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K의 목표는 초연결 시대 필수 기술인 보안, PUF 기술의 종주국!”

유승삼 ICTK 대표이사 부회장 (출처: ICTK)
유승삼 ICTK 대표이사 부회장 (출처: ICTK)

 

한 소년이 있었다. 남들처럼 특별한 꿈도 없었다. 그러나 하기 싫은 것은 있었다. 무엇을 고치고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아버지가 엔지니어라 가족 친지들의 고장 난 선풍기, 라디오 등을 고칠 때 납땜하는 ‘조수’ 역할이 지긋지긋해서였다. 그러다 고교 2학년 때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대학 졸업 전, 휴렛팩커드(HP) 본사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간 이후 직장생활은 승승장구했다. 삼성HP 상무, HP 본사 전략제휴담당 이사를 거쳐 마이크로소프트(MS) 빌 게이츠 회장에 의해 한국MS 초대 사장이 된다. 바로 유승삼 ㈜아이씨티케이(ICTK)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의 이야기다. 그동안 ICT 분야의 굵직굵직한 역사를 써온 그는 현재 우리 나이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컴퓨터 분야의 최고 전문경영자이자 기술과 경영을 겸비한, ICT 분야의 산증인인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대표님의 어린 시절 꿈과 주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남들과 달리 특별한 꿈은 없었습니다. 부모님도 ‘네 인생은 스스로 알아서 선택하라’고 하셨기에 요구사항이 없으셨고요. 그런데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분명했습니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정밀 기계를 전공하신 엔지니어이셨는데, 만들고 고치는 것을 즐기셨어요. 따라서 가족 친지들의 고장 난 선풍기, 라디오 등 전자제품 수리는 아버지 몫이었습니다. 문제는 4형제 중 유독 저를 ‘조수’로 삼으셨어요. 친구들하고 한창 놀 나이에 얼마나 짜증이 났겠습니까?(웃음) 그래서 그때 결심했습니다. 커서 돈 벌면 고치고 만드는 일은 안 한다고요. 대신 다른 사람을 시키면 된다고 생각했죠.”

 

중·고교 때나 성인이 된 대학생 시절에는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대학 유학 시 컴퓨터를 처음 학과에서 배우고 졸업한 세대였는데, 소프트웨어 개발도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즐기는 것도, 잘하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해서 전문 개발자를 고용해서 일을 시킬 정도는 배워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컴퓨터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는 도구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철학, 미술, 음악 등에는 재능이 없었습니다. 중·고교 때 상업 과목에서 복식부기를 배웠는데 학력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니 주위에서 공인회계사가 유망하다며 자격증 취득을 권유했지만 기준에 따라 처리하는 일이 재미없어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그래도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 고민하다가 공장장이 괜찮을 거 같아 산업시스템공학을 전공했는데 결국은 오늘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잘 선택한 진로 결정이었습니다.”

 

열일곱, 고교 2학년 때 미국 유학은 당시로선 흔치 않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아무래도 가족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어려서 고향을 떠나 평양에 정착, 조선 개화기에 기독교와 신문물을 받아들인 선각자이셨어요. 상해임시정부 각료를 지내신 이동녕, 이동휘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독립운동 자금 조달책으로 활동하셨는데 아들 모두는 해외 유학을, 딸 셋은 여고를 졸업시킬 정도로 교육열이 높으셨어요. 그런 계몽주의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입버릇처럼 미국에 보내 달라고 했어요. 그럼 백부처럼 고학으로 유학하여 세계 최고의 문물을 배우고 돌아와 가르치고 전파하겠다는 말이 씨가 되어 결국 실리콘밸리 태동기에 유학 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미국에서의 학창 생활은 어땠습니까?
“당시 실리콘밸리는 태동기라 황량하다고 할 정도로 척박했어요. 학기 중에는 신문 배달, 정원사부터 가사도우미 일을 했고, 긴 여름방학 동안에는 과수원에서 살구도 따고 과일 통조림 공장에서 계절 노동자(seasonal worker)로 일하며 고교와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봉사활동, 합창단은 물론 고교 총학생회 부회장, 대학 과대표 등 아주 다양한 학생회 활동과 단체에서 땀을 흘렸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열심히 살았어요. 특히 산호세주립대학 재학 시 ‘AIIE San Jose Chapter’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교수님들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이 돈으로 자판기 사업을 해서 우리 과의 활동 운영비를 조달해 다른 공대 자치단체의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 된 적도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웃음) 아마 이때부터 스타트업의 조직을 경험한 듯합니다. 또 행운이었던 것 하나는 다른 유학생과 달리 유학기간 동안 미국 중산층 가정의 일원으로 생활하며 청교도 철학과 가정 문화를 직접 체험한 것도 소중한 자산입니다.”

 

HP와의 인연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데요, HP 시절의 소회와 성과는 무엇입니까?  
“1973년 졸업하기 전 여름방학 때 인턴사원으로 입사했어요. 그런데 꼼꼼히 보니 계산기 디스플레이 발광소자에서 발광조도 차이로 12~15%의 제품을 불량처분하는 겁니다. 회사에서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맡겼을텐데, 생산의 모든 과정을 역추적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어요. 설마가 사람 잡은 격이죠.(웃음) 곧 입사를 권유받고 사내 대학원 장학생에 선발됐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귀국할 계획을 밝히니 대학원 혜택을 준 거죠. 일하면서 스탠퍼드 공대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공업경영 전공 석사수업을 받았습니다. 현장 경험과 함께 체계적인 학문 접근방법을 흡수할 좋은 기회였어요.
83년 삼성과 HP 합작 추진과 동시에 8년간 삼성HP 합작법인에서 상무로 근무했어요. 84년 당시 서버 및 워크스테이션 시장 1위 업체는 IBM이었고, IBM의 OS와 주변기기들은 한글화가 미진한 상태였어요. 매년 10억 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확보해 한글화, 지역화에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한 결과 OS, 터미널, 프린터, 스토리지에 이르기까지 HP 모든 제품에서 한글을 공식지원하게 됐죠. 또한 HP UX에서 한글을 지원하기 위해 2바이트 완성형 한글을 최초로 만들었고 이를 HP 전 제품에 적용, 향후 이 한글코드는 KSC5601이라는 표준이 됩니다. 이는 삼성전자 CAD/CAM 응용소프트웨어를 한글화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삼성전자의 개발 능력을 제고하는데 일익을 담당해 뿌듯했습니다.”

 

한국MS 초대 사장 시절에도 큰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96년 7월 유니코드에서 91년과 93년에 제정되었던 한글 코드를 빌 게이츠 회장을 설득하여 11,172자의 새 한글 완성자 영역을 새로 지정하여 Windows NT 이후 Windows는 물론 전 세계 응용소프트웨어 제품에 반영하고 세계표준으로 설정한 것이 가장 보람됩니다. 당시 일본, 중국이 무척 부러워했어요. MS Word 제품의 한글화 추진 및 마케팅을 기반으로 정보화 운동에 참여한 것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많은 기업의 멘토로도 활동하셨는데요?
“한국MS에서 퇴직한 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잠시 쉬고 있었어요. 그 시절, 주변에서 경영 컨설팅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당시 국내업체들의 경우 경영전략, 마케팅, 인재관리에 대한 성과제 등 많은 부분이 글로벌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과 벤처 열풍이 불어닥쳤고 그때 벤처 1세대들과 인연을 쌓았어요. 창업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경영을 지도해줄 사람이 없었어요. 키움투자의 전신인 ITVC에서 고문으로 일하고, KAIST 테크노 MBA 등에서 교수로 강의도 했습니다.
그 뒤로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 대표 멘토를 했는데, 당시 이 회사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증가하면서 회사 덩치가 커졌고 급속도로 업무가 늘어나는 회사에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상근하면서 경영지도를 했어요. 당시 안철수 대표는 의사 공부를 하며 주경야독으로 컴퓨터를 학습하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연구개발을 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지만 경영을 배울 틈은 없었어요. 믿고 배울 수 있는 선배가 필요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이와는 별도로 실리콘밸리 태동기부터 고교, 대학에서 학생회 활동을 통해 관찰하고 터득한 것들이 피상적으로 전달, 왜곡되는 것이 안타까워 책 번역을 시도했는데, 창업과 파괴적 혁신을 주제로 5권의 책을 번역했어요. 돈은 벌지 못했지만 건전한 창업문화, 그리고 파괴적 혁신을 전수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성공가도를 달리다 좌절한 기억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에 스마트 팜 식물농장을 만들고 수경재배로 메밀 싹 사업을 했었습니다. 많은 돈을 투자하고 농업 근대화와 출퇴근하며 농사짓는 꿈을 꾸었지만 결국은 망했는데 이때 좌절감이 매우 컸어요. 메밀 싹은 성인병 예방에 좋은 건강채소입니다. 메밀의 대표성분인 생리활성물질 루틴(Rutin)은 활성산소로 혈관 내벽을 보강해 혈행에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메밀 싹은 사람들이 식용으로 복용한 적이 없는 새로운 식품인 데다 대량 생산된 적도 없었어요. 더욱이 어떻게 신선하게 보관하는지 몰랐고 유통 채널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스마트 팜을 거의 최초로 시도한 것이지만, 돌이켜보면 너무 앞서나갔고 글로벌 기업 경력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고 스스로 교만했던 것 같습니다. 실패는 했지만 겸손해지는 인생과 농업, 바이오테크에 눈을 뜨게 해준 값진 경험이었어요.”

 

ICTK의 대표제품인 PUF 칩은 무엇이고,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입니까? 
“2003년 벤처캐피탈에 있을 때 젊은 청년과 만났습니다. 그는 이정원 현 ICTK 신규사업/재경담당 부대표이고, 당시 이 부대표는 물리적복제방지(PUF) 원천기술에 매료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향후 초연결시대에 세계를 선도할 기술이라고 확신했어요. 원천기술을 상용화해 국산 보안기술로 세계화를 계획하면서 나를 찾아왔습니다. 내용을 듣고 마지막 혼신의 힘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 합류를 결정했어요. IT업계에 있으면서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술을 사회와 산업 문제에 적용해 해결하는 일을 했습니다. PUF 칩을 만들면 우리 사회와 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솔직히 ICTK에서 만든 PUF 칩은 파괴적 혁신이고 많은 위험이 상존합니다. 하지만 도전할 가치가 있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ICTK
출처: ICTK

 

PUF 칩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상용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PUF는 물리적으로 복제 불가능한 기능으로 IoT 시대에 필수적인 ID와 키(Key) 관리의 중요 기술입니다. IoT 시대에 가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편의성과 보안입니다. 보안이 강화되면 호환성, 사용자 편의성이 떨어지는 반비례 관계가 기존의 상식이었어요. 하지만 PUF를 적용할 경우 보안성은 높이면서 편의성과 호환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미국, 유럽, 일본의 글로벌 기업들의 많은 연구개발 시도가 있었으나 아직 세계 어디에서도 양산에 들어간 선도기업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 ICTK가 VIA PUF로 양산에 성공하여 선두를 달리고 있어요.
우리는 산·학·연 공동 연구 활동을 통해 40여 번에 걸쳐 다양한 PUF 방식을 적용한 반도체를 개발했고, 그중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보안성이 높은 VIA PUF 기술을 개발했어요. PUF 기술과 함께 암호엔진과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연동하는 작업도 필요했습니다. 2006년부터 연구된 기술이 2009년 시험 성공하면서 2017년 대량 양산 제품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보안성이 높으며 저렴한 토종 PUF 칩이 완성된 것입니다. 2017년 7월 상용화 이후 국내 대기업과 중국 대기업 IoT 기기에 M2M 인증에 사용되고 있으며, 복제되지 않는 PUF 칩이 인가된 기기 사이의 연결을 보장해 줍니다. 또한 SW도 안전하게 보호하는 등 키값을 원천적으로 보호하며 다양한 보안 응용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어요. 향후 PUF 칩은 자율주행 자동차 등 편의성에 따른 인간의 안전이 담보되어 있어야 하는 분야에도 필수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PUF 칩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일반인의 피부에 와 닿는 실생활의 변화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무인 자동차 분야를 비롯해 핀테크, 블록체인 월렛과 디지털 화폐, 방위 산업, 전자신원(eID), 전자주민증, 전자여권 보안, 정품·위품 인증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합니다. 1994년 빌게이츠 회장은 컴덱스쇼에서 ‘손끝에서의 정보(Information at your fingertips)’라는 연설에서 ‘월렛 PC’를 말했어요. 3자의 개입 없이 광대역망에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두 기기 간에 P2P로 자금을 이동하는 개념입니다. 이 시나리오는 PUF 칩에서 제공하는 신뢰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구현될 수 없는 개념이에요. 궁극적으로 ICTK홀딩스는 초연결 시대에 보안 필수 기술인 PUF 기술의 종주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낙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업을 준비 중인 젊은이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안정된 삶을 사는 것도 인생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창업의 기회가 찾아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봐야 합니다. △이 창업 활동을 통해 기여할 수 있는가? △이 창업 활동을 통해 성장과 발전을 할 수 있는가? △이 창업 활동을 통해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적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시도해 보길 권합니다. 이유는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남이 원하는 삶을 산 것과 젊었을 때 안 하거나 덜해서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가 크다고 합니다. ‘그때 그 일을 할 걸~’하며 후회하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 시도하길 권합니다. 여러분들은 후회 없는 시도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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