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 툴젠, 유전자가위 원천기술 보유
8년 만에 미국 특허 등록 허가받아
혈우병 등 유전질환 치료제 연구 활발

올해 노벨화학상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 기술 개발에 공헌한 두 명의 여성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3세대 유전자 교정(Genome Editing) 기술로 분류되는 크리스퍼-카스9은 1, 2세대와 비교해 유전체에서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잘라낼 수 있는 성공률을 수백 배 이상 높였다. 희귀 유전질환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는 유전자가위 기술. 국내에서도 툴젠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유전자가위 1세대부터 3세대 기술을 모두 보유하며 새 지평을 열고 있다.

 

툴젠, 8년간의 ‘특허 전쟁’ 승자 될 수 있을까

이달 초, 노벨화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아직은 생소한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크리스퍼’가 표적 DNA 염기서열을 인식하면 제한효소인 ‘카스9’이 그 부분을 정확히 자르게 만들어진 분자 도구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동물이나 식물, 미생물의 DNA를 매우 정교하게 변형시킬 수 있다. 노벨위원회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에 대해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과 유전병 치료의 꿈을 현실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 유전자교정 전문기업인 툴젠은 8년 만에 미국 특허청(USPTO)으로부터 유전자가위 관련 ‘특허 등록 허가’ 사실을 알리며 주목을 받았다. 툴젠은 기술을 세분화해 여러 건의 개별 특허로 확보하는 지식재산 전략 중 하나인 분할출원을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등록허가를 받은 것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구성요소인 가이드RNA의 구조 변형을 통해 유전자교정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에 대한 특허다. 

출처:툴젠 홈페이지
출처:툴젠 홈페이지

유전자가위 기술은 2000년대 중반 1세대 ‘징크핑거뉴클레이즈(ZFN)’가 가장 먼저 개발됐고, 2010년 2세대 기술인 ‘탈렌(TALEN)’이 효율과 정확도를 크게 향상시키며 등장했다. 곧이어 2012년 한층 정확도가 높아진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이 개발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작물 개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툴젠은 유전자가위 1, 2, 3세대의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 특허 등록 허가를 받으면서 현재 툴젠은 한국, 유럽, 중국, 일본 등 7개 국가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관련 특허를 갖게 됐다. 전 세계에서 3세대 유전자가위 특허는 5곳만 보유하고 있다.

툴젠 관계자는 “각각의 특허가 아닌 출원 또는 등록된 모든 특허가 모여 원천특허가 되는 것”이라며 “툴젠의 이번 특허 등록은 미국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원천특허에 대해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원천특허에 대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출원된 다른 특허들도 빠른 시일 내에 등록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툴젠은 3세대 유전자가위의 원천기술 미국 특허 등록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12년 10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 개발 당시 툴젠 창업자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서울대 화학과 겸임교수)은 미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그해 5월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연구팀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관련 특허를 가장 먼저 출원했으며, 12월에는 하버드·MIT 공동연구팀인 브로드연구소도 특허 전쟁에 뛰어들었다.

브로드연구소가 신속심사제도를 통해 특허권을 선점하면서 특허가 등록되자 이 과정에서 법정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UC버클리의 특허가 미국 특허청에 2018년 말 등록되면서, 2019년 미국 특허심판원(PTAB)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과 관련해 브로드연구소 특허와 UC버클리 특허 간의 저촉심사(Interference)에 들어갔다. 미국 특허청의 저촉심사는 동일한 발명을 주장하는 두 명 이상의 출원인에 대하여 그 중 최초 발명자를 판단하는 행정 절차이다.

툴젠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원천특허는 미국 특허청 심사관이 특허 등록을 거절한 바 있으나, 지난 6월 미국특허심판원이 미국 심사관의 거절 의견을 파기하고 툴젠의 손을 들어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툴젠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원천특허는 진핵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작동을 증명한 첫 번째 발명으로 동식물은 물론 사람에도 원천기술을 적용할 수 있도록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툴젠이 저촉심사에 진입한다면, 3자 간 심사에서 브로드연구소와 UC버클리보다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유전병, 난치병 치료의 희망···유전자가위

유전자가위는 노벨화학상을 받기 전인 지난 2015년 이미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가장 주목받는 10대 미래 기술로 선정된 생명공학 분야의 중요한 원천기술이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하여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내면 세포는 이를 복구하기 위한 작용을 시작한다. 이를 이용하여 특정 유전 정보를 제거할 수도 있고 외부 유전자를 정해진 위치에 삽입하거나 유전자가 원래 기능대로 작동하도록 염기서열을 교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가위 기술은 그동안 치료가 어려웠던 유전질환이나 암, 난치성 질환 정복에 희망을 주고 있다.

유전자가위 모식도. (출처: 툴젠)
유전자가위 모식도. (출처: 툴젠)

대표적인 것이 희귀 난치성 질환인 혈우병의 치료다. 김진수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과 김동욱 연세대 의대 교수, 김종훈 고려대 생명공학부 교수 등으로 이뤄진 국내 공동 연구진은 혈우병 환자의 세포에서 혈우병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교정한 뒤, 혈액응고인자를 만드는 혈관내피세포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연구팀이 이를 혈우병 생쥐에게 이식한 후 인공적으로 생쥐의 꼬리를 잘라 출혈을 일으켰을 때, 생쥐가 혈액응고 인자를 생성해 출혈 증상이 현저히 개선됨을 확인하기도 했다.

툴젠은 자체적으로 혈우병과 샤르코마리투스병, 황반변성 등 희귀 질환 치료제 개발에 유전자가위를 활용하고 있다. 툴젠이 추진 중인 치료제 중 가장 앞선 것은 ‘삼성가(家) 유전병’으로 알려진 샤르코마리투스병이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온몸의 근육이 점점 위축돼 힘이 약해지고 손과 발 등에 변형이 생기는 신경계 유전질환이며, 국내에서는 약 8,000명, 전 세계적으로 약 120만 명 이상 앓고 있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현재까지 알려진 유전질환 중에서 가장 발생 빈도가 높지만, 아직 뚜렷한 치료 약은 없는 상태다.

툴젠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PMP22 유전자의 과발현이 원인인 샤르코마리투스병 1A형의 반영구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병화 툴젠 대표는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2020년 1월 치료제 사업본부의 조직을 기능별로 재편하였다”라고 밝혔다. 툴젠은 삼성병원 연구진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샤르코마리투스병 1A형에 대한 유전자 교정 치료 효과를 동물 실험에서 입증한 후, 지난 4월 전임상개발센터를 설립하며 공식적인 전임상(Pre-Clinical) 단계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2025년 약 14조 원 유전자치료제 시장, 우위 선점해야

미래를 움직일 신기술로 인정받고 있는 유전자가위 기술은 과학적 가치는 물론 엄청난 경제적 가치가 잠재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BIS research의 ‘글로벌 유전자치료제 시장현황 및 전망’이 예상하는 2025년 유전자치료제 시장 규모는 120억 달러. 약 14조 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규모로 2018년 10.7억 달러(약 1.2조 원)에서 연평균 40%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 윤리적 제약 때문에 성장 가능성과 비교해 아직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치료제나 수술요법 개발은 더딘 편이다. 치료제 개발을 위해 유전자가위 기술특허를 가진 기관이나 업체로부터 기술이전도 받아야 한다. 툴젠은 유전자가위 원천기술과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여기에 제도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다른 신약에 비해 경쟁이 낮은 유전자가위 상업적 치료제 개발의 초기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주도적인 위치를 선점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Safe Gene’ 프로젝트. (출처: DARPA)
‘Safe Gene’ 프로젝트. (출처: DARPA)

지난 16일 열린 비즈니스모델 연구단 모임에서 김종문 전 툴젠 대표는 “미국은 2017년 국방부 산하기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세이프 진(Safe Gene)’ 프로젝트에 6,500만 달러를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 연구를 지원한다”고 덧붙이며, 유전자가위 기술은 질병 치료 외에도 식품, 의약품, 신소재, 바이오 에너지 등 많은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적극적인 연구개발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국회도 유전자가위 등 유전자 치료 연구를 확산하기 위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 47조에 따르면, 유전자가위 기술이 적용되는 유전자 치료 규제가 대폭 완화되나 실험용 배아 등을 둘러싼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편 김진수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2018년 서울대학교 재직 당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툴젠에 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월 검찰은 툴젠 창업주인 김 단장과 툴젠 임원을 불구속기소 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과학계에서는 유전자가위 분야 세계적인 석학인 김 단장을 일부 절차상의 문제로 망신을 주고 연구에 발목을 잡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툴젠의 유전자가위 관련 특허가 미국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이후 재판에 미칠 영향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스타트업투데이=정민아 객원기자] news@startup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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