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짜소득이 아니라 일자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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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체감도와 먼 일자리 통계  

통계청의 고용동향이 발표되는 주의 수요일이면 언론의 비판 보도와 침통한 표정으로 일자리 대책을 논의하는 경제장관회의가 익숙한 루틴(routine)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3월 이후 정부 관계자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취업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지난해 3월(-19만 5천 명)부터 올해 2월(-47만 3천 명)까지 1년 내내 감소하다가 올해 3월(31만 4천 명)부터 증가세로 전환하여 5월(61만 9천 명)까지 3개월 연속 증가했기 때문이다. 

양적 지표만 보면 고용상황은 확연히 개선되고 있는 듯하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코로나19 직전인 2020년 2월과 비교하면 80% 이상의 일자리가 회복된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국민들도 일자리 사정이 나아졌다고 느끼고 있을까? 

취업과 사업에서 전쟁 같은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청년,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상황을 보면 봄이 오지 않았다. 고용동향 세부 지표를 봐도 산업과 계층별로 격차가 벌어지는 'K자 회복'의 형태이다. 

5월만 해도 3040, 서비스업, 자영업 고용이 줄었고, 고용의 질도 좋지 않아 초단시간 취업자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가 115만 명이나 되고, 청년실업은 고질병이 되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청년층 확장실업률(고용보조지표3)은 24.3%로 넷 중 한 명은 실업자이고, 구직단념자도 60만 명을 넘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4월 실시한 ‘2021년 청년일자리 인식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의 81.1%가 체감고용률이 40% 미만이라고 인식하고, 취업난으로 불안, 무기력, 우울함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고용지표 개선은 백신 접종에 따른 소비심리 회복, 수출 호조와 함께 지난해 마이너스 고용의 기저효과, 적자재정을 감수한 대규모 재정투입, 재난지원금이나 실업급여 만료에 따른 구직활동 증가 등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재정으로 떠받친 고용은 칼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취약하다.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양질 민간 일자리 창출, 고용구조 변화 선제 대응, 고용 취약계층 지원 방안 등을 충실히 반영하고 집중 실행하겠다”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이 역설적으로 일자리 사정이 취약한 지점을 말해준다. 사정이 이럴진대 1년도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세대 간 일자리 경쟁과 ‘고용 총량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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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발 세대교체 바람과 더불어 눈길을 끄는 것이 정년연장론이다. 현재 60세 이상으로 되어 있는 정년을 연장해서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노동조합이 정년연장을 요구한 자동차 업종에서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아직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고 군불을 때는 수준이지만 메가톤급 충격을 줄 만한 이슈이다. 

선진외국을 봐도 대세는 정년을 늘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4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28.9%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13년 정년을 65세로 연장한 데 이어 올해 4월부터 70살 정년퇴직 시대를 열었다.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하여 종업원 정년을 기존 65세에서 70세로 연장하거나 재취업 혹은 창업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구 절벽에 직면한 유럽 국가들도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금수급연령을 늦추는 방식으로 정년을 늘리거나 아예 폐지하는 추세다. 저출생·고령화와 인구감소 대응책으로 우리도 정년연장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법으로 정년을 늘린다고 실제 더 오래 일할 수 있을까? 고령층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청년들의 일자리가 적어지는 건 아닐까?  

정년 60세 법제화 경험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당시에도 정년연장은 인구 고령화 문제 및 생산력 감소를 대비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찬성 측은 중장년층의 소득이 늘어나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숙련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반대 측은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국회는 2013년 5월 22일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였다. 기존에 권고조항으로 되어 있던 정년을 의무조항으로 바꿔 60세로 연장하고, 공기업,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6년 1월 1일부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17년 1월 1일부터 적용하도록 하였다. 

이때 정년연장의 논거로 등장한 것이 ‘고용 총량의 오류’이다. 즉, 한 나라의 노동시장에서 고용 총량이 고정되어 있어 고령자 고용이 증가하면 청년 고용이 줄어든다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2013년 12월 13일 자 고용노동부의 '세대 간 일자리 관계의 이해' 자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청년층과 고령층의 고용이 함께 증가하고, 경제가 침체하면 함께 감소한다. 

고용은 임금수준, 생산성 등 경제 여건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청년 고용은 경기적 요인, 교육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고, 고령자 고용은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임금체계 개편, 임금피크제 확산 등을 통해 제조업, 대기업에서 세대 간 상생고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일자리와 청년 선호 일자리는 달라서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도 청년고용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주장과 매우 닮았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실제 모습은 전혀 달랐다. 정년연장법 시행을 전후해 조기 퇴직자가 증가하고, 청년 고용은 줄어들었다. 고용보험 데이터를 이용해 ‘정년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한국개발원 한요셉 박사에 따르면 정년연장으로 고령층 고용이 증가할수록 청년 고용은 감소했다, 정년연장의 폭이 클수록 청년 고용이 더 많이 줄어 정년연장과 청년 고용 감소 간의 뚜렷한 연관성이 나타났다. 

그런데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를 동시에 도입한 공공기관에서는 정년이 연장되자 고령층 고용은 물론 청년 고용도 늘어났다. 사업체패널 자료를 분석한 한국노동연구원 남재량 박사 역시 정년연장법 시행은 조기퇴직 증가 등 고용에 부정적 효과를 미쳤고, 임금피크제는 고용을 증가시켰다고 분석하였다. 

그렇다면 정년연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기퇴직이 증가하고 신규채용이 감소하는 부작용을 줄이려면 정년을 점진적으로 늘려서 노동시장에 충격이 흡수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일본은 일률적으로 법정정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퇴직 후 재고용 등 기업 형편에 맞게 유연한 방법으로 고용을 연장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성장과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고, 시대와 동떨어진 제도 개혁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다. 

 

‘고용 총량의 법칙’을 만드는 정책의 오류와 제도의 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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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무시한 정책은 배신으로 응답한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빼앗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은 도덕적 해이와 무임승차자를 늘리고 청년 고용은 줄였다. 

주 52시간 근무제 상한제 강행은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취약근로자의 근로소득을 줄였다. 공공성 강화를 내세워 임금피크제와 성과주의를 폐기하고 연공급으로 회귀한 공공기관 정책의 부작용은 오래도록 계속될 것이다. 일부 기득권 ‘노동’만 존중하는 정책은 노동조합 조직 부문과 비조직 부문 간 격차를 확대시킬 것이다. 

뉴노멀이 된 저성장과 양극화된 노동시장이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의 오류가 청년의 취업난과 장년의 고용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청년 취업준비생 10명 중 3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인 대한민국은 모험적 도전이 사라진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7년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시족 증가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21조 원 이상이다. 

2013년 정년연장 때 정부가 내세운 고용총량 오류의 전제인 성장, 임금, 생산성 논리가 무너지고, 공정성마저 파괴된 결과가 바로 지금의 고용절벽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근시안적 대증요법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세금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와 같은 인위적 고용증가 처방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모래성과 같다는 것을 코로나19가 보여주고 있다. 

산업과 시장의 급속한 변동을 법제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제도의 지체’도 심각하다. 법제와 현실 간 부조화의 대표적인 예가 1953년 제정되어 기본 틀이 바뀌지 않고 있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이다. 

두 법은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체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그러나 현장은 이미 디지털 경제와 지능정보사회로 바뀌었다. 노동시장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급속한 진전으로 시간과 공간의 경계와 제약이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거꾸로 다양성과 자율성을 부정하고 획일성과 강제성을 강화하는 길을 가고 있다. ‘노동존중’ 정책이 일자리와 노동을 위협하는 역설을 낳고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 안심소득, 공정소득으로 이어지는 소득 시리즈 공약 경쟁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소득은 월급 받으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기본적으로 얼마의 소득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안심소득이나 공정소득은 부의 소득세제 개념을 도입하여 근로소득과 연계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미지수다. 소득보장 시리즈는 막대한 재원 조달방안도 문제지만 근로의욕과 기업가정신의 파괴가 가져올 부작용이 걱정스럽다. 핀란드 등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한 나라들과 실업급여를 올리자 수급자들이 일하려고 하지 않아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는 미국의 경험도 면밀히 분석해봐야 한다. 

소득은 경제 활동의 대가로 얻는 돈이며, 이전소득은 생산에 직접 기여하지 않고 보험료, 연금, 보조금 등과 같이 나라나 기업으로부터 받는 돈이다. 초등 사회 용어사전에 나오는 정의이다. 

출구가 막히면 결국에는 입구도 막히고 고인 물은 탁해지는 법이다. 기성세대가 기득권 보호의 성벽을 높이 둘러친 곳에서 혁신은 불가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청년세대가 값을 치러야 할 공짜소득이 아니라 일자리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 걱정 없이 삶을 즐길 수 있는 유토피아는 없다. 일자리는 세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바로 잡고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제도를 개혁할 때 만들어진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려면 기업가정신과 근로 의욕이 살아나야 한다. 현금복지보다 일자리 개혁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공공·노동·교육·복지를 고용 친화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공공부문부터 임금체계와 인사관리를 혁신해야 한다. 스위스 경영대학원(IMD)의 아르투로 브리스 국가경쟁력센터장은 ‘뛰어난 인재들이 기업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혁신을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하는 구조에서는 경쟁력이 향상되기 어렵다’고 충고하였다. 

참고로 '2021년 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경제 성과'(27→18위)와 '기업 효율성'(28→27위)은 나아졌으나 '정부 효율성'(28→34위)과 '인프라'(16→17위) 순위는 떨어졌다. 종합순위는 총 64개국 중 23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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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투데이=편집부] news@startup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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