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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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투데이] 최근 일본은 한국을 안보상 수출 심사 우대 국가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일본에 핵심 소재, 부품, 장비를 의존했던 한국의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이러한 상황은 장기적으로 경기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에도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됐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는 비상이 걸렸고, 그에 따른 영향력 분석과 대응책 마련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피해기업에 대한 파악과 지원이 시급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그동안 일본에 의존해 왔던 소재, 부품, 장비의 개발을 위한 R&D 지원과 시설투자를 통해 국산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추가적인 규제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에 의존했던 핵심 소재, 부품, 장비의 국산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사태가 위안부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과 한국정부의 태도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조치로 시작됐지만 사실상 그동안 한국의 산업구조는 소재, 부품을 외국으로부터 공급받아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늘 우려했던 핵심 소재, 부품과 장비를 국산화하지 못하고 외국에 의존했던 결과가 이번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어려울지라도 이제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 한국의 산업구조를 바꿔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진정한 수출국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외국에 의존했던 소재, 부품, 장비의 국산화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수입처 다변화와 피해기업에 대한 지원을 위해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고 중장기적으로 산업구조와 체질의 개편과 국산화의 로드맵을 구상해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영향을 받게 되는 절차와 품목

일본기업이 화이트리스트 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로 수출할 경우 3년 단위로 수출 허가를 받고 일주일 안에 선적이 가능하지만, 일반 국가로 수출할 경우 통상 6개월 단위로 허가를 신청하고 90일까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국내에서 영향을 받는 품목은 무려 1,120개(전략물자 263개, 비 전략물자 857개) 정도 된다. 2018년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품목 4천 2백 가지를 조사한 결과, 일본에서 수입하는 4,227개 품목 중 수입의존도가 50% 이상인 품목은 총 253개(수입액 158억 5,000만 달러, 원화기준 18조 7,700억 원)이며, 의존도가 90% 이상인 품목은 48개(총 수입액 27억 8,000만 달러, 원화 3조 2,929억 원)이다. 이중 방직용 섬유 등의 수입의존도는 99.6%, 화학공업 또는 연관공업의 생산품은 98.4%, 차량·항공기·선박과 수송기기 관련 품은 97.7%에 해당한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일본에서 사오는 소재·부품 가운데 90%는 일본이 아닌 해외나 국내에서 대체 구매가 가능하지만, 나머지 10%에 달하는 소재·부품의 경우는 일본이 아니면 대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예를 들어, 연간 1,500억~2,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들이 자칫 일본으로부터 수십억 원의 소재·부품을 수입하지 못하면 최소 30~40배의 매출 손실을 볼 수 있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수입 차질이 예상되는 소재·부품을 미리 확보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또한,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생산 차질이 우려되고 부품·소재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또한, 일본 부품·소재에 의존하는 기업들의 경우 핵심 소재 및 부품 수입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면 금융거래 불이익부터 주가 하락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일본 제재의 지속적인 여파로 수출 물량이 10% 감소할 경우 경제성장률이 0.6 포인트가량 하락할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KB증권 예상).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소재ㆍ장비 수출 통제가 표면화될 경우 반도체 등 주력산업의 생산 차질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른 산업현장의 생산 감소가 표면화될 경우 올해 2% 성장도 버거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1%대 경제성장률이 현실화되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 2009년(0.8%) 이후 최악의 경제불황이 일어나게 된다. 

반도체 소재의 경우 30%가 부족하면,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은 2.2%, 일본은 0.04% 감소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러한 일본의 규제에 대응해 한국이 반도체 관련 부품 수출규제 시, GDP 감소폭은 한국은 3.1%, 일본은 1.8%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한국경제연구원). 이번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첨단소재·전자·통신 등 광범위한 업종에서 우리 기업 생산 등에 피해가 우려된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자업종 외에도 자동차, 화학, 기계 업종 등으로 피해가 확대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ㆍ장비의 경우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다. 소재ㆍ장비를 공급받아 한국에서 생산한 후 글로벌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가 가치사슬(Value Chain)로 엮여있기 때문에 그 피해가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또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ㆍ장비의 경우 국산화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자금이 많이 소요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장기화될 경우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차나 전기차 배터리 소재도 일본 기업 의존도가 높다. 특히, 배터리 전해액의 원료가 되는 리튬염과 전해액 첨가제, 알루미늄 파우치 등은 일본산 비중이 높아 향후 수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업계의 타격이 우려된다. 

수소탱크도 일본 도레이에서 공급받는 탄소섬유로 만들어진다. 업계는 당장 큰 영향은 없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가 본격화될 경우 친환경 차 생산 확대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친환경 차 등 일부 기술이나 소재는 일본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부분이 있다. 국산화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규제가 본격화되면 당분간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따른 관련 기업과 정부의 대책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제외조치에 대응해 곧바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해외 현지법인을 통해 일본 외 기업들로 공급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국내 소재·장비 업체들과도 해법 마련을 위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일본 의존도가 높은 핵심 소재·부품 재고를 대폭 늘리는 ‘컨틴전시 플랜(비상 작전)’ 가동에 들어갔다. 통상 1~2개월 치 재고를 확보해 놓지만,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경우 수입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긴급하게 6개월 치 물량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이번 일본 화이트리스트 제외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어 향후 ‘한일 경제전쟁’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 역시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2천73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한 상태다. 이를 통해 오는 2020년부터 ▲핵심 소재·부품 개발 ▲핵심 소재·부품 성능평가 ▲소재·부품 기술개발 기반(테스트베드 등) 구축 등에 자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또 단계적으로 구체적인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피해 기업에 대해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대출금리를 최대 1.2%포인트 감면해 주는 등 금융지원에 동참한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도 보증과 대출만기 1년 일괄 연장, 최대 6조 원 규모의 신규자금 공급 지원 방안을 확정했다. 특별자금·경영안정자금 등 기존 지원프로그램(지원 한도 2조 9,000억 원)은 수출규제 피해기업들에 집중해 운영된다. 또한, 특별보증·연구개발·수입 다변화 지원 등을 위한 지원 한도 3조 원의 프로그램이 신설된다.

중장기적으로 수출규제 관련 피해기업들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해 총 18조 원 규모의 설비투자·R&D·M&A 등 정책금융 지원이 이뤄진다. 지원대상은 화이트 리스트 제외 품목 수입기업 및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대상이다. 

 

일본의 추가 규제조치

대일 의존도가 높은 제품의 한국 수출을 막는 동시에 반대로 한국의 주력 수출품에는 비관세장벽을 세울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 농식품과 수산물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특히 지난해 파프리카 수출액 가운데 일본의 비중은 99%에 달했다. 현지 언론은 최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에 이어 한국 농식품을 추가 규제 품목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참의원 선거 직후 한국의 수소경제와 태양광 등 신산업을 노려 추가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주력으로 육성하는 분야를 공격해 정치적 압박을 가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고노 담화를 통해 

"한국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상황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수소경제를 위해 필요한 탄소섬유는 전량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 이것이 막히면 수소경제 산업을 육성하기가 어려워진다. 연료전지 스텍에 필요한 전해질막도 100% 일본에서 수입한다. 태양광 산업 역시 세계 3대 수입시장인 일본이 비관세장벽을 쌓아 한국 기업 수출을 방해하면 국내 기업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태양전지·모듈 수출액은 16억 7,000만 달러이며, 이 중 일본에 수출한 것이 2억 6,179만 달러로 15.6%를 차지한다. 

 

향후 우려되는 점

첫째,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에서 물품뿐 아니라 지식·기술 교류도 제한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조치로 수출입뿐 아니라 양국 기업 간의 기술 협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가 펴낸 설명자료 ‘안전보장무역관리에 대하여’를 살펴보면, 제한하고 있는 기술 제공의 예시로 일본 국내외에서 일본인이 제공하는 설계도나 기술 지도 등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핵심 소재, 부품, 장비의 국산화 추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핵심 소재, 부품, 장비개발 시 군데군데 특허의 지뢰밭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특허를 어떻게 피하고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가 큰 과제이다.

셋째,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핵심 소재, 부품, 장비를 국산화했다 해도 규모의 경제시대 가격경쟁력이 문제다. 일본의 경우 전 세계 각국에 핵심 소재, 부품, 장비를 대규모로 공급하고 있어 가격경쟁력이 있다. 반면, 한국의 중소기업이 국산화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얼마나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느냐가 또 관건이다. 

넷째, 핵심 소재, 부품, 장비가 국산화됐을 때 얼마큼의 신뢰성과 균일성을 갖게 될 것이냐는 것이다. 초고도의 정밀성과 신뢰성을 요구하는 소재, 부품의 경우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의 소재, 부품이 공급돼야 한다. 일본에 의존하는 핵심 소재, 부품, 장비를 만들 수는 있지만 최고로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화수소 에칭가스의 경우 소수점 아래 일곱째 자리까지 고순도가 요구된다. 99.9999999% 즉, 세븐 나인이 요구되는데 이렇게 최고의 정밀성과 균일성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국산화가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장기적 저성장과 미·중 무역갈등에 이어 한·일무역전쟁으로 한국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대기업은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중소기업들은 자금력과 대체 공급처를 찾기가 쉽지 않아 큰 타격이 예상된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산업구조와 체질을 개선하고 핵심 첨단 부품, 소재, 장비 국산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중장기적으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국제분업의 원리와 자유무역주의의 원칙은 존중돼야 하나 지금의 무역전쟁 시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경제의 경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는다. 내수시장이 잘 구축된 일본에 비해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관계 개선에도 노력을 지속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국의 산업구조와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글: 이승희 금오공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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