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위대한 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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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추경과 포퓰리즘 경주


마침내 ‘경제 위기 조기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를 위한’ 제 3차 추가경정예산안(이하 추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해에 세 차례나 추경이 편성된 것도 전례가 없지만 그 규모도 35조 3천억 원에 달해 역대 최대다. 1차 추경(11조 7천억 원)과 2차 추경(12조 2천억 원)까지 포함하면 그간 발표된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대책 패키지는 약 270조 원에 달하는데, 이는 올해 본 예산 512조 3천억 원의 절반이 넘는 막대한 금액이다.

구조 개혁을 외면하는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 기세에는 거칠 것이 없다. 언젠가 정권이 바뀌면 ‘신 적폐 감사’ 걱정을 하면서도 며칠 사이에 몇조 단위 뉴딜사업을 만들어내야 하는 실무공무원들의 고충도 말이 아니다. 예비타당성조사 등 정책 검증이나 국회의 재정 관리 등 제어 장치는 고장 난 지 오래다. 오히려 2차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고용보험제, 기본소득제 등 포퓰리즘 경주가 가속화되고 있다. 과연 내용은 제대로 알고 쏟아내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마치 ‘화수분’ 보물단지를 가진 듯이 당위와 선의만 내세울 뿐 비용 부담과 도덕적 해이 등 불편한 현실은 거론하지 않는다.

총선, 대선 등 4~5년 주기로 반복되는 선거의 득표 전략 앞에서 재정관리의 마지노선은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채무는 기하급수적으로 쌓여간다. 부당한 간섭과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와 더불어 복지를 통한 적극적 자유의 보장은 진정 소중한 가치다.
허나 이와 더불어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전 국민 고용보험’도, ‘기본소득’도 공짜가 아니고 누군가는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개인도 나라도 빚으로 영위하는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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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포퓰리즘 경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은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보강할 필요성을 새삼 일깨워 줬다. 고용유지, 고용보험, 실업부조, 고용센터 확충 등 시급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정책 효과와 가성비, 재원 조달 방안 등에 대한 검토가 미진한 상태에서 ‘내 귀에 캔디’ 마냥 달콤한 선심성 공약 경쟁은 돌이킬 수 없는 망국적 재정 파탄을 부를 수 있다. 대중의 지지율이 정책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코로나19는 현재 진행형이며, 언제 끝날지 과연 출구가 있기나 한 것인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개미지옥 같은 포퓰리즘의 망령이 노동윤리와 기업가정신을 파괴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예산 거버넌스를 개혁하고 재정건전성 관리 강화해야


현 정부 들어서 국가채무비율(43.5%)과 관리재정수지(5.8%)가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지방정부, 공기업, 가계 부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나라 전체가 빚더미에 올라앉았는데 재원 배분 권력을 가진 자들의 상황 인식은 안이하기 그지없다. 되려 ‘물 들어올 때 노 젖자’더니 한번 열린 나라 곳간 문을 더욱 활짝 열어젖히겠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평균이 110%이므로 우리는 아직 빚질 여력이 있고, ‘40%가 무슨 철칙이냐’ 60% 선이 마지노선으로 적정하다’고 한다. 고령화, 인구 감소, 저성장, 남북문제 등 재정건전성을 엄히 관리해야 할 현실은 안중에 없다. 더구나 지금의 재정 확대는 여윳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국채 발행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 문제인데,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회사채가 안 팔려서 시장이 위축되고 자칫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빚잔치’를 계속하다 올 하반기 코로나19가 다시 창궐하면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도 섬뜩하다. 코로나19 충격과 재정 살포가 소득주도성장으로 야기된 기저질환을 가리고 있을 뿐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정, 포용이라는 포장지를 덮어씌운 채 시장 경제에 역행하는 정책노선은 수정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기획재정부 장관과 예산실은 증액과 비목 신설 동의권 등 헌법이 행정부에 부여한 막중한 권한과 책무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며, 21대 국회는 추경의 면밀한 심사와 더불어 국가재정관리의 책임성과 민주적 통제, 나아가 재정 배분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간 학계에서 줄기차게 제안한 예산법률주의와 사전예산제도 도입, 국회의 결산 책무 명시, 예결위원회와 재정위원회의 분리·상설화, 그리고 정권 엄호 의혹을 받고 있는 감사원 개혁 및 국회의 독립적인 회계 검사권 강화와 더불어 재정 안정화 준칙도 법률로 명시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응에 가려 있지만 사실 실무적으로 중요한 것은 재정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 하는 문제다. 재난지원금 99% 신청이 정책 가성비에 착시효과를 가져오면 안 된다. 추경에 앞서 기존 예산이 얼마나 집행되고 있는지, 과연 의도한 효과는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점검과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집행률이 저조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홍보 목적으로 과대 편성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는데, 전례 없는 3차 추경은 타당성 검토가 더욱 꼼꼼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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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중독과 공짜 복지로 노동윤리가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


‘코로나19 실업급여’ 중독으로 노동자들이 일터에 복귀하지 않는 현상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포퓰리즘 과잉 상태로 소풍수당, 효도수당, 농어민수당, 청소년수당, 휴가지원금 등 이름도 명분도 가지가지다. 현 정부 들어서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사업 중 현금복지사업 비중이 70%대로 급증했고, 2019년 우리나라 공공사회복지지출 규모는 약 232조 원으로 국내총생산의 12.1%, 순수 현금복지지출액만 73조 3,900억 원에 달했다. 이 기세대로라면 머지않아 전 국민이 하나 이상의 수당을 받게 될 터, 정치권도 공무원도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악성 포퓰리즘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형국이다. 여기에 방만한 현금복지 사업의 구조조정 없이 전 국민 고용보험에 기본소득까지 더해지면 정말 ‘내 삶을 책임져주는 나라’가 될 판이다. 단, 머지않아 나라 곳간이 거덜 나기 전까지만.

한편, 현행 노동법과 최저임금, 실업급여 제도를 비교해보면 휴직하며 애써 고용을 유지하는 것보다 권고사직 처리하고 실업급여 받는 것이 2.6배 유리하다고 한다.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복지에 의존하는 것이 유리하다면 누가 일하기를 선택하겠는가? 노동윤리 붕괴의 시작이다. 여기에 더해 대법원 확정판결도 분쟁의 종국적 해결 제도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일감이 줄어도 임금투쟁은 계속되고 해고자는 복직된다. 적자기업에 공적자금을 수혈하며 고용이 정치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건강한 노동윤리도 도전적인 기업가정신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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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위대한 리셋’의 원년으로 삼아야


일찍이 하이에크(F. Hayek)는 국가의 개입은 그 의도는 선한 것이었을 수 있지만 선거 승리를 위해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부분적 이해관계를 앞세우게 되고, 결국에는 정치권력의 무한한 팽창을 가져오는 ‘노예의 길’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만일 자기 돈이라면 나랏돈을 지금처럼 막 쓸 수 있을까? 자동차•반도체•바이오 등 29개 업종 단체 회원사에 물었더니 지원 확대보다 노동시간•최저임금•환경 등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건의가 두 배 가까이 많았다고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는 놓아둔 채 세금만 쏟아 붓는다고 뉴딜(New Deal)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현금 뿌리기’가 아니라 근로 의욕과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고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면서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단언컨대 지금은 죽은 자들의 무덤 파헤치기가 아니라 산 자들의 경제활력을 높이는 데 힘을 모을 때다. 4차 산업혁명의 거두 클라우스 슈바프가 강조하듯이 포퓰리즘 경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대한 리셋’, 즉 교육, 사회적 계약, 근로조건 등 사회와 경제의 모든 측면의 개조를 목표로 연대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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