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발목 잡는 정부 규제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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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4] 한국 스타트업이 위기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스타트업 세계에서 변방이다. 한편, 한국 스타트업의 초라한 성적표와 달리 전 세계의 많은 스타트업들은 스케일업으로 몸집을 키운 후, 유니콘 기업으로 날개를 달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전 세계의 흐름과 반대로 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가는 여정에서 발목을 잡는 주된 원인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전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는 점점 더 확장되고 있는 추세지만,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롭게 생겨나는 스타트업은 수없이 많지만 창업 3~7년 차에 겪는 어려운 시기인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 스타트업이 많다.

스타트업 정보분석 기업인 스타트업 게놈(Startup Genome)에서 2017년 세계 55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도시별 창업 생태계 가치’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는 264점, 중국 베이징은 131점, 이스라엘 텔아비브는 22점, 싱가포르는 11점의 ‘창업 생태계 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서울은 2.4점을 기록하며, 매우 낮은 수치를 보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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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니콘’ 기업 현황

‘창업 생태계 가치’ 평가로 264점을 얻은 미국은 가장 많은 유니콘(Unicorn) 기업을 갖고 있다. 유니콘 기업이란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즉 1조 원 이상 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의미한다. 상상 속의 동물인 유니콘처럼 희소성이 높다는 데에서 기인한 말이다. 2013년 여성 벤처 투자자인 ‘에일린 리(Aileen Lee)’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CB Insight에 따르면, 2018년 8월 13일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니콘 기업은 260개에 달한다. 이 중 한국 기업은 쿠팡(대표 김범석), 옐로모바일(대표 이상혁), L&P 코스메틱(대표 권오섭) 3개에 지나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냈다.

작년 12월 10일을 기점으로 간편 송금 서비스인 ‘토스’를 제공하고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대표 이승건)의 기업가치가 1조 3,000억 원이 되면서 한국은 총 4개의 유니콘 기업을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미국은 118개, 중국은 76개의 유니콘 기업을 보유해, 사실상 세계 유니콘 기업 시장의 흐름은 미국과 중국 ‘양강 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원장 신승관)에서 발표한 ‘유니콘으로 바라본 스타트업 동향과 시사점’에 따르면, 가장 많은 유니콘 기업이 있는 미국은 우버와 에어비앤비처럼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업 양상을 보이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세상에 없던 혁신적인 상품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이미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상품을 따라가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동양의 애플로 불리는 샤오미(Xiaomi)가 대표적인 예다. 중국은 2014년 말 리커창 중국 총리가 선언한 ‘대중 창업 만중 창신(大衆創業 萬衆創新, 모두가 창업하고, 창조하고, 혁신하자)’의 정신에 따라 정부의 창업지원을 대폭 늘렸으며,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창업 생태계의 조성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시장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정부 규제’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규제 완화’를 통한 벤처기업 육성 ‘올인 정책’이 꼽히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9월에 발표한 ‘美 실리콘밸리형 혁신 모델과 정책 시사점’ 연구 결과에 의하면, 미국 실리콘밸리가 전 세계 260개의 유니콘 기업 중 23%, 미국 전체 118개의 51%에 달하는 60개사를 배출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드는 쪽에 힘을 실어주는 혁신 생태계’가 꼽히고 있다.

대한상의는 “이 지역(실리콘밸리)의 특허등록 건수(누적)는 약 2만 건으로 미국 전체의 13.5%를 차지하고, 미국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의 40%가량이 혁신적 사업모델을 찾아 이곳에 몰리고 있다”며 “정부의 큰 지원이나 간섭 없이 ‘시장의 신호’만 따라 창업과 사업 확장을 벌이는 실리콘밸리의 혁신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한상의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 8인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내놓은 실리콘밸리의 ‘혁신 방정식’의 첫 번째 공식은 ‘규제 최소화’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규제 ‘완화’를 넘어 규제 ‘해소’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 정부에서는 이를 위해 '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규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기술과 신사업에 대해 ‘최소한의 규제’만 적용한다. 시장이 활성화된 후에 필요한 부분에 한정해 ‘사후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 규제는 전 세계의 흐름과 달리 뒷걸음질 치는 형국이다. 대한상의가 2017년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산업분야 기업의 절반이 “지난 1년 새 규제 때문에 사업 차질을 경험했다”라고 밝혔다. 무인이동체, 신재생에너지, ICT 융합, 바이오·헬스, 핀테크 등 5개 신산업 분야 700여 기업을 대상으로 한 ‘국내 신산업 규제애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에 규제 때문에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47.5%의 기업이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분야별로는 핀테크 기업의 70.5%가 사업 차질 경험이 있다고 답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신재생에너지(64.7%), 무인이동체(50.0%), 바이오‧헬스(43.8%), ICT 융합(33.6%)이 그 뒤를 이었다.

사업 차질 양상은 ‘사업 지연이’ 53.1%로 가장 많았으며, ‘사업 진행 중 중단·보류’(45.5%), ‘불필요한 비용 발생’(31.7%), ‘사업 구상단계에서 어려움을 인식해 포기’(22.8%) 순서로 나타났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기업에서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중단·보류’하는 경우가 69.7%로 가장 많았으며, ICT 융합분야는 ‘사업 지연’이 63.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무인이동체 기업은 ‘불필요한 비용 지출 발생’이 41.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국내 신산업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낮은 이유에 대해 ‘정부 규제’를 가장 많이 지적했다. “귀사가 글로벌 경쟁을 하는 데 있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를 묻는 대한상의의 질문에 ‘규제애로’가 74.6%로 가장 많았던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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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중독’에 걸린 정부와 정치권

정부의 규제와 관련해서는 전문가들도 쓴소리를 내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규제 문제가 가장 크다. 기본적으로 유니콘은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는 것이다. 일종의 블루오션으로 나가는 것인데, 신사업 부분에는 많은 규제가 있다. 이 규제라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얽히고설켜 있다. 시장 진입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두 번째는 금융에 문제가 있다. 금융은 사실은 미래에 대해 투자를 하는 것이다.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기계, 설비와 같은 유형자산은 눈에 보이지만, 기술 분야인 무형자산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은 전형적인 유형자산인 부동산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무형자산에 대한 금융은 형성돼 있지 않다.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금융을 통해 대자본이 유입돼야 하는데, 대자본이 유입되기 어렵게 돼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세 번째 지적은 인력 문제다. “인력 양성에 문제가 있다.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있는 인재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창의성은 교육을 통해서 키워나가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철저하게 입시와 암기 위주의 교육이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는 창의성이 나오기 어렵다. 진취적으로 도전하는 인재들이 극도로 부족한 실정이다. 대학이 기술 변화와 경제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데, 굳어 있다. 단절이 있는 것이다. 단절돼 있기 때문에 인재들이 풍부하지 못하다.”

김 교수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규제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만든다.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중독’에 걸려 있다. 특히 정치권이 그렇다. 무조건 통제하려 든다. 대표적으로 ‘공공성’의 논리를 앞세운다. 또 ‘안전’을 내세운다. 그런데 유니콘 기업이라는 것은 ‘공공성’과 ‘안전’을 생각하면 할 수 없다. 바탕은 비즈니스다. 규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 가장 큰 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더불어 김 교수는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굉장히 경직돼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을 방법부터 생각한다. 사업이 가장 잘 될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일종의 ‘관료주의’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은 신사업이나 벤처에는 최악이다. 사업의 성패가 관료의 손아귀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료들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선순환 고리 이어져야

‘정부 규제’ 이외에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는 또 다른 이유로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꼽히고 있다. 스타트업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결은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는 사회적 분위기에 있다. ‘실패’도 성공의 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80%가 실패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들에게 ‘실패’란 사업의 끝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거쳐야만 하는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한 번 창업에 실패하면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창업에 실패한 사람도 재도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실패에 관대한 문화’가 반드시 조성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美 실리콘밸리형 혁신 모델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는 “실리콘밸리에는 당장 커다란 보상이나 안정적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아도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일하려는 인재들이 많다”면서 이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뭔가에 도전했다는 경험 자체를 높이 사는 문화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패에 너그러운 실리콘밸리의 문화가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깨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보고서는 “‘빠르게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라(Fail fast, fail often)’는 실리콘밸리의 보편적 가치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경감시키고 있다”며 “실패를 낙오가 아닌 ‘배우는 경험’으로 인정하는 문화가 곧 혁신의 토양”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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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을 넘어서 ‘데카콘’으로 거듭나야

최근 미국과 중국은 실패를 인정하는 문화를 바탕으로 정부의 지원 정책을 등에 업고,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뿔이 10개 달린 상상 속 동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데카콘이란 유니콘의 10배, 즉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11조 원)가 넘는 기업을 말한다. 미국의 금융정보와 뉴스를 서비스하고 있는 미디어 그룹인 블룸버그(Bloomberg)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대표적인 데카콘 기업으로는 우버, 디디추싱, 샤오미, 메이퇀·뎬핑, 에어비앤비, 스페이스X, 플랜디르테크놀로지, 위워크, 루닷컴, 핀터레스트 등이 있다.

아직 우리나라 기업 중에는 데카콘으로 분류되는 기업은 전무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스타트업 중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으로 거듭나는 기업이 나온다면, 우리나라 경제를 혁신적으로 이끌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성장동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을 넘어 데카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스타트업4=임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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