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적 리더십이 필요한 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위기가 닥치면 본색이 드러난다

무능함을 감추던 레토릭의 장막은 걷히고, 적자를 숨기던 분식회계는 이내 밝혀지고 만다.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도 분명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1년여 계속되면서 신성장동력과 미래비전, 통합의 리더십을 결여한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생존의 위기

어떤 현상이 기업이나 조직, 또는 개인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상황 변화의 불확실성이 높고, 긴급한 행동이나 대응이 필요한 상황일 때, 그 현상을 위기라고 부른다(최진봉,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지금의 우리나라가 그렇다. 과거에 갇혀 편싸움으로 갈라진 사회, 퇴행적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정치, 은행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 성장하지 못하는 경제, 2020년 대한민국은 복합적 위기에 처해있다. 무엇보다도 감염병의 공포 속에서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설렘이 사라져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지 않고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1 : 29 : 300 법칙(하인리히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단지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는 이념 과잉의 정책오류로 기저 질환을 앓고 있던 우리 경제와 사회의 약한 고리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신속성, 일관성, 개방성을 ‘위기대응의 3원칙’으로 제시한다(유재웅, <위기관리의 이해>). 신속성은 정보의 공백으로 인한 혼란과 상황 악화를 방지하는 것이다. 일관성은 메시지 간에 모순이 없어야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구난방, 오락가락을 경계해야 한다. 개방성은 참여, 공개, 정직을 의미한다. 편 가르기는 금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부, 노사, 국민 모두 감염병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감염병 확산과 통제, 재확산이 반복되면서 경제의 체력이 떨어져 가고 국민들도 지쳐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이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그 상처와 후유증은 막대할 것이다. 위기 대응을 넘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보다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한 때다. 재정 투입 위주의 한국형 뉴딜로는 부족해 보인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 국면 속에서 위기 대응을 이끌고 있는 정부는 위기대응의 기본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움직임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다. 허나 우리는 굴복하지 않고 치열하게 싸우며 오늘의 번영을 이룩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감원 위주의 고용 조정으로 대량 실업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당해서 힘들었지만,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폭발적인 실업 증가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이와 같은 과거 경험을 교훈 삼아 현장의 노사가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고통을 분담하며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가 길어지면서 서비스업종뿐만 아니라 제조업 생태계도 사실상 붕괴 수순에 돌입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영세한 하청업들은 자금 부족에 일감마저 사라지면서 줄 도산이 현실로 다가오고, 자영업 폐업은 이미 도미노처럼 확산되고 있다.

위기감은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등 제조업 전반을 뒤엎는 모습이다. 정부도 4차 추경 등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은 상태다. 우리 경제의 규모가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기도 하다. 일자리를 지키고 경제가 살아나려면 결국 기업 활동과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희망의 싹을 살리기 위한 노사의 분투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지지율 숫자 싸움의 함정에 빠져 있지만, 일터를 지키는 노사의 시선은 위기 극복 너머 미래로 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가치 사슬 구조 개편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삼성전자의 반도체 ‘초격차’ 전략, LG의 배터리 투자 확대, 현대차의 미래차 개발, SK의 바이오산업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체질 개선과 새 판 짜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종과 기업의 경계를 넘는 동맹 움직임도 활발하다.

재계의 생존을 위한 변화에 노동계도 힘을 보태고 있다. 마침 지난 9월 현대자동차 노사가 무분규로 임금협상에 합의했다. 기본급 동결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이고, 2년 연속 무분규 합의는 2009~2011년(3년 연속)에 이어 두 번째다.

임금교섭 기간도 40일로, 2009년(38일)에 이어 두 번째로 짧았다. 현대차 노사는 ‘노사 공동발전 및 노사관계 변화를 위한 사회적 선언’도 채택했다. ▲국내 공장 미래 경쟁력 확보와 재직자 고용안정 ▲전동차 확대 등 미래 자동차산업 변화 대응 ▲미래산업 변화에 대비한 직무 전환 프로그램 운영 ▲고객·국민과 함께하는 노사관계 실현 ▲자동차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부품 협력사 상생 지원 ▲품질 향상을 통한 노사 고객 만족 실현 등에 함께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사 별도 합의를 통해 울산시와 울산 북구가 추진 중인 500억 원 규모 지역 부품 협력사 고용 유지 특별지원금 조성 사업에도 참여할 계획이라는 소식도 있다. 현대차 사례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국내 노동조합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노사관계 변화의 풍향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변해야 산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은 불가피하다. 설비 가동률 저하, 소비 위축,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증가 등 곳곳에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생존하려면 위기는 돌파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단단한 체질로 탈바꿈해서 도약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끝없이 변종을 만들어내는 코로나19를 이기려면 더 유연하고 신속하게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첫 번째 키워드는 변화(change)다. 변화 속에 기회(chance)가 있다.

변화를 만드는 것을 개혁이라고 한다. 개혁은 겉가죽만이 아니라 속까지 새롭게 하는 것이다. 개혁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한다. 배제가 아니라 통합, 좌절이 아니라 희망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거창하게 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 혁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영상회의, 비대면수업, 재택 근로 등을 통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체험하며 그 유용성을 실감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생존과 번영의 기회로 만들려면 교육이 바뀌고,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자원을 배분하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산업현장의 노와 사는 이미 변화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혁신기업이 서초동과 여의도가 아니라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노동’은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다

인간에게 할 일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노동의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가? 그간 노동개혁이라는 이름하에 추진되거나 주장된 내용을 보면 ‘고용 유연화’에서 ‘해고 금지’까지 극과 극이다. 그만큼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문제가 노동이다. 따라서 노동개혁은 사회적 대화와 소통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결단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모두가 개혁을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은 반기지 않는다. 독일의 슈뢰더 전 총리의 하르쯔 개혁(Hartz Reforms) 사례에서 보듯이 때로는 잠시 정치권력을 내놓아야 할 때도 있다.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내용을 보아하니 동상이몽인 듯하나 요즘 다시 노동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어 몇 마디 보태 보려 한다. 우선 노동개혁의 중심에는 시대 상황에 대한 통찰과 사람 중심(人本)의 미래 비전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개혁의 실패는 값진 교훈이 될 수 있지만, 실패가 자꾸 반복돼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과거 정부의 노동개혁은 성공했는가? 실패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지금 정부는 성공하고 있는가?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분석해봐야 한다.

요즘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을 꼽자면 단연 반도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면에는 일본의 실패가 있다. 일본 동경대학의 요시미 순야(吉見後哉) 교수는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책에서 2000년대 이후 일본 전기전자 산업의 실패 요인으로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텔레비전(TV) 시대의 종언과 모바일형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를 인식하지 못했던 점이고, 다른 하나는 1990년대부터 글로벌한 규모로 전개된 수평분업구조에 일본 기업들이 적응하지 못했던 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우리 기업들도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면 실패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노동개혁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개혁이 포퓰리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고용에 미치는 장단기 영향과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잘 살펴야 한다.

당연한 사실임에도 종종 잊기 쉬운 것이 고용이 없으면 노동기준도 노사관계도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안전망 확충은 복지가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 개혁이 신화가 되면 통제받지 않는 권력의 사유화,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우리나라 노동개혁의 당면과제는 법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제도와 정책이 기업경영과 노동활동을 시대착오적으로 제약하는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네트워크화된 시장에서 수평적 분업과 융합적 협업으로 얽히고 설킨 산업 생태계를 수직적 분업의 잣대(예: 원청과 하청, 도급과 파견)로만 규율하면 모순이 발생하고 혁신은 지체될 것이다.

모든 것이 복잡하고 다양해진 오늘날 산업과 노동의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진단하고 유효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주체는 제3자가 아니라 노사 당사자다.

따라서 노동조건의 설정과 일하는 방식의 운영에 대한 정부의 획일적 개입은 자제하고, 노사 자치의 영역을 확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통상임금, 노동시간, 고용형태와 차별 해소 등에 있어서 노사의 대화와 협력, 자치가 강화돼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변화를 촉진하는 리더십

코로나19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생존하려면 변화 적응력, 유연함과 기민함은 필수다. 일찍이 가수 이정현은 모든 것을 다 바꾸라고 노래했지만 환경이 달라지면 체제의 대응양식도 바뀌어야 한다. 헌데 변화와 개혁의 험난한 여정에 평탄한 꽃길 따위는 없다. 지지와 반대가 충돌하는 가운데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만 있을 뿐이다.

조직의 목표를 정하고 구성원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해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을 리더십이라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리더는 상황을 판단하고 조직의 통일을 유지하며 집단 목표를 달성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즉, 리더십의 본질은 일, 꿈, 비전이 실현되도록 만드는 것(Get things done)이다. 변화 과정에서의 갈등을 극복하고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리더의 운명적 책무다.

리더십 이론 중에 변혁적 리더십이라는 것이 있다. 변혁적 리더는 이상적이며 성취 가능한 비전과 미션을 제시한다. 구성원들로 하여금 충성과 신뢰, 존경 등의 감정을 일으켜서 기대보다 높은 노력을 이끌어내고,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를 통해 성과를 이끌어 낸다.

코로나19로 고통과 불안이 계속되는 지금, 희망의 미래를 제시하고 노동을 혁신해서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변혁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변해야 한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변해야 산다. 노·사·정 등 각 영역에서 변혁적 리더십을 갖춘 리더가 시대의 부름에 응답해야 할 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트업투데이(STARTUP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