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계의 뜨거운 감자는 ‘제4차 산업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이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들과 결합하며 지금까지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제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스티브 잡스다. 애플의 아이폰이야말로 21세기를 열어젖힌 ‘창조’와 ‘혁신’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는 이브의 사과요, 둘째는 뉴턴의 사과요, 셋째는 세잔의 사과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거장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의 말이다. 잡스의 사과로부터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면 역사상 유명한 네번째의 사과는 단연 ‘잡스의 사과’일 것이다. 튜링과 잡스의 사과처럼 역사의 마중물이 되었던 사과 명화 작품들이 제4차 산업혁명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의 샘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사과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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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1895-1900년경, 73 × 92 cm

 

세잔은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떠나며 “나는 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할 것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세잔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상한 입자(Strange Particle)들은 스티브 잡스처럼 세상을 정복했다. 그래서 세잔을 ‘사과의 화가’라고 부른다. 세잔은 같은 사과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므로 이들을 모두 담아야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잔은 전통적인 원근법과 명암법을 일체 무시하고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불변의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철학을 작품에 담았다. 그림속의 사과는 어떤 것은 위에서, 어떤 것은 앞에서 본 모습이 그려져 시선이 뒤죽박죽이다. 좌우, 전후, 위아래의 대칭성을 깨뜨림으로써 대상의 질서 자체를 변형시켰다. 세잔의 사과는 보이는 대로 그리는 그림의 정물에서 창조하는 그림의 오브제로 진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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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그리트, 인간의 아들, 116 × 89 cm.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대부분 매우 익숙하고 낯익은 것들이다. 마그리트는 달리처럼 일부러 기괴한 형상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가 소재로 사용하는 것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사물들이다. 일상적 사물, 즉 사과를 ‘낯설게 함’으로써 사물의 참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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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 사과, 1887년, 캔버스에 유채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한 붓질로 하늘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정신장애로 인한 고통을 소용돌이와 원색의 노란색으로 표현하여 〈프로방스 시골길의 하늘 풍경〉, 〈해바라기〉 등의 걸작들을 남겼다. 고흐의 사과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4차원의 시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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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두아르 마네, 4개의 사과, 19×24.5 cm

 

마네는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가장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된 화가 중 하나이다. ‘근대성의 발명자’이자 ‘현대적’인 화가이기도 하다. 마네는 세잔, 모네, 고흐, 고갱, 피카소, 칸딘스키, 마티스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다. 선두주자 마네는 이들 모두에게 골고루 영향을 끼쳤다. 이들에 의해서 생겨난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모두가 마네의 신세를 진 셈이다. 마네의 사과는 비운의 과학자 테슬라나 앨런 튜링처럼 역사의 재평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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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림트, 사과나무1. 110 x 110 cm.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중으로 추방당한 자였다. 유대 공동체에서는 이단자로 몰려 파문당했고 기독교 세계에서는 무신론자 유대인으로 낙인찍혔다. 그는 억압적인 신권정체 타도와 자유로운 민주정체 수립을 주장한 근대 최초의 정치철학자이자 급진 혁명가였다. 이 사유의 전복자는 지극히 청렴하고 겸손하고 조용한 삶을 살았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죽기 전에 사과나무 두 작품을 남겼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그려진 사과나무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즉 스피노자의 ‘희망의 사과’(위)와 백설공주의 ‘죽음의 사과’(아래) 유비(類比)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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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갱, 사과가 담긴 접시, 캔버스에 유채

 

고갱은 “나는 눈앞의 사과를 본대로만 그리지 않는다. 나는 기억 속의 사과를 그릴 것이다.”고 선언하였다. 그에게 미술이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추상이고 상징이었다. 그의 사과는 현실의 사과가 아닌 색채와 형태로 만든 예술세계 속의 사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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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오크 패널에 유채

그리스 신화에서 ‘파리스의 심판’은 가장 흥미로운 심판이었다. 루벤스처럼 수많은 화가들이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주제에 매료되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권력(헤라), 지혜(아테나),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아프로디테) 중에서 여러분의 선택은? 아름다운 여인을 선택한 파리스의 심판은 결국 트로이 전쟁이라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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