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생은 학생인가 근로자인가?

현장실습생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장실습생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복되는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2021년 10월 6일, 여수에서 잠수자격증도 없는 고등학생이 12킬로그램(kg) 납 벨트를 차고 물속으로 들어가 요트 바닥의 따개비를 제거하다 목숨을 잃었다. 현장실습을 나온 지 열흘 만이었다. 이번에도 정부는 급히 ‘전국 직업계고 현장실습 전수조사 및 관계부처 합동 지도·점검’에 나섰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과거에도 그랬듯이 오늘은 금세 잊히고 ‘사고-긴급점검-대책 발표’의 패턴은 반복될 것이다. 

2011년 12월, 자동차공장에서 장시간 근로를 하던 실습생이 뇌출혈로 사망했다. 2014년 1월에는 진천의 한 공장에서 상사의 폭행에 괴로워하던 실습생이 자살했다. 2017년 1월에는 전주 콜센터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여학생이 자살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생수공장에서 일하던 학생이 프레스에 끼어 사망했다. 

꽃다운 청춘이라 부르기도 어린 학생들의 현장실습이 사회로 나가는 통로가 아니라 죽음의 길이 되고 있다. 채 피지도 못하고 저버린 우리 아들딸들, 그리고 그들의 영정을 마주하고 울음조차 삼키며 절망하는 학생들에게 이 나라는 도대체 무엇을 약속할 수 있을까? 판에 박힌 대책을 논하기에 앞서 현장실습의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현장실습제도의 역사

‘현장실습의 명암’을 정리한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의 기사(2021.10.19 및 10.21)를 빌려 우리나라의 현장실습제도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산업체 현장실습은 산업역군을 육성하기 위해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에 의해 공식제도로 도입되었다. 

당시 공업고등학교의 실습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이론적 지식과 실기 수행능력의 통합, 현장 업무수행 능력 향상, 직장근무태도 습득, 전공 관련 산업체 탐색 등을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현장실습 프로그램 부족, 산재 사고 다발, 3D업종 인력난 해소책으로 오용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 12월 ‘제7차 고등학교 교육과정편성 운영지침’을 통해 실업계 고등학교의 전문교과 학습을 현장실습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이후 현장실습이 증가하였고, 그와 더불어 부작용도 더욱 커졌다. 

이에 2003년에는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은 규제하고, 현장실습 전담교사를 두고 실습시기와 운영을 다양화하는 개선방안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졸업 후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고 학생들까지 현장실습을 의무화함에 따라 저임금과 노동인권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2006년 5월에는 취업이 예정되어 있고 수업의 2/3 이상을 이수한 경우에만 현장실습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학교 자율화 정책으로 선회하여 현장실습도 정상화 방안 이전으로 회귀하였다. 

특히, 고졸 취업이 강조되면서 특성화고 취업률 목표가 2011년 25%에서 2012년 37%, 2013년 60%로 급격히 높아졌다. 취업률을 학교 지원금과 연동시키자 특성화고는 고육지책으로 전공과 무관한 업체의 질 낮은 일자리에 학생을 내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2011년 자동차공장에서 현장실습생의 뇌출혈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다. 2012년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노동관계법을 준수하도록 권고하는 개선대책이 발표되었고, 2013년에는 학생 안전과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현장실습 학생들의 죽음은 계속되었고, 박근혜 정부는 일학습 병행제를 실시하면서 학습근로자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를 강화하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 전면 폐지 계획을 발표하고 산업 중심에서 교육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예외적으로 실습 지도와 안전관리 등이 확보된 현장에는 학생 신분의 현장실습을 허용하고,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준수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현장실습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듯했다. 

그러나 취업이 어려워진다며 일선 학교와 학부모, 학생들이 반발하자 2018에는 안전이 확보된 경우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선정하여 학기 중에도 취업을 허용하였다. 2019년에는 선도기업 자격이 안 되는 기업들도 ‘참여기업’으로 현장실습을 허용하였다. 여수 사망사고도 5인 미만 참여기업에서 발생하였다.

이상에서 보는 것과 같이 현장실습은 교육을 명분으로 도입되었지만 실상은 일반 근로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불행한 사건, 사고가 계속되었다. 학생이라고 부르면서 근로자로 사용하였고, 그에 대한 처우는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장실습은 교육인가 취업인가? 현장실습생은 학생인가 근로자인가? 

 

법원은 노동법상 근로자성에 대해 실질을 봐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원은 노동법상 근로자성에 대해 실질을 봐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장실습생에 대한 판례와 행정해석

노동법상 근로자성에 대하여 법원은 그 명칭이나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졸업예정자인 실습생도 근로의 실질관계가 인정된다면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 

대법원은 이미 삽십 여 년 전에 ‘피해자가 고등학교 졸업예정자인 실습생이고 또 그 작업기간이 잠정적이라 할지라도 바로 이러한 사유만으로 그 사람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고 사업주와 실습생 사이의 채용에 관한 계약내용, 작업의 성질과 내용, 보수의 여부 등 그 근로의 실질관계에 의하여 근로기준법의 규정에 의한 사용종속관계가 있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실습생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86다카2920, 1987.06.09.).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취지의 판례가 잇따랐다. 비록 수련과정에 있다 할지라도 ‘전공의는 통상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므로 퇴직금의 적용대상’이 되며(대법원 91다27730, 1991.11.08.), ‘공중보건의로서 일반병원에 배치되어 업무에 관한 구체적 지시ㆍ지휘를 받으면서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지급받는 자는 근로자’이다(대법원 95다 28731, 1996.02.09.). 

‘정식취업을 위한 수습기간 중 일당제 대무운전기사로 근무한 자도 회사와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대법원 92다44695, 1994.01.11.). ‘산업연수생이 대상 업체의 사업장에서 실질적으로 대상 업체의 지시·감독을 받으면서 근로를 제공하고 수당 명목의 금품을 수령하여 왔다면 근로기준법 소정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대구지법 2005나17646, 2006.07.07.). 

다만, 정부지원인턴제사업의 제1·2차 인턴사원은 근로자로 볼 수 없고(근기 68207-312, 2000.02.03.), 「산업교육진흥법」에 의거 현장실습생으로 일한 고등학생은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근기 68207-1833, 2002.05.04.)는 행정해석이 있었다. 

 

현장실습, 그 목적과 성격부터 분명히 해야

불행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온 사회가 분노와 슬픔에 떠들썩하다가 이내 시간이 지나면 잊혀왔다. 원인은 치유되지 않고, 현상만을 뒤쫓아가는 대처방식에도 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번 여수 사고에서 드러난 현장실습의 문제점은 특성화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학교에서 일터로의 원활한 이동(School to Work)’이 강조되면서 현장실습, 인턴,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전문대와 4년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학습병행, 장기현장실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도입되었다. 

일학습병행의 경우 2020년 8월부터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참여자를 학습근로자라고 하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여타 유형의 현장실습생에 대해선 노동법적 보호가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다. 일학습병행의 경우에도 과연 현장에서 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실 현장실습을 교육과 취업 가운데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지는 이제까지 현장실습 정책이 오락가락한 데서 보듯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산업체와 학교, 학생 간에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한다. 실습생의 대다수가 배치되는 중소기업의 경우 비용 문제도 있고 교육프로그램이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에서는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에서는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에서는 실습생 산재사고가 자주 발생함에 따라 산재보험 특례규정에 의거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였다. 2021년 7월 6일부터는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교육부 고시)을 개정하여 상해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직무가 부여되는 ‘표준형’과 실습 중심의 ‘자율형’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였다. 자율형은 무급으로 운영할 수 있으나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표준형 참가자에게는 최저임금의 75%를 실습지원비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상시적 자금난과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작업에 저렴한 비용으로 투입할 일손이 절실하다. 인재육성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주문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어렵다. 스타트업인 경우에는 직원들 인건비조차도 부담스러운 경우가 태반이다. 노동법 비전문가인 직업계고 관리자·취업부장·3학년 담임교사·취업지원관에게 산업안전전담관 연수를 시켜서 현장점검에 투입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현장실습이 진정한 취업의 징검다리가 되도록 하려면 사회적 투자의 확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단기일자리사업 예산을 조정해서라도 현장실습 참여학생과 운영기업에게 적정한 보상과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특성화고를 취업률로 몰아세우는 것도 재고되어야 한다. 현장실습이 학생과 학부모가 선호하는 선택지가 되도록 만들어야지 의무로 강요돼서는 안 된다. 인권과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비전문가인 교사에게 부담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공인노무사나 산업안전보건전문기관 등과 협조하여 참여기업의 자율점검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일부 사업주의 무지와 몰지각한 행태는 응당 비판과 제재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후약방문식 분노와 처벌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현장실습은 취업으로 이어주는 교육이지 인력난 해소책이 아니어야 한다. 반복되는 죽음의 행렬을 멈춰 세우려면 현장실습에 대한 사회적 각성과 국가적 투자의 확대가 절실하다. 대선 주자들의 공약에서 희망의 빛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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