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디창의라운지 만들어 창업 지원
배상민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나눔 디자이너다. 세계적인 디자인 학교인 미국 파슨스디자인 스쿨의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교수, 독일 레드닷 공모전 대상, IDEA 어워드 은상을 비롯한 세계 4대 디자인상 석권 등의 화려한 경력과 이력의 출발은 ‘나눔’이다. 독특한 창의력에서 나오는 심플한 디자인의 나눔 제품들은 그 자체로도 사회공헌이지만 배 교수는 제품을 판매해 남은 이익금은 모두 기부한다. 그는 창업 멘토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제품 디자인을 하다 벽에 부딪혔을 때 솔루션을 제시해주면서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인다. 카이스트 본원 산업디자인과 건물 1층에 자리잡은 카이스트-아우디 창의라운지는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멘토링부터 시제품 제작까지 도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배 교수가 디자인했다. 창의력의 원천은 매일 써오고 있는 ‘저널’(일기)에 있다는 배 교수를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만났다.
다양한 분야가 서로 융합되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디자이너로 사회에 뛰어드는 햇병아리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을 꼽는다면?
요즈음 ‘융합’또는‘협업’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고, 실제로도 많은 디자인 프로젝트가 다른 전공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필요한 의견 수렴과 조율을 할 수 있는 유연한 자세가 요구 됩니다.
협업도 좋지만, 디자인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전문성입니다. 학생들이 부전공, 복수전공 등을 통해 여러 분야를 수박 겉핥기 하듯 공부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진정한 협업을 하려면 먼저 자신의 전공 분야에 깊은 지식과 통찰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협업을 하려는데 그 상대가 진정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 상대를 믿고 존중할 수 있겠습니까? 본인 스스로가 먼저 진정한 전문가가 되어 상대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때, 진정한 협업이 시작됩니다.
이것만 기억해주세요. 디자인은 평생을 갈고 닦아도 진정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쉽지 않은 분야입니다.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먼저 최선을 다해 본인의 전문성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학생들과 회의하고 있는 배상민 교수
디자인은 나눔이고 나눔은 의무다.
본인의 디자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디자인은 나눔입니다.
나눔프로젝트는 새로운 상품 개발을 통해 자선활동을 펼치는 프로젝트로, 인도적 사회 순환 시스템을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과 KAIST ID+IM디자인랩, 그리고 GS칼텍스가 각자의 능력을 기부하고 협력하여 수익금 전액을 저소득층 어린이의 교육을 위해 기부하는 사업이다. 여타 자선상품과는 달리 나눔프로젝트는 자선활동만을 위해서 기획, 디자인, 생산, 판매가 이루어지며, 이윤의 100%가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의 교육, 장학사업을 위해 쓰인다.

나눔프로젝트
디자이너의 사회공헌에 대해 많은 공감을 합니다.
제품 쪽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가능할지요?
디자이너의 사회공헌은 사실 모든 분야에서 가능합니다. 솔직히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발견해서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디자인의 정의입니다. 포괄적으로 모든 디자이너는 누군가를 위해 문제해결을 합니다. 이것이 넓은 의미로 보면 사회공헌이라고 할 수 있죠. 더 적극적인 사회공헌 디자인은 그 문제를 상위 10% (전 세계 인구 중 하루에 의식주를 포함해 $10 이상을 소비할 수 있는 인구)가 아닌 하위 90%에서 찾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과 지역을 위해서 욕망(desire) 보다는 그들의 생존 (needs)을 위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활동이 여기에 속합니다.
시각, 공간, 제품, UX 디자인 할 것 없이 그 전문 분야에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상황을 좀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눔, 사회공헌은 본인이 처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카이스트 창업 라운지
봉사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계십니다.
특별한 계기나 혹은 철학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저는 저에게 주어진 이 수많은 기회가 저의 노력의 대가만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있다면 아프리카의 어린이보다 제가 더 예쁘고 똑똑해서 저에게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을까요? 기도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이 쌓으신 공덕이 많아서?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모든 축복들은 나 자신의 행복과 입신양명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축복을 받지 못한 하위 90%를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상위 10%는 나머지 90%의 사람들에게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나눔은 선택이 아닙니다. 빚을 지고도 갚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며,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디자인 퀄리티가 일정부분 비례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해결하지 못할 때 교수님 나름의 방법이 있다면?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비움’ 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순간이든지 모든 것을 비울 줄 알아야 합니다. 시간에 쫓겨 불안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가득 차있는 생각들을 비워내고 차근차근 생각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르게 됩니다.
제가 아는 통찰력이 있는 디자이너들은 각자 자신만의 비워내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비움의 방법은 플라이 낚시 입니다. 저는 플라이 낚시를 좋아하는데 낚시를 하는 동안 다른 생각은 안하고 자연에 집중하게 되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을 느끼며 비워냅니다. 이렇게 비워내면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해결책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고민하고 기록하라…나중에 아이디어가 된다.
아이디어나 영감의 원천이 있다면?
저는 디자인 저널(일기장)을 쓰고 있고 총 23권의 저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 시간이 생길 때나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내가 이 곳의 디자이너였다면, 내가 이 물건을 디자인했다면 어떻게 했을까?’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좀 더 나은 방법이 없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일기를 씁니다.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내려고 노력합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 준비하면 늦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는 저장을 하면 그대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쉽게 저장할 수 있고, 또 쉽게 꺼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바로 바로 저장하고 꺼내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은 심어(planting)집니다. 여러분이 한 번 planting한 문제를 뇌에서는 무의식중에 조금씩 조금씩 풀고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계기(trigger)가 되면 해결책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창의적이며 엄청난 아이디어가 됩니다. 어느 날 졸업 앨범을 보는 순간 여러분이 완전히 잊고 있던 동창이 떠오르고 그 친구와 놀았던 수많은 기억들이 나잖아요. 이런 것이 바로 trigger 시스템 입니다. 그 당시에는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더라도,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게 되면 그 동안 축적된 지식과 경험으로 언젠가는 해결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런 작업을 저널에 기록해두면 나중에는 그것이 아이디어가 되고 영감이 됩니다. 쓰십시오.

배상민 교수는 지금도 저널을 꾸준히 쓰고 있다. 사진은 그 기록 중 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