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시민의 안목과 행동이 절실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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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경남 진주 본사 외경. (사진=LH)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막강한 현장권력을 가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땅 투기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반부패정책협의회, 부동산투기근절대책, LH 구조개편 등 총력전이다. 하지만 성난 부동산 민심에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친다. 장관까지 바꿔가며 내놓은 2.4 부동산대책은 이미 추진동력을 잃어버렸다.

민심 이반의 일차적인 원인은 무능한 정부 때문에 내 집 마련의 꿈이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좌절감을 들 수 있다. 헌데 여론을 보면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인터넷에는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주창했던 개혁의 허구성과 공직윤리의 실종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라는 멋진 취임사에 보냈던 기대와 지지는 어느새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민심 이반은 결국 문재인 정부의 정책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LH 사태에 대처하는 자세나 내놓은 처방은 구태의연하다. 정책과 제도를 바로잡기보다는 희생양 만들기와 시범케이스 처벌로 여론을 달래고 위기를 모면하는 데 급급하다. 

그러나 이번 LH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땅 투기 사건이 아니다. 오만한 정치권력, 공공부문에 광범위한 진지를 구축한 특정 진영, 그리고 노조 기득권세력이 결탁한 ‘철의 삼각지대’ 부패의 산물이다. 

주거, 일자리, 노사관계, 공공기관 혁신 등 총체적인 정책실패의 결정판이다. 국민들이 더 이상 정부 정책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 블로그 ‘정책 공감’의 ‘국가청렴도 역대 최고치…완전한 민주국가로 자리매김했다’는 내용을 읽기가 참으로 민망하다. 

 

공공성과 공직윤리란 무엇인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LH 사태는 정부가 공공부문 확대의 논거로 내세운 ‘공공성’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공공성’이란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로서 ‘공익성’을 내포한다. 

공익에 실체가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사익을 초월한 규범이나 자연법, 정의, 형평, 복지, 인간존중, 공동사회의 기본가치 등을 공익이라고 정의한다. 

반면, 과정을 중시하는 견해는 여러 사회집단 간에 대립, 투쟁, 협상, 타협 과정에서 다수 이익에 일치되는 것이 공익의 이름으로 도출된다고 한다. 이 경우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기준으로 공익성 여부를 결정하는지가 중요한데, 결국에는 정치과정을 통해 결정되고 행정작용을 통해 집행된다. 따라서 정치권력과 행정관료가 썩으면 권력자의 사익 추구가 공익으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입법자는 정부에 대해 합리성, 능률성, 책임성, 민주성, 합법성 등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공직자에 대해선 청렴, 성실, 투명, 봉사와 같은 공직윤리를 요구한다. 

그 가운데서도 공직자의 첫째 덕목은 청렴, 즉 반부패이다. '부패방지법'에 따르면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해 그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령을 위반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 공공기관의 예산 사용, 재산의 취득관리처분 또는 공공기관을 당사자로 하는 계약의 체결 및 그 이행에서 법령에 위반해 공공기관에 대해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행위, 이러한 행위나 그 은폐를 강요·권고·제의·유인하는 행위가 모두 부패행위이다.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의 땅 투기는 전형적인 부패행위이다. 

역사 속에서 망한 나라, 말로가 좋지 않은 권력자들을 보면 모두 부패와 관련이 있었다. 부패는 망국병과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부패의 유형 분류에 따라 LH 공직자의 땅 투기 사례를 살펴보면 심각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개인적 일탈 수준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제도화된 부패로서 부당하게 사익을 추구한 흑색부패이다.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에 주로 발생했던 생계형 부패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희소한 권력과 정보를 악용한 권력형 부패로서 개인적인 이익을 편취한 사기형 부패이다. 한마디로 악성부패이다. 국민들은 이미 확신한다. 썩은 곳이 어디 LH뿐이랴.

 

역대 정부의 반부패정책과 법 제도의 변화

부패를 방지하려면 공직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관성적 성격을 갖는 문화의 변화는 그것이 형성된 기간 이상의 시간과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반복되는 부패의 사슬을 끊으려면 제도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속죄양을 찾는 엄벌주의 접근방법은 일시적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달랠 수 있을지 몰라도 원인을 치료하지는 못한다. 뿌리를 뽑지 않으면 부패는 반복된다. 

비록 역대 대부분의 대통령이 권력형 부패 스캔들을 피하지 못했지만 부패방지를 위한 법 제도 개혁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전두환 정부는 공직자윤리법을 제정하였고, 노태우 정부는 정치자금법을 개정하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강화하였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공직 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 제정, 정보공개법 제정 등 강력한 반부패정책을 추진하였다. 김대중 정부도 부패방지법 제정, 공무원 행동강령 제정, 내부고발자 보호제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국민감사청구권, 인사청문회법, 돈세탁방지법 제정 등 다양한 법 제도를 실시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부패를 청렴 개념으로 확대하고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주식 백지신탁제도 도입, 인사청문 및 검증제도 강화, 재정신청범위 확대 등을 추진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권익위원회로 관련 조직을 통합하고, 뇌물 사범 가중처벌제를 도입하였으며, 박근혜 정부는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하고 부정청탁금지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치법 제정과 검찰 권한 약화에 집중하다가 검찰총장이 ‘부패 완판’이라고 반발하며 사퇴하는 사태를 맞이하였을 뿐 이렇다 할 반부패정책이나 제도 개선 성과를 이루지 못하였다. 

LH의 대국민 사과문. (사진=LH 홈페이지 갈무리)
LH의 대국민 사과문. (사진=LH 홈페이지 갈무리)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반부패대책과 더불어 보다 적극적인 조치로 요구되는 것이 공공기관 개혁이다. 그런데 역대 정부의 개혁과 문재인 정부를 비교해보면 방만 경영을 키운 문재인 정부의 역주행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체제하에서 민영화와 민간위탁 등 공기업 구조조정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공기업은 고유업무와 핵심사업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청렴도 조사, 정부투자기관 기관장 평가, 고객만족도 조사를 도입해 투명성을 제고하고 성과주의를 강화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책임경영과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였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를 구축하고,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통합하였다. 그러나 공공부문 비대화와 공기업 노조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와 규제개혁을 강조하여 민영화, 기관 통폐합, 경영 효율화 등 구조조정을 강화하고, 간부직 대상으로 성과연봉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보금자리주택, 자원에너지 외교, 4대강 사업 등 국정과제 사업에 공공기관이 동원됨에 따라 공공기관 부채가 증가하는 문제를 낳았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를 추진하였다. 성과연봉제 확대, 공공기관 통폐합 등 기능조정, 공기업 상장, 전기 가스 등 판매시장 개방, 방만 경영 개선 등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청년고용 확대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은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가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도입했던 성과연봉제는 폐지되고 연공형 임금체계로 후퇴하였다. 비정규직 제로를 내세워 외주업체소속 정규직 근로자도 비정규직이라며 직접고용이 강행되었다. 

경영평가 항목에서 정부 권장정책 평가 점수 가중치를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 별도지표를 신설하여 정부 방침을 따르도록 압박하였다. 그 결과 적자 공기업이 방만하게 인력을 늘리고도 경영을 잘했다고 성과급을 받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노동계는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하였다. 

대리인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공공부문이 공룡처럼 비대해지고 있다. 공공기관의 노사담합에 따른 도덕적 해이 사례는 차고 넘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말에 비해 2019년까지 3년 동안 LH, 한국전력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10대 공기업의 영업이익은 70% 가까이 줄었지만 저금리 주택자금이나 각종 현금성 복지혜택을 주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은 1조 750억 원에서 1조 2,151억 원으로 13.1%나 늘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력은 늘었는데 청년공채는 줄어든다. 경력이나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내려보낸 정치권력과 기득권 노조가 결탁해 공공성이라는 휘장을 둘러치고 벌이는 방만 경영 잔치판이다. 오죽하면 기간제 낙하산 기관장이 노조위원장 눈치를 보면서 인사권은 이미 노조에 넘어갔고, 노동이사제가 실시되면 경영권마저 노조가 장악하게 된다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공공기관 개혁의 핵심은 노동개혁

경영혁신 실종과 통제장치 결여로 공공기관의 공직윤리는 마비되고, 기성세대의 청년세대 착취로 청년 일자리는 줄어들고 국민 부담은 쌓여만 간다. 대통령의 성공조건을 제시한 동아시아연구원의 2017년 '지속 가능한 공공기관 개혁'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제언하였다. 

‘보여주기식’ 대책보다는 방만 경영의 실태를 개선하라. 공공기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게 하라. 경영평가는 경영평가의 취지에 부합하게 실시하라. 공공기관 지정제도의 투명성을 보장하라. 공공기관 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하라.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의 전문성을 강화하라. 공공기관 취업 선호도를 낮춰라. 지역인재를 육성하고 산학연 클러스터를 활성화하라.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된 것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공직 부패와 방만 경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집권하던 다음 정부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직업윤리가 바로 서지 않으니까 민간부문에서도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리더십은 찾아보기 어렵다. 고용세습은 비판하면서 경영권 승계는 당연시하고, 직원 연봉은 삭감하면서 경영진은 억대 성과급과 퇴직금을 챙긴다. 

연봉 차이가 무려 100배 이상 나는 곳도 있다. 배당금이나 스톡옵션도 아니고 임금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근거를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정보기술(IT) 대기업에서 시작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성과급 불만이 제조업으로 확산되는 것도 성과와 괴리된 임금체계와 경영진의 솔선수범 부재 탓도 크다. 성과연봉제를 폐지하면서 직무급제 한다더니 감감무소식인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도 임금체계와 성과평가체계 개편과 같은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LH 사태는 공공기관이 노동개혁의 첫 번째 타깃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노조가 점령한 공공기관에 방만 경영의 깃발이 나부끼고, 지원금, 위로금, 기본소득 등 달콤한 유혹이 넘쳐나는 시대, 포퓰리즘 정치는 빚내서 돈을 살포하는 것을 감히 정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세금청구서는 이미 문 앞에 도착해 있다. 입에는 쓰지만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을 공공기관 노동개혁이라는 약과 가짜 공공성과 포용성 상표를 부착한 달콤한 독 사과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깨어 있는 시민의 안목과 행동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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