하려 했지만 지분 확보(비상장 자회사 40%)가 지주회사 지분 규제로 인해 어려워지자 인수를 포기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또한 벤처기업이 대기업 집단에 편입된 이후 모회사의 후속 투자가 어렵다는 점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기업은 벤처기업 인수 후 7년간 편입을 유예하고 있으나, 이를 최소 10년 이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밖에 대기업집단 계열사 편입 시에 부당지원행위 금지, 계열회사 간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특수관계인과 거래금지, 소속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 제한 및 대기업 집단의 공시의무 부담 등 규제가 부과되고 있어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 후 집중 육성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창업 생태계 육성을 위해 지난해 11월 2일 ‘혁신성장 생태계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혁신창업 친화적 환경 조성, 벤처투자자금의 획기적인 증대, 창업투자 선순환 체계 구축 등이 그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이 중에서 코스닥, M&A 등 회수 시장의 비활성화, 사업실패에 대한 부담, 재도전 환경 취약 등 지속되고 있는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점진적·분절적 정책에서 벗어나 ‘민간’과 ‘사람’ 중심으로 혁신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기술혁신형 M&A를 촉진하기 위해 대기업 등의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선제적 직권조사를 실시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또한 혁신기업 M&A에 대기업 등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제도 개선 및 세제 지원 확대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피인수 벤처·중소기업의 중소기업 지위유지 기간을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편입 유예 기간에 맞춰 3년에서 7년으로 연장한다는 것과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을 M&A할 경우 적용되는 세액공제 요건을 완화(M&A 대가의 현금지급요건 삭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벤처기업 확인 권한을 민간위원회에 이양하고 혁신성 및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이 집중 지원받을 수 있는 선별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민간이 대상을 선정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방식을 확대해 사내벤처 지원제도, 창업 선도 대학, 창업 도약 패키지, 재도전 프로그램 등에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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