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을 위한 제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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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투데이] 한국이 “사치스러운 여유를 부렸다”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를 접하니 화가 난다. NYT는 한국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느린 국가들을 느림보(laggard)라고 하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감염률과 사망률로 사치스러운 시간적 여유를 부렸고, 지금은 해외 개발·제조의 백신에 의존하고 있다. 백신 접종 지연이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 의미를 퇴색시키고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한국경제가 백신에 무너질 수 있다’는 내용의 언론 기사 제목을 보니 억장이 무너진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필자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된 초기부터 철저히 대처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칼럼을 여러 차례 썼다.

2020년 2월 3일 자 칼럼에서 결국 가장 실효적인 방법은 중국에서 오는 외국인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 금지로서 이를 철저히 실시해야 함을 강조했다.

[▶기사: [이강국의 생생칼럼] 우한 폐렴의 원인, 그리고 확산 막을 방법은?]

그해 2월 23일 자 칼럼에서는 정세균 총리 주재회의를 통해 결정한 중국인 입국 제한에 조치를 불과 몇 시간 후에 바꿔 버린 행태를 질타하고 의료계에서 수차례 건의한 중국 방문 외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방안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청했다.

[▶기사: [이강국의 생생칼럼] 국민건강 우선 대처해야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 물리칠 수 있다]

중국 방문 외국인 입국 시 2주간 격리 조치를 취해야 하고, 시진핑 주석 방한은 서두르지 말고, 고도의 경각심을 가지고 우선 코로나19 대처에 전념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어떤 이가 이 칼럼 내용이 좋다고 생각해 단체 대화방에 올렸더니 직속상관인 고위 관료가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고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이때 중국은 도시를 통째로 봉쇄하는 매우 강력한 격리조치로 코로나19에 대응했고, 상황이 나아지자 한국인 등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강화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항의했더니 “지방정부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행정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중국을 의식하며 우물쭈물한 사이 코로나19는 확산되고 중국에 되치기 당하다시피 하면서 우리 국민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良藥苦口利於病(양약고구이어병), 忠言逆耳利於行(충언역이이어행)”이라고 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을 고치는데 좋고,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동을 바로 잡는데 이로운 것이라는 뜻이다.

잘못된 조치나 정책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데 대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겸허하게 수용하고 고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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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8월 24일 자 칼럼에서 “K방역 모범국이라는 자화자찬은 그만둬야 한다”고 강하게 요청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정부 관료들은 ‘K방역’이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사용했다. 심지어 이것을 국내외에 홍보하느라 엄청난 예산을 사용했다.

이 자화자찬이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데 독이 됐다. ‘K방역’은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과 의료인들의 헌신,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나 ‘K방역’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결국 근본적으로는 백신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이점을 제대로 인식해 백신 개발과 백신 확보에 전념했으나, 자화자찬 속에 빠진 한국은 이를 등한시했다.

현재 미국, 영국 같은 선진국들은 물론 이스라엘, 싱가포르, 심지어 중동 국가들도 백신 접종률이 상당히 높고, 마스크를 벗고 일상생활 시동을 거는 나라도 있다. 이들 나라 국민들은 속속 경제현장으로 복귀하고, 경제성장 전망치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7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지난 1년여간 성공적인 방역 덕분에 버틴 한국 경제가 올해 글로벌 경기 회복 흐름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더 큰 걱정은 백신주사를 맞았다는 증명이 없으면 입국을 불허하는 소위 ‘백신 여권’이 도입되는 것이다. 해외 여행할 때 반드시 여권을 지참해야 하는 것처럼 ‘백신 여권’을 지참하지 않으면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백신 주사를 맞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입국을 불허하는 나라들이 많아지게 되면 백신 접종률이 낮은 한국이 받을 타격과 신용도 하락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무역 대국 6위 나라의 국민이 ‘백신 여권’이 없어 입국 불허를 당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해야 하는가?

최근 국회에서 백신 확보 미비에 대해 질타를 받자 국무총리 직무대행을 맡은 경제부총리는 격앙된 목소리로 “올해 11월에는 국민면역이 될 것이니 정부를 믿으라”고 답변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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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답변을 되짚어봐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선진국은 국민 대다수가 쉽게 백신주사를 맞으며 휘파람을 불고 있는데, 한국은 11월까지 기다리라니 너무 늦다. 그때까지 마스크를 쓰는 것은 감수할 수 있다고 해도, 국민들의 건강문제와 정신적 피해, 경제적 타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 어떤 백신을 확보하느냐이다. 현재 한국이 주로 쓰고 있는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이다. 그런데 이것은 화이자나 모더나에 비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AZ 백신에 대해 국민들의 거부감이 높은 상황이다.

최근 AZ 백신 접종 후 사지 마비 등 심각한 이상 반응을 보인 40대 여성 간호조무사의 안타까운 근황이 전해졌다. 그의 남편은 국민청원 글을 통해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임을 호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건강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좋은 백신을 맞으려고 하는 것을 정부는 이해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백신 확보에 문제가 없다고 하고 정부를 믿으라고 하는데, 믿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백신의 조기 확보 성과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제는 러시아가 만든 코로나19 백신인 스푸트니크 V를 들여오는 문제로 갑론을박하고 있고, 참모진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백신 수급에 대한 우려가 있는 만큼 러시아산 백신 도입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하자 “그렇게 하라”는 언급이 나왔다는 보도를 보니, 백신 확보가 잘되고 있다는 정부의 호언에 의구심이 든다.

현재 백신이 넘쳐나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다음 날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해 백신 추가 공급에 합의했다고 한다. 백신 2,500만 명분(2회 접종 기준 5,000만 회분)을 오는 9월 말까지 추가 공급받기로 했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으로 일본은 백신 가뭄의 물꼬를 텄을 뿐만 아니라, 코 혈전(피 응고) 논란이 불거진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없이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만으로 전 국민을 접종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오는 5월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방문을 백신확보의 천재일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하고, ‘젖 먹던 힘’까지 쏟아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 전, 세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전통적인 한미동맹 관계를 들어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미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5전쟁 등에서 역할을 했다. 진정성을 가지고 어려움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면 도울 것이다. 관건은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임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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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반도체 대란 상황을 역으로 활용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확보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최근 백악관에서 ‘반도체 CEO 서밋’도 개최했다. 물론 세계 굴지의 반도체 회사이자 미국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도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초청받아 이 회의에 참석했다.

셋째, 차제에 한미동맹 관계를 되돌아보고, 동맹관계를 확고히 해 나가도록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국가관계도 인간관계와 비슷하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호감이 가야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생각이 다르다고 화를 내거나 주먹다짐하는 사람과는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체제와 이념이 다르고 보복이나 해대는 나라는 진정한 우방이 될 수 없다.

정의용 외교장관이 취임 후 첫 번째 방문 국가로 중국을 택한 것은 아쉬움이 크다. 역대 외교부 장관은 대부분 취임 후 미국 방문을 고위급 외교의 출발점으로 삼아 왔는데, 전임 강경화 장관과 전임 윤병세 장관도 모두 취임 한 달 만에 미국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정 장관을 초청한 장소도 미·중 간에 이익이 충돌하고 전운이 감도는 대만 코앞에 있는 푸젠성 샤먼이었다. 외교 협상을 하는 데 있어서 시간과 장소 선택은 상황에 따라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진정한 동맹관계라는 마음과 자세로 임해 시급한 백신 문제도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도 다시 튼튼하게 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

 


이강국 전) 주시안 총영사
이강국 전) 주시안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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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투데이=편집부] news@startup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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