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 예방 위한 투자 확대로 경영 리스크 줄이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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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다가온 ‘중대재해처벌법’

역대급 폭염 만큼이나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 논란이 뜨겁다. 특히, 하도급업체 근로자가 다쳐도 원청 경영책임자가 처벌될 수 있게 됨에 따라 경영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이하 ‘경영책임자 등’이라 함)을 처벌함으로써 근로자를 포함한 종사자와 일반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기업의 조직 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이다.

‘중대산업재해’란 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또는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인한 직업성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중대시민재해’란 특정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 중 중대산업재해를 제외하고 사망자가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또는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기업처벌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상시근로자 5인 이상의 사업장에 적용한다.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하여 산업재해로 인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처벌을 받으면 최소한 1년 이상은 징역을 살아야 한다.

같은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같은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할 뿐만 아니라 법인이나 기관도 각각 50억 원 이하의 벌금형과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병과한다. 경영책임자 등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해당 사업주나 법인에 중대재해로 인한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다.

이 법은 50명 이상인 사업장(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의 공사)은 2022년 1월 27일부터,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장(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공사)은 2024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도급, 용역, 위탁 등을 주었더라도 경영책임자 등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 하도급업체 근로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의무를 부과하고(법 제5조), 이를 어기면 무겁게 처벌한다.

이때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말하고,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지방공기업, 공공기관의 장도 여기에 해당된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경영책임자 등이 처벌을 면하려면 조치해야 할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는 ①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②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③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④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라고 규정하고, ①④의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에 위임하였다.

그런데 정부가 2021년 7월 12일 입법 예고한 시행령 제정안을 보면 ‘충실하게’, ‘적정한 예산’, ‘적정한 비용과 수행기간’, ‘적정규모 배치’, ’충분한 상태' 등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전히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범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의무를 이행할 안전·보건 관계 법령이 무엇인지도 규정돼 있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해석상 난점은 시행령으로도 해소되지 못하고 앞으로 법정에서 많은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비록 이 법 제정 이전의 사건이라는 한계가 있으나 참고가 될만한 판례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원청 경영책임자 등의 책임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의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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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체제에서는 검사는 기소 단계에서 공사에 관여했던 기업의 경영책임자를 기소하지 않고, 법원도 원청 대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었다. 특히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경영책임자를 직접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의무규정이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2013년 1월 27일 S전자 반도체공장 화학물질 공급설비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협력업체 근로자가 재해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다량의 불산 기체가 나오는 상황에서 협력업체 소속 작업자들은 보호장비를 적절하게 착용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응 작업을 진행하였고, 설비가동 결정권이 있는 S전자 직원은 사고 발생 즉시 현장을 찾아 조치하지 않는 등 대응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하였다.

그 결과 현장 작업자 1명이 사망하고, 다른 작업자 4명은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은 화학물질 설비 관리를 맡은 이 회사 직원 3명과 실제 현장에서 유지·보수를 한 하도급업체에 대해서만 관리 책임을 인정하여 벌금형을 확정하였다.

재판부는 '화학물질과 관련한 안전보호구 구매, 시설 점검 관련 업무 관련 결재의 최종 승인자가 각각 부장급·팀장급에 그친다'는 점에서 임원인 A에게 죄가 될 정도의 책임이 없으며, 법인은 사법상의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을 뿐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범죄능력이 없고, 그 법인의 업무는 법인을 대표하는 자연인인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에 따른 대표행위에 의하여 실현될 수밖에 없는데, "A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이를 전제로 적용한 S사측의 책임 또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8.10.25. 선고 2016도11847 판결).

그런데 비슷한 내용의 H사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다소 달랐다. 2015년 4월 30일 경기도 이천의 H사 반도체 제조시설 건설공사에서 질식사고가 발생하였다. 당시 H사는 환경안전본부 이천설비기술실장 갑(甲)을 건설기획프로젝트팀 관리책임자이자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 선임하고, 공사 중 유기화합물 저감설비공사는 D사에 도급을 주었다.

그런데 공사 과정에서 D사는 사전에 설비 내부에 질소가스 등이 있는지 살펴보지 않고 근로자 2명을 투입하였고, 단열재 시공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갔던 근로자들은 질식사하였다.

재판과정에서 甲은 대기업의 고위 관리자가 하청업체 시공 현장의 안전보건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없었다며 ‘책임없음’을 주장하였다. 대기업의 하도급공사에 대한 의사결정구조나 보고체계상 수급인 사업주의 보건조치 위반 사실을 인식할 수 없었고, 따라서 구체적인 보건조치의무가 없거나 범죄의 고의가 부정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는 甲이 도급을 준 유기화학물 저감설비 설치 공사를 비롯한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총괄하고 수급인들 사이의 업무를 조율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건과 관련한 구체적인 지시까지 하였다고 인정하고, H사는 벌금 500만 원을, D사는 벌금 1,000만 원, 甲과 乙에 대해서는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21.3.11. 선고 2018도10353 판결).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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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기 전에는 원청사 경영책임자 등에 대하여 사망 사고 자체가 아니라 질식사고 예방을 위한 보건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것 등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제5조에 따르면 원청사가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을 준 시설, 장비, 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경우 경영책임자 등은 자기 근로자뿐만 아니라 도급, 용역, 위탁 사업자의 종사자에게도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할 의무를 진다.

법 제4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조치 의무의 내용 중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그 이행에 관한 조치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보면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시행령안 제5조 제2항은 “반기별 1회 이상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였는지를 점검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보고받을 것(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정한 기관에 점검 위탁 가능),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경우 해당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인력을 배치하고 예산을 추가로 편성하여 집행하도록 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라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에 필요한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지시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하도록 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한편,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대표적인 것이 산업안전보건법이다. 그렇다면 경영책임자가 사업 전반의 안전보건에 관한 관리상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담당자에게 지휘하고, 정기적으로 검토회의를 주재하였다면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인정될까?

시행령안만으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앞으로 정부가 제시하겠다고 하는 가이드라인이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처벌을 면할 구체적인 피난처를 알려줄지도 의문이다.

참고로 2020년 4월 29일 B사 남이천물류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하여 다수의 하청업체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제1심 법원은 도급인의 현장소장이자 안전보건총괄책임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도급인의 산업재해 예방 의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17조 제1항(비상구 설치 의무), 제19조(경보용 설비 또는 기구의 설치 의무), 제241조 제2항(화재 예방 조치), 제241조의2 제1항(화재감시자 배치 및 확성기 설치 의무)을 각 위반하였다고 인정하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020.12.29. 선고 2020고단802 판결).

 

해결되지 않은 불확실성과 앞으로의 과제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에 대하여 앞으로 법원이 범죄 구성요건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느 정도로 양형을 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기업과 경영자로서는 현재화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이다. 최고경영자(CEO)의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안전보건 책임자를 영입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수사실무상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뒤섞이고 중대재해 처벌의 해석 적용상 어려움으로 인하여 입법적 보완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광주 철거공사 참사를 계기로 처벌을 확대 강화하려는 입법 움직임도 있다. 결국에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다만,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배경과 취지를 깊이 인식하고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과 경영전략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최근 대세로 등장한 이해관계자의 경제학과 ESG 경영은 이윤과 성장으로 대표되는 물질주의의 퇴조,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인본(人本)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최고경영자부터 ‘하인리히 법칙’을 숙지하고 재해 예방을 위한 투자 확대에 나서면 그만큼 경영 리스크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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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투데이=편집부] news@startup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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