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파고든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바이러스는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파고든다.(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신종 감염병의 역습


인류의 역사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감염병은 끊이지 않았다.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 박멸을 선언하기 전까지 천연두는 최대 치사율 90%의 맹위를 떨쳤고, 페스트는 중세 유럽과 아시아를 초토화시켰다.

2002년 사스(SARS)와 2012~2015년 메르스(MERS)도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2019년 말에는 중국 내몽고에서 페스트가 다시 발발해 검은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에 있음을 경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결핵환자가 다시 증가추세에 있고 슈퍼박테리아도 출현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신종 감염병의 대역습이 시작됐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실감하지 못했다. 불과 몇 달 만에 중국에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대한민국을 멈춰 세운 바이러스의 제왕, 신종 코로나가 엄습하기 전까지는.

2019년 12월 12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41명의 폐렴환자가 집단 발생한 지 한 달여 뒤인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번째 환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다시 한 달여가 지난 2월 23일 한국 정부는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가장 높은 수준인 '심각' 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학교와 체육관이 문을 닫고, 확진자가 발생한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생산라인을 세웠다. 한국 천주교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를 중단하는 등 종교계도 집단감염 방지에 협조하고, 국민들도 질서정연하게 정부의 방침을 준수하며 개인위생관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 를 실천하고, 의료계도 합동대응팀을 꾸려 대응전략을 제안 하고 최전방 대구로 달려가 헌신적으로 힘을 보탰다.

사태 초기 우왕좌왕하던 정부도 전문가들의 제안을 반영해 치료체계를 변경하는 등 대응태세를 정비했고, 총선을 앞둔 정치권도 추경예산과 코로나 3법 입법 등 지원에 힘을 모았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의 지도력 부재와 지역사회 감염 확산에 겁먹은 세계 각국은 한국인에 대한 빗장을 걸어 잠갔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봉쇄 격리돼도 국제적 연대와 외교는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 5장 사려고 서너 시간 줄을 서는 모습은 우리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국가적 위기 대응에 시장도 실패하고, 정부도 실패한 것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숱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우리는 이번 위기도 결국에는 이겨낼 것이다. 문제는 피해 최소화와 실패의 반복 방지. 하지만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단기전으로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인간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하며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이 전쟁에서 싸워 이기려면 우선 적과 나를 잘 알아야 한다.


코로나19의 특징과 정책적 시사점


미생물학백과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생명체의 특징과 무생물체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증식, 유전적 돌연변이, 진화가 생명체로서의 특징이라면, 숙주 감염 이후에만 증식하는 것은 무생물체로서의 특징이다. 즉, 단독으로 증식할 수 없고, 감염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단백질과 핵산의 결정체일 뿐이며, 물질대사를 할 수 없어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2,600여 종이 알려져 있는데, 세균, 식물, 동물 등 모든 종류의 생명체에 감염해 기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라고 한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모두 입자 표면에 곤봉 모형의 돌출부가 있는 것이 왕관을 연상시켜 코로나라고 명명됐다고 하는데, 왕관바이러스라는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사회 정책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코로나19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바이러스의 공통 속성으로, 세균과 달리 단독으로 증식할 수 없어 숙주에 기생 또는 공생하며 복제한다. 따라서 사람을 감염시키는 코로나19를 통제(control)하려면 숙주인 인간을 통제해야 하는데, 민주국가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는 민주적 정당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간 숙주와는 공생하지만 인간 숙주는 기생하며 목숨까지 위협하는데, 고령자, 기저질환자, 임산부 등 고위험군과 사회적 약자가 더욱 위험하다. 기본적인 방역체계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건의료 및 고용 안전망이 강화돼야 한다.

둘째, 전파력과 감염력이 매우 높다. 중국 난카이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코로나19의 감염력이 사스보다 최대 1,000배 빠르다고 한다. '증상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이미 감염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매우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다. 특히 인구밀집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의료•복지 등 설내 집단감염과 지역사회 감염이 중첩돼 기하급수적으로 감염자가 증가할 우려가 크다. 역대급 감염 확산을 막으려면 신속하고 과감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셋째, 뛰어난 변이능력이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로 이어지듯이 야생의 영역을 침범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탐욕이 계속되는 한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도 계속될 것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조기발견과 조기대응이 핵심이고, 국가적 감시체계와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종합대책과 장기투자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결국은 국가경영과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2003년 사스 때는 음압격리 병상이 없었지만 현재 어느 정도 집중치료 시설을 갖추게 된 것은 경험을 통해 진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완벽한 예방백신과 치료제가 없다. 1987년 3월, 미국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HIV)을 공격하는 AZT라는 약이 최초로 허가를 받은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에이즈(AIDS) 치료 약은 개발되지 못했다. 감염병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10년, 1조 원 이상의 돈과 시간을 쏟아 부어도 힘든데, 약이 개발돼어도 바이러스는 이미 새로운 종으로 변이하니 민간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국가적 투자와 국제협력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국민 개개인의 위생관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 지역사회 확산방지와 고위험군 피해 최소화 전략 등 다각적인 접근과 이에 대한 범국민적 협조와 책임 있는 행동이 매우 중요하다.

다섯째, 바이러스의 확산은 공포라는 사회적 바이러스를 부른다. 정부와 최고정책결정권자의 리더십에 대한 불신에 정치적 분열과 책임 전가가 더해지면 ‘두려움의 감정이 강박적으로 특정대상에 결부돼 행동을 저해하는 이상 반응’, 즉 포비아(phobia)가 특정집단에 대한 적대와 비난, 공격의 행태로 나타난다. 사회 전체가 무규범의 아노미(anomie)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면 믿음과 사랑과 연대의 공동체의식이라는 사회적 백신이 필요하다.

여섯째, 경제적 충격은 치명적이고,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지속적이다. 글로벌 가치 사슬로 얽히고설킨 초 연결사회에서 연결과 이동의 단절은 경제 시스템의 정지를 의미한다. 부품공급 중단이나 협력업체 확진자 발생이 바로 원청사의 생산 중단으로 이어지고, 구내식당 협력업체 직원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 공장 전체가 일시적으로 멈춰 선다.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가시화됐다. 음식, 숙박, 유통, 여행 등 서비스업과 자영업이 몰락의 위기에 처하고, 재정으로 떠받치던 일자리도 무너지고 있다. 노동규제 강화에 코로나19 리스크가 더해져 사람 대신 감염병에 걸릴 우려가 없는 인공지능(AI) 로봇 선호와 규제 탈출,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승리를 넘어 시스템 혁신과 도약의 기회로 만들려면


신종 감염병은 독감 바이러스들의 유전자가 혼합돼 새로이 나타나는 질병(예: 사스), 다른 인종이나 다른 지역으로 퍼져서 감염되는 질병(예: 메르스, 라임병), 과거에도 있었던 질병이지만 원인 미생물이 다시 유행하는 질병(예: 결핵)을 모두 포괄하는데, 세 가지 모두 현대 사회에서는 예방 및 통제가 쉽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어떤 바이러스보다 영민한 바이러스'로, '상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새로운 적'이다. 하지만 그 어떤 치명적인 감염병도 결국 인류를 이기지는 못했고, 우리는 코로나19도 극복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종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승리할 수 있는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최우선과제는 지역사회 확산을 억제하고 고위험군의 건강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학계는 심각하고 되돌릴 수 없는 위협의 가능성을 막으려면 ‘사전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입각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정부도 학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중증도 분류와 치료체계변경 등 대응조치를 강화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학계 등과 힘을 합쳐 총력대응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국민들의 생활습관과 위기를 대하는 자세도 바뀌고 있다. 개인위생관리 생활화와 식사•음주문화 개선, 가족•이웃과의 유대 강화, 자원봉사활동 등 사회적 책임과 연대의 실천이 건강한 사회문화로 자리 잡도록 언론, 시민사회단체가 적극 권장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재난 대응 매뉴얼 정비와 안전보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노동조합 등 기업 내부 구성원과 협력업체 및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위기대응체제를 갖춰야 한다. 노사단체는 신뢰와 연대의 ‘사회적 백신’ 제조와 일자리 지키기에 온 힘을 모아야 한다.

국가적 위기는 노사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나 상생의 미래로 전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적대적 대립과 자해성 투쟁은 일자리 파괴와 노사 공멸을 재촉할 뿐이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 공동선언과 사회적 책임의 실천은 우리 일터와 일자리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백신이자 치료 약이다.

코로나19 사태는 현행 법제와 정부 시스템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세월호에 이어 코로나19에서도 ‘청와대 정부’의 무능과 기능부전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가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 되면 국가에 미래가 없게 된다.

집권세력부터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국가 운영의 원리를 ‘통치(government)에서 협치(governance)로’ 전환해야 한다. 지난 몇 달간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정보는 투명하지 못했고, 대응은 비과학적이었으며 늘 한 박자 늦었다. 민주적 책임성을 중시하는 정치가의 역할과 과학적 합리성과 능률성을 기초로 한 정책전문가의 역할은 구분되고(분업), 또한 긴밀하게 연계돼야 한다(협업).

정부 차원의 조직개편과 인적, 제도적 재정비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방역물품 생산, 검사와 치료, 행정적 지원, 택배서비스 등 국민생명 수호와 경제의 생명선 유지의 최일선에서 밤낮없이 고군분투하는 의료인, 노동자, 일선공무원 등 우리의 영웅적 전사들은 노동의 가치와 직업윤리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합리적인 보상과 격려가 있어야 하겠다.

감염병 사태가 장기화되면 타격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기업은 고용을 유지하기 어렵고, 저소득 취약계층은 생계유지도 버겁다. 고용실업대책 차원에서 위기대응제도를 재검토하고, 재난상황에서도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소득보장과 재취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재택근무, 유연근로, 원격진료, 대면서비스 최소화 등의 확산은 현행 법제의 획일적 규제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지를 보여줬다. 노사 자율의 영역에 국가가 비현실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규제가 작동되지 않거나 고용감소 등 부작용을 낳게 된다.

차제에 노동기준과 노사관계를 유연하고 역동적인 노사 자율체제로 재편해야 한다. 시장과 경제주체들의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재정투입 확대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고, 재정 건전성 악화의 부담만 누적된다. 규제개혁과 정치적 불확실성의 제거 등 경제활동 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사상 최악이라고 비판받는 20대 국회는 임기가 끝나기 전, 국회 계류법안을 처리하는 것이 도리다.

컴퓨터도 바이러스 치료가 안 되면 포맷(format)하고 리셋(reset) 한다. 경제활동과 노동규제, 정치체제 등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세팅하지 않으면 정치보복 과거 청산의 악순환이라는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적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기민하게 변이하면서 빠르게 확산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 역시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법제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때마침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는 과거에 대한 심판과 미래에 대한 선택이다. 입법권력을 달라며 이런저런 대책을 제시하지만, 올바른 처방을 하려면 진단과 분석이 정확해야 한다.

숱한 재난을 겪고서도 아직까지 문제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제대로 밝힌 백서를 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기우이길 바란다. 코로나19 사태를 당하고 나서도 정치가 과학을 왜곡시키고 힘없는 국민만 고통을 당하는 사회적 재난이 반복된다면 역사의 심판정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빈틈을 찾을 뿐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임무송 금강대학교 공공적책학부 교수
임무송 금강대학교 공공정책학부 교수

임무송 금강대학교 공공정책학부 교수(전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

1988년 제32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조정담당), 경기지역인적자원개발 위원회 선임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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