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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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문제다

2020~2021년 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코로나19 장기화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지구 온난화가 부른 제트기류가 남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청년들의 취업 문이 좁아지고 부모들의 일자리마저 불안해서만도 아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비전과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터널의 끝이 가까웠다는 공언(空言)에 지친 사람들은 ‘희망이 보이는 자리’를 스스로 찾아 나섰다.

하지만 코로나 권력의 정치공학적 집행과 ‘저들 탓이오’가 반복되는 사이에 사회적 연대는 스러지고 불공정에 대한 분노와 반목이 빈자리를 채운다. 언제부터인가 집회에 모인 단체와 사람들이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로 바뀌고 있다. 위기 앞에서 흩어지지 않고 힘을 합치게 만드는 것이 진짜 리더십이고 국가의 역량인데, 정치가 갈라놓은 국민은 진영의 동굴에 갇혀 있다.

유감스럽게도 몹시 추운 겨울이 될 것이라는 필자의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속수무책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한파는 이미 시작되었다. 공식 실업자에 일시휴직자, 일거리 없어서 쉰 사람, 아예 구직을 단념한 사람, 예산 떨어지면 일자리도 떨어져 나갈 공공일자리사업 참여자 등을 더하면 5백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사실상 실업 또는 준실업상태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일부 업종의 호조와 빚내서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 통계 분식을 지우고 나면 경제정책의 실패와 노동정책의 오류로 악화된 기저 질환에 코로나 쇼크가 더해진 노동현장의 모습은 벼랑 끝 상황과 같다.

현 정부 들어서 증가세로 돌아선 노조 조직률은 2019년 말 기준 12.5%(민간부문 10.0%, 공공부문 70.5%, 공무원 86.2%)로 1998년(12.6%) 이후 2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노동조합의 영향력 증가와 더불어 사회적 책임도 그만큼 커졌다.

헌데 코로나19 위기극복 노사정 합의안 폐기를 주도했던 제1노총 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거침없는 투쟁’과 ‘11월 진짜 총파업’이다. 투쟁과 협상 병행을 표방해온 제2노총의 의제설정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11년 만에 다시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차에 KDB산업은행이 자금지원 조건으로 내건 ‘흑자 때까지 쟁의금지와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을 제1노조가 수용해도 다른 노조세력들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노조의 권력화와 적자기업의 임금 파업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경제계는 부당노동행위 노이로제에 형사처벌 위협을 동반한 각종 규제입법 때문에 기업활동을 할 수 없다며 아우성이다. 경제단체들의 신년사에서 미래지향적 비전과 도전은 사라졌다.

일부 지표에 가려진 경제와 일터에 위험신호가 켜진 지 오래지만, 정부의 반응은 ‘필요하면 추가 대책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고용회복의 모멘텀 확보’를 위해 내놓은 고용대책은 단기 공공 일자리이고, 민간의 고용회복 동력확보책으로 제시한 규제혁신은 ‘공정경제(기업규제) 3법’으로 식언(食言)이 되어 버렸다.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정책 패턴이 반복된다. 정치권은 한술 더 떠서 무과실책임 형사처벌의 위헌 논란은 둘째 치고 중대재해의 개념이 무엇인지, 주무부처가 어디인지조차 모호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재개정 지적이 나오는 법을 만들어 놓고 한 짐 덜었다는 표정이다.

 

분노와 공포, 적대와 투쟁의 노사문화

수치로만 보면 현 정부 들어서 노사관계는 안정 기조를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월 9일 발표한 ‘2019년 노사관계 통계 분석결과’에 따르면, 2019년 노사분규 건수는 141건으로 2018년 134건 대비 5.2% 증가했지만 근로손실일수는 40만 2천일로 2018년 55만 2천일 대비 27.2% 감소했다.

이는 최근 20년간 집계 중 가장 낮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노사관계가 생산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로 발전한 것일까? 우선 2019년 근로손실일수가 준 것에는 현대자동차 무분규 임단협 타결의 영향이 컸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 악화로 파업 동력이 약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부의 이른바 친노조정책이 노조의 파업투쟁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문제는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 감소가 노사관계 합리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입법이나 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되레 심해지고 있다. 특히 개별 노동문제에 정부와 정치권이 개입할수록 자율과 책임을 기본으로 하는 협약자치의 노사관계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최근 이루어진 조치들만 봐도 그렇다. 해고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 합법화,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제한 폐지, 공무원과 교원 노조 확대, 공기업 경영이사회에 노조 참여, 노동재해 대처입법 등의 공통점은 노사 간의 숙의와 합의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국가 헤게모니에 의해 강행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정책과 제도이지만 그 이면에는 적대와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감염병 대확산이 포퓰리즘 대유행으로 변이하면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데, 희망이 아니라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선거의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다. 노사관계의 정치화도 심화될 것이다.

정책과 제도를 문화현상으로 보는 문화론적 접근에 따르면 문화는 행위자들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구성원들이 당연한 규범으로 내재화한 문화는 행위자의 정체성, 소속감, 현실규정, 공유의미를 만들어주거나 사회적으로 구성해주어 행위자의 선호에 영향을 준다.

제도적 맥락에서 행위자는 어떤 행동이 자신의 효용을 증대시켜 줄 것인가를 계산하기보다는, 내가 누구이며 이 상황에서 무엇이 나에게 적합한 행동인지를 자문한다는 것이다. 구성원의 행동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고 상황적이며, 개인의 선호는 상이한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박종민 저, 「정책과 제도의 문화적 분석」).

많은 기업에서 기업문화 부서를 두고 있지만, 노사관계를 문화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이를 경영전략과 일체화하는 단계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노사관계 안정화를 넘어서 견고하면서도 유연한 노사문화 구축으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노사관계가 원만했던 기업도 이내 대결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통상임금 소송 사태가 보여주었다.

복수노조 간 경쟁이 치열한 한국 노동운동의 키워드는 여전히 ‘투쟁’이다. 분노와 공포의 그림자가 한국 노사관계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투쟁이 지배하는 문화에서 대화와 타협은 곧 야합으로 낙인 찍힌다.

계급투쟁론 관점에서 보면 경제위기는 노사 공동의 위기가 아니라 노동과 대척점에 있는 자본의 위기이며, 따라서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위기는 곧 기회일 수 있기 때문에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협력이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으며, 사회적 대화기구는 자본의 노동통제기구에 불과한 것이다(임무송, “한국의 사회적 대화와 노사정 합의는 왜 실패하는가?”).

이와 같은 노동인식과 노사문화를 극복하지 않으면 노사관계 개혁은 요원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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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환경 인공지능(ambient AI) 시대의 노사관계와 공존의 조건

중국경제전문가 안유화 교수가 알려주는 투자의 비법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투자하는 것과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기처럼 우리 생활 속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공지능(ambient AI)이다. AI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나에게 맞추어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추천해준다. AI를 장착한 로봇은 이미 노동의 주체가 되고 있다.

한 세대가 지나면 노조 조직률은 반 토막이 나고, 사용자의 교섭 파트너는 노조위원장이 아니라 AI 로봇 오퍼레이터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 와 있는 미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힘과 지혜를 모으지는 못할망정 노사가 으르렁거리며 상호 적대의 깃발을 휘날릴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일상화된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인성, 감성을 가진 문화의 주체, 바로 인간(人間) 아닐까.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황규희 선임연구위원팀은 2017년 1월 ‘지능정보기술 확산과 숙련수요의 변화' 연구를 통해 사회적 감수성(social perceptiveness), 설득하기(persuasion), 협상하기(negotiation), 협력하기(coordination) 등과 같이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요하는 사회적 소통의 숙련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사회적 소통, 바로 한국 노사관계와 노사문화가 자리해야 할 지점이다.

경직된 노사문화를 바꾸려면 우선 노사관계의 주체들의 노동과 경제에 대한 앎, 생각, 그리고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그 출발은 만남과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노사는 심각한 소통 결핍증에 빠져 있다.

일찍이 노사관계시스템 이론을 제시한 하버드대의 던롭(Dunlop)은 노사관계는 노·사·정 3주체로 구성되어 ‘공통의 규칙과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는 기술, 권력, 시장환경의 상호작용 시스템이라고 설파하였다. 노사관계가 파탄에 이르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같은 세상에서 공존하는 파트너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타도해야 할 적과 함께 시스템을 구성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해 다보스포럼에서도 강조된 바 있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경영인들에게 묻고 있다. 기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요즘 대세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보다 오너 경영인들이 노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기업문화의 혁신에 솔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노동조합도 자기 일자리를 파괴하는 투사(militant fighters)가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정책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정부도 노사관계를 제대로 공부하고 경험한 전문인력이 태부족하다. 공무원들이 노사 등 이해관계자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세종청사가 갈라파고스를 닮아가면 정책은 현장과 괴리되고 국민의 삶이 힘들어진다.

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 증원보다 시급한 것이 고용서비스와 노동위원회의 전문인력 축적이다. 정치권도 정책조직과 인력을 늘리고, 국회 상임위원회도 인적 구성을 다양화해 공청회와 연구모임을 상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대학, 학회, 고용노동연수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발전재단 등이 연결된 네트워크, 노·사·정, 학계, 정치인이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며 소통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이 만들어져야 한다. 노사 자치는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춘 사람과 시스템 구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국제경쟁이 심화될 때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해외 현장견학이 활발했던 때가 있었다. 작위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의 성공과 실패를 현장에서 함께 보면서 한국 경제와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다지는데 기여한 바도 있었다.

지금은 글로벌 초우량기업도 기업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한 방에 훅 가는 시대다. ESG경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사람중심, 노동존중 다 좋은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만나서 함께 길을 찾고 타협하며 만들어야지 우격다짐으로 될 일이 아니다.

기업이 없어지면 기업의 구성원도 사라지고, 노동기준도 노사관계도 존립할 근거가 없어지는 것은 자명한 상식이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사관계를 바꾸려면 지금부터 꾸준히 사람과 문화에 투자해야 한다. 만나라. 소통하라. 그러면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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