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근본적인 의미는 인간의 본질적인 삶의 가치와 기준에 대한 끊임없는 새로운 질문과 해석의 방법을 제시하는데 있다. 공간의 기본적인 명제는 인간의 다양한 형태와 행위, 그리고 자연을 받아들이기 위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예술과 공간, 이 두 가지의 주제를 해석하는 방법과 방식이 존재할 리 만무하지만 수많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명제를 좋은 해석의 일원으로 여기고 있다.이러한 사실을 참조한다면 비슷한 성향으로 인식되기 쉬운 예술과 건축은 어쩌면 전혀 다른 방식과 사고의 침전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광범위한 관점에서의 예술과 넓은 의미에서의 공간은 사실 오래전부터 아주 밀접한, 아니 순수한 의미에서 보면 분리시키기 힘든 일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공공적 공간은 상징성과 표현적 성향을 가짐으로서 동시대의 회화와 조각 등의 예술과 구분하기 힘든 성격의 창조물이었다. 이러한 경향이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예술과 공간은 독립적으로 분리 되었으며 교육에서 생산방식과 소비로 점차 변화 되었으며, 점차 독립적인 분야로 인식되어졌다. 이후 바우하우스가 공간이라는 대명제 아래 예술, 공예, 산업과 같은 생산적인 창조분야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후에 비슷한 경향의 학교교육 및 산업운동, 건축가들의 집단적인 사고의 움직임과 사회적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히려 예술과 공간은 구분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모호한 성격이 되었다. 오늘날 무엇이 예술이며 예술이 아닌가를 구분하는 일이 힘든 것처럼 공간의 순수한 목적을 조금만 넓게 너그럽게 해석하면 공간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해석의 오류를 극복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하지만 단순성의 개념을 통하면 좀더 현상에 대한 쉽고 편안한 통찰을 가져올 수 있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며 섬세하게 걸러진 해석은 직관적인 단계를 넘어서서 은유적 사고를 형성하게 되며 단순하지만 많은 가치를 내포한 새로운 언어로 재창조된다. 이런 단순성의 개념을 내포한 예술과 공간이 만나서 이루어 내는 일들은 때때로 경이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빛을 중심으로 자연과 사람의 교차점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회화적으로, 조각적으로 또는 이러한 시각을 넘어서서 촉각, 후각을 포함한 공감각을 접목시킨 현대 공간의 현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공간의 순수한 목적을 넘어 적극적으로 예술과 대중에게 내어준 넉넉한 포용력을 통해서 쉽고, 가볍고,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가치관을 가진 공간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현재 문화 소비자, 생산자 입장에서 예술과 공간의 역량과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이들은 과거 그 어떤 시절보다 밀착되어 있으며 상호 의존적이며 깊이 있는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우리의 목적은 예술과 공간이 그것을 전공한 소수의 영역이 아닌 우리 주변의 것으로서 바로 소소한 우리들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단순함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현상은 우리 일상을 조금 더 가치가 있고 밀도 있는 삶으로 안내해주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며, 그것이 예술과 공간의 변하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구만재 대표는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아뜨리에 페닝겐에서 기초예술학을 배웠다. 파리고등실내건축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프랑스 공인 실내건축사이다. 르 씨지엠 서울과 파리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가천대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시 디자인 자문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해 서울 서초구, 성북구, 부천시 디자인 심의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시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Best Designer of Year 2011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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