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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100만 명 고용증발은 예고된 참사

실업자 157만 명, 그냥 쉰 사람 271만 5,000명, 구직단념자 77만 5,000명, 취업자 수 98만 2,000명 감소. 1월 고용동향이 발표되자 서울과 부산 선거를 앞둔 청와대 정부가 바빠졌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역대급 고용위기라고 진단하며 특단의 대책 마련을 지시하고, 여당과 정부는 즉각 4차 재난지원금 추경에 일자리 예산을 ‘충분히’ 포함시키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세종청사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들은 고용지표 개선 아이디어 짜내기에 총력전이다.

고용참사의 원인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진지한 성찰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지도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 oblige)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과 추경을 외치는 소리만 들린다. 자원배분 권력자들의 인식이 이러하니 1월 고용참사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단의 대책 각오는 비장하지만 정책노선을 바꾸지 않는 한 묘책은 없다.

빚내서 추경하고 세금 투입해 만드는 단기 공공일자리가 당초 예정했던 90만 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인천공항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절차적 공정성을 무시하면서까지 비정규직 제로를 만들겠다는 정부가 급기야 단기 알바를 뽑아도 임금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100만 일자리 증발이 과연 코로나19 때문일까? 나랏빚 증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특단의 대책이 세금 투입해서 90만 개 플러스 알파의 ‘공공 알바’ 늘려 일자리 통계를 분식하는 것이라면 고질병만 키울 뿐이다. 재정지원 단기일자리는 이내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1월 고용통계가 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기본소득, 재난지원금, 손실보상금 등 천문학적 규모의 재원을 요구하는 사업이 효과성 검증도 없이 마구 추진된다. 견제와 협력이 실종된 국회에서 여당의 입법질주는 거침이 없다.

곳간의 열쇠를 쥐었으니 재원조달은 걱정하지 말라는 투여서 곳간이 비면 종이돈을 찍어내라고 할 태세다. 정치권발 재정중독은 시장, 기업, 국민 개개인에게 소리 없이 퍼져 나간다. 고용참사를 정책실패 반성이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돈 풀기 명분으로 삼는 역발상이 놀랍다. 고용정책마저 포퓰리즘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파수꾼은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공무원들을 이끄는 전현직 총리가 대놓고 ‘대한민국이 너희들의 나라인줄 아느냐’며 돈 풀기에 앞장서라고 다그치는 마당이니 적폐청산의 칼춤에 잘려나간 동료 선배를 외면하며 비에 젖은 솔잎처럼 엎드린 직업관료들에게 소신행정과 책임윤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상황, 원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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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고용악화의 직접적 원인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계절적 요인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 국민 백신 접종이 끝나고 생활이 정상화되면 고용문제가 저절로 풀릴까?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한국경제는 기저 질환에 걸리고 고용지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 들어서 경제와 고용이 나빠진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잘못된 상황 인식이다. 문제를 문제로 보려고 하지 않는 인식의 오류다. 선택적 정의와 무오류의 확증편향은 알고도 행하는 의도성이 있다는 점에서 ‘뭣이 중한지’ 모르는 무능보다 심각하다. 좋은 것은 ‘우리’ 덕분이고, 나쁜 것은 지난 과거 탓, 국제환경 탓, 코로나19 탓, 1월 고용참사도 폭설과 강풍 탓이다. 잘못된 인식은 진단의 오류, 처방의 실패를 부른다.

경제성장률과 고용률 동반 하락, 대·중·소기업 간 고용 양극화, 일자리의 질 악화, 빈부격차 확대, 취업자 고령화, 비경제활동인구 급증 등은 코로나19나 계절적 요인의 영향으로만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1월 고용동향은 고용유지 지원금 특례가 끝난 중소기업과 재정지원일자리를 걷어낸 한국 경제의 민낯이 드러났을 뿐이다.

둘째, 정책실패와 반(反)고용 정책이다. 처벌만능주의, 민간을 억압하고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규제는 고용을 줄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로봇 사용률은 이미 세계 최고이다. 경제활동의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자본 대 노동, 대기업 대 중소기업의 프레임을 가지고 기업활동을 규제하자, 보호하고자 했던 취약부문의 일자리가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획일적으로 못하게 하는 데 주력하면 고용이 늘겠는가?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규제와 중소기업의 근로시간 규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성과산출은 외면하고 요소투입만 좇는 ‘두더지잡기’식 정책은 비용은 많이 들어가지만 효율은 낮다. 경쟁절차를 건너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혁신을 누르고 세대 간 불공정을 심화시키는 연공형 임금체계로의 회귀는 이 범주에 속한다.

한 언론의 분석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철도공사와 한국전력 등 36개 공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은 30% 이상 감소하고 퇴직자의 자회사 재취업은 2배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역대 정부에 비해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문가상승률은 가장 낮았음에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인상했던 2018~2019년 최저임금 사태는 무모한 도그마 정책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셋째, 경제원리의 실종과 정치게임의 지배이다. 이미 5차 시리즈가 예고된 국민 사기 진작용 재난지원금, 목적이 옳으면 방법은 위헌 소지가 있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중대재해처벌법, 선거 앞에서는 다 된다는 것을 보여준 가덕신공항특별법 등 포퓰리즘 경주에는 여야 구분이 없다.

의원입법 고용영향평가를 법제화하면 좀 나아질까?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남발되는 것을 보면 현재 있는 법도 안 지키는데 새 법을 만든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되면서 처벌만 가중하는 법 체계상의 혼란, 고의 및 인과관계의 요건 무시, 책임주의 원칙의 위배, 명확성 원칙 또는 포괄위임입법 금지원칙 위배 등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결국 통과되었다.

 

시장의 보복

반고용정책에 대한 시장의 반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취업자 수는 줄고, 비정규직은 증가하였다. 일손이 필요해도 사람 대신 인공지능(AI) 로봇을 쓴다. 코로나19가 앞당긴 비대면 사회는 기업별로 잉여인력 규모를 확인시켜 주었고, 디지털기술과 AI의 유용성을 실감하게 하였다. 기업활동에 대한 처벌규정과 ‘노동조합 존중’의 고용규제가 강화될수록 탈고용 추세는 가속화될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월 16일 발표한 ‘2020년 벤처기업 및 벤처 투자받은 기업의 일자리동향’에 따르면 지난 해 말 기준 벤처기업 일자리는 72만 4,138명으로 한해 전보다 5만 2,905명 늘었다. 이는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의 상시근로자 수(68만 9,000명)보다 많은 규모이다. 벤처·스타트업이 ‘일자리 버팀목’ 역할을 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쿠팡 잠실 사옥. (사진= 쿠팡)
쿠팡 잠실 사옥. (사진= 쿠팡)

그러나 쿠팡은 3,000고지를 넘어선 국내증시 대신 뉴욕증시 상장을 선택하였다. 쿠팡의 뒤를 따를 스타트업의 행렬은 이어질 것이다. 벤처기업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공동으로 실시해 2월 15일 발표한 ‘기업규제 강화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230개 응답 기업 중 37.3%가 국내 고용 축소 검토, 응답 대기업의 50%는 국내 투자 축소 검토, 특히 고용 창출력이 큰 벤처기업의 24%는 사업장 해외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정부의 반고용정책이 기업들로 하여금 고용을 줄이고 해외로 떠날 궁리를 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치는 정책실패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치게임에 빠져서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을 계속 외면하면 고용사정은 더 나빠지고 장기화될 수 있다. 경제관계와 노동관계의 형사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시장의 반격도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일자리 우선 ‘상호의무계약’ - 고용이 복지이고 노동개혁은 일자리다

일할 의욕과 기업가정신의 실종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고,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다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 때이다. 각 정당의 이름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모든 ‘국민의 힘’을 모아서 보편적 ‘정의’가 충만한 ‘민주’공화국을 만들어 ‘더불어’ 잘 사는 새로운 미래, 그 기본은 모든 국민이 일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후대에 파산국가를 물려주지 않으려면 복지가 고용과 만나야 한다. 실업, 빈곤, 질병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실질적 자유는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직’과 관련된 ‘업’을 가질 때 가능하다. 고용이 복지다. 지속가능성이 없는 선심성 ‘복지’가 아니라 스스로 일하며 생활하는 ‘고용복지’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시대 고용개혁은 ‘민간주도’, ‘일자리 우선’, ‘공정과 효율의 조화’, ‘혁신을 통한 지속가능성’을 지향한다. 신고용복지의 핵심은 국가는 국민에게 안전망을 제공하고 국민은 취업 노력을 다하는 ‘상호의무계약(mutual obligation contract)’이다.

전국민고용보험, 한국형 실업부조라고 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 내 삶을 책임지는 나라에서 주는 기본소득, 국민생활기준, 고용보장제 다 좋다고 치자. 반나절만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가서 앉아 있어 보라.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기초를 다지고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열었던 고용서비스는 오간데 없다. 필자가 동료들과 설계했던 취업성공패키지와 청년내일채움공제는 보조금(subsidy) 지급사업으로 변질되고 고용서비스는 실종되었다.

센터는 밀려드는 민원인들에게 현금 나눠주기에 급급하여 전문상담은 엄두도 못 낸다. 개인 입장에서도 최저임금과 실업급여 사이에 별 차이가 없고, 구직활동은 형식적으로 하면 되고, 실업급여는 무한 반복 받아도 제재가 없고, 일할 수 있지만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게 해준다면 누가 힘들게 취업을 하려고 할까?

이 세상에 공짜는 없고. 누군가 비용을 치러야 하는 법이다. 베네수엘라, 그리스 등 반면교사 사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기왕 나랏돈을 쓰려면 제대로 써야 한다. 자영업자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게 일회성 보상금이나 지원금을 뿌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용보험 특례소급가입을 지원하는 게 낫다. 상호의무계약과 고용서비스가 작동된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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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증가를 보고 싶다면 벤처·스타트업 고용특례를 인정하고, 경영활동 관련 형사처벌조항을 일제 정리해보라. 300만 원짜리 직업훈련 프리패스를 전국민에게 지급해보라. 고기를 나눠주지 말고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라고 하지 않던가. 복지가 자립의 디딤돌이 아니라 의존의 함정이 되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근로윤리와 기업가정신이 무너지면 백약이 무효하다.  고용복지서비스개혁이 노동개혁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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