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역사상 최초로 최첨단 올림픽 게임을 목격하고 있다”고 평가
올림픽이 국민 통합을 넘어 남북 간 평화 달성에도 크게 기여하기를...

이희범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대회 유치부터 개최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두 번째 올림픽 준비 과정은 롤러코스터처럼 부침을 겪었다. 2016년 5월 올림픽조직위원회를 맡은 이희범 위원장은 표류하던 평창 올림픽을 구출하여 감동의 드라마로 이끌었다. 이 위원장은 뛰어난 경제 관료였지만 그가 올림픽의 명운을 뒤바꿔 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폭넓은 경륜을 바탕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빛나는 성과를 이룬 글로벌 리더 이희범 위원장을 만나본다.

 

Q. 상공부 사무관으로 출발하여 서울산업대학교 총장, 산업자원부 장관, 한국무역협회장을 거쳐 LG상사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경제 분야를 넘어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맡은 것은 인생에서 또 한 번의 큰 도전이었을 것 같다. 어떻게 조직위원장 취임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저는 공과대학을 나와 행정고시를 거쳐 공직에 입문하였다. 당시로서는 법대 졸업생 일변도인 공직 사회에 적응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실과 근면만이 생존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일에만 몰두하였다. 성실성은 인정을 받았지만 그 후 주로 타의에 의해 자리를 옮겨 다니게 되었다. 과장이나 국장 때는 물론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될 때에도 대학 총장을 하고 있는데 부안사태로 전임 장관이 사임하면서 갑자기 발령을 받았다.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하며 성과를 만들어나갔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이 토대가 되어 더 새롭고 도전적인 일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조직위원장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인재가 있을 거라 생각하여 초기에는 사양했으나, 몇 차례 권유를 받고 위원장직을 수락할 때는 이 대회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Q. 취임 당시는 전임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퇴진하고 대회가 정상적으로 열릴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당시에 봉착했던 난관은 무엇이었고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갔나?

취임 직후 조직위는 물론 나라 전체가 소위 게이트에 시달렸다. 예산 확보도 쉽지 않았다. 올림픽 개최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공사도 진척되지 않았다. 가장 힘든 것은 조직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몇 번씩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올림픽은 세계와의 약속으로 그만둘 수도 없었다. 일단 현재의 상황을 분석했다.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예산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절실한 마음으로 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스폰서를 찾았다. 많은 기업이 올림픽의 성공을 기대하며 후원해주셨다. 예산이 확보되자 그동안의 문제들이 선순환을 일으키며 하나씩 해결되어갔다.

Q. 개최 준비가 여러모로 어수선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전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지금 누구보다 감격스러울 것 같다. 감회가 어떠한지.

감회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올림픽이 끝나자 IOC는 “동계올림픽 역사상 가장 잘 조직된 대회”라고 했고, 캐나다의 토론토 스타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문제를 꼽자면 흠잡을 게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4%가 올림픽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었다. 폐막식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 눈물이 핑 돌았다. 

Q. 당초 3,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었다가 균형재정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위원장의 공이 특별히 컸다고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소개해달라.

2011년 7월 올림픽을 유치할 당시 Bid File에는 세입과 세출을 각각 2조 2천억 원으로 예정했으나 그 후 사정이 많이 바뀌었다. 금메달 수도 88개에서 102개로 늘었고, 강원도가 부담해야 할 방송센터 등의 건설도 조직위 몫이 되었다. 취임 후 4차 재정계획을 짜면서 세출을 2조 8천억 원으로 잡았으나 세입은 2조 5천억 원에 불과하여 3천억 원 적자가 예상되었다. 정부 예산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직접 재정심사위원장이 되어 1억 원을 넘는 세출예산은 직접 심사하여 지출을 억제하는 등 약 1,000억 원을 절약하였다. 또한, 기업의 스폰서 수입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특히 공기업의 참여를 위해 노력하였다. 결과적으로 9,400억 원을 목표로 했던 스폰서 수입은 1조 1천억 원을 넘겨 목표 대비 118%를 달성하였다.

Q. 저예산으로 마련했음에도 전통문화와 첨단 IT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개•폐막식에 특별히 감동을 받은 우리 국민과 외국인이 많다. 개.폐막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개회식과 폐회식의 기본 방침은 ‘저비용 고감동’ 이었다. 첨단 기술과 생동감 있는 문화 공연, 인상적인 성화 점화 장면과 더불어 남북 공동 입자을 통해 ‘행동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또한, ICT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5G 시범망을 이용한, ‘평화의 비둘기’ 공연, 드론 오륜기, 증강현실(AR), 천상열차분야지도 별자리 시연, 미래의 문으로 표현된 LED 디스플레이 등 첨단 기술과 디지털 미디어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CNN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최첨단 올림픽게임을 목격하고 있다”라고 할 정도로 최고 IT 기술의 경연장이었다. 추운 날씨를 가장 걱정했는데 하늘도 크게 도와줬다.

Q. 서울 올림픽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지구촌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동서 진영이 12년 만에 함께 참가하여 화합을 이루었다는 역사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30년이 지나 다시 열린 이번 올림픽은 어떤 행사로 기억되기를 바라나.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84년 LA 올림픽이 동서 진영 간 이념 대결로 반쪽 올림픽이 된 데 비해 88 서울 올림픽은 160여개국이 참여함으로써 완벽한 올림픽을 만들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셰계속에 우뚝 솟았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동서 냉전 체제가 와해되는 계기가 되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문화 강국, ICT 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부각하고 나아가 평화올림픽을 구현하여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폐회사에서도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하였다.

Q.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행사를 치르고 나면 경기장의 사후 활용 방안이 지자체의 가장 큰 숙제로 남곤 한다. 평창의 경기 시설들은 어떻게 활용될 예정인가.

동계올림픽은 기본적으로 유럽의 대회이다. 평창이 23번째 대회였는데, 지난 22번의 동계올림픽은 모두 11개 나라에서 열렸으며, 대부분 유럽과 북미 국가들이었다. 하지만 평창에 이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 이제 아시아 스포츠로도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평창은 이런 점에서 중요한 전기를 만들었다. 평창올림픽에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6개국이 새로 참가했는데 대부분 눈이 없는 나라이다. 평창은 눈이 없는 나라도 겨울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국내적으로는 쇼트트랙, 피겨 등에서 스켈레톤, 컬링 등 전 분야로 저변이 확대되었다. 강원도에는 고속철이 개통되어 1시간 생활권이 되었다. 경기장 활용은 베이징 올림픽 전지훈련장으로 사용하는 등 얼마든지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Q. 취임 후부터 대회를 마치기까지는 오로지 올림픽만 생각하며 달려온 것으로 안다. 지금은 혹시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해둔 것이 있나.

당장 병원에 가서 종합 진단부터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겠다.

Q. 올림픽을 마무리하며 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88 서울 올림픽 이후 우리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되었다. 평창 올림픽도 투자에 비해 전후방 경제 효과는 64조 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와있다. 당장 금년 1/4 분기중 GDP 증대 효과가 0.2% 이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강원도 지역 발전에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기간 중 대한민국은 하나가 되었고, 모든 국민이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올림픽이 국민 통합을 넘어 남북 간 평화 달성에도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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