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고는 왜 반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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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타트업투데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2014년 세월호 참사, 2020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 등 대형 재해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에만 882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법원과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산재로 사망한 사람은 1만 1,766명, 총 재해자 수는 59만 559명이나 되었다. 한 매체에 따르면, 같은 기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건수는 5,114건이었지만, 벌금형이 3,176건, 집행유예가 728건이었고,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는 29건으로 산재 사망자 대비 0.2%, 기소 대비 0.5% 수준에 불과했다. 공공기관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2021년 6월 23일 CEO스코어 발표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370개 공공기관의 산재 사망자 수는 225명에 달했다.

다른 노동법에 비해 산업안전에 관한 법은 강력한 처벌조항을 두고 있지만 산재가 줄지 않고 있다. 기본적인 방호설비나 안전조치만 해도 예방할 수 있는 떨어짐, 끼임, 부딪힘 등과 같은 ‘재래형 산재’로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된다.

외주업체나 안전보건관리체제 구성 의무가 없는 소규모사업장은 더 취약하다. 대형사고 1건이 발생하기 전에 같은 요인으로 유사한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경미한 사고 이전에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사소한 증상들이 300건이나 있었다는 하인리히(H.W. Heinrich)의 ‘1:29:300법칙’이 말해주듯이 대형 재해는 한순간에 발생하지 않는다. 작은 사고가 누적되는데도 관리되지 않을 때 대형 재해로 이어진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망사고 발생 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어 2020년 1월 16일부로 시행되었다. 보호대상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배달종사자까지 확대하고 원청의 책임과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2020년 4월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비등해졌고, 결국 기업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중대재해법상 중대산업재해는 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같은 원인으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같은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한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대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 결함으로 인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같은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하거나, 같은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등을 취해야 한다.

제3자에게 도급·용역·위탁을 맡긴 경우에도 제3자의 사업장과 그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부상자나 질병자가 발생한 경우에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중대재해법은 고의·인과관계를 무시한 형사처벌 등 법체계상 많은 문제가 있다. 재해 감소 효과는 불분명한데도 과잉처벌을 가하고 있어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시행령까지 제정되었고, 50인 이상 사업장은 2022년 1월 27일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어 물길을 되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대기업들은 로펌의 법률자문을 받으며 발 빠르게 대비하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확실성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선은 최고경영자의 형사처벌 위험 방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으나, 처벌기준은 앞으로 많은 논란을 거치며 판례를 통해 구체화 될 것이다. 다만, 산재 예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구는 앞으로 더욱 강화되고 기업경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경영책임자들도 중대재해 처벌과는 별개로 안전배려의무 법리를 숙지하고 안전보건경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와 손해배상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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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에게는 안전배려의무가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용자에게는 근로자가 사업장에서 그의 생명·신체 및 건강 등의 안전을 확보하고 근로할 수 있도록 노력할 ‘안전배려의무’가 있다. 이는 근로관계의 기본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근로자의 성실의무에 대응하여 사용자가 당연히 부담하는 의무이다.

이는 근로자의 생명·신체 및 건강을 침해하지 않을 부작위의무와 생산시설의 위험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작위의무를 포함한다. 기업시설이나 작업도구의 안전은 물론 작업장의 오염 등으로부터의 보호, 근로자의 소유물이 도난·훼손당하는 것을 방지할 보관의무도 포함되며, 정리해고 시 해고회피노력의무나 설명·협의의무 등도 해당된다.

「산업안전보건법」 등은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를 구체화하여 여러 가지 근로보호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러한 규정을 사용자가 위반하면 근로자는 노무제공을 거부할 수 있고,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실무노동용어사전>, 중앙경제사). 요즘 이슈와 관련해서 사업자가 유의해야 할 몇 가지 유형에 대한 판례를 살펴보자.

 

근로자의 과로에 따른 사고(대법원 2000.5.15. 선고 99다47129 판결)

사용자가 근로자로 하여금 주·야간으로 일을 하게 하여 과로와 수면부족 상태를 초래하고 그러한 상태에서 장거리운전까지 하게 함으로써 교통사고를 일으켜 상해를 입게 한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사용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서 피용자의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를 진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가해자의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에도 가해자가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시하였다.

 

파견근로자의 금형사출기 압착 사고(대법원 2013.11.28. 선고 2011다60247 판결)

자동차용 부품 제조·판매업체인 P사는 근로자파견업체인 S사와의 근로자파견계약에 따라 근로자를 파견받아 일을 시켰다. 파견근로자 A는 P사가 제공하는 교통수단으로 출근해서 P사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그가 제공하는 설비와 재료 등으로 사출작업을 하다가, 근무 6일째에 사출기 안에 손을 집어넣어 이물질을 제거하려다가 오른팔과 손목 등이 압착되어 상해를 입는 사고를 당하였다.

대법원은 P사가 피해근로자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사출기의 고장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다며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근로자파견관계에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에는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나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는 묵시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용사업주의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손해를 입은 파견근로자는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어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이러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불법행위책임에 관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소멸시효(3년) 규정이 적용되지 않음을 명확히 하였다.

 

유해물질 취급 근로자의 뇌출혈 사망 사건(청주지방법원 2013.1.9. 선고 2012가합4524, 4531 판결)

갑 회사의 전기재료사업부 연구개발팀에서 유해물질을 취급하던 연구원 을이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법원은 황산니켈과 황산코발트는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고 나머지 물질도 모두 산업보건규칙에서 정한 관리대상 유해물질에 해당하는데도 작업장에 집진장비나 환기시설, 국소배기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배출된 점 등 여러 사정에 비추어 갑 회사는 근로자들에게 그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여야 할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발병 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을이 근무하는 동안 갑 회사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위 물질에 노출되어 급성 백혈병이 발병하였거나 적어도 발병이 촉진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어 안전배려의무 위반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갑 회사는 유족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다만, 을이 수행한 작업의 특성상 위 물질에 일정 부분 노출될 수밖에 없는 점, 을에게도 위 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회사의 책임을 60%로 제한하였다.

 

도급근로자의 사망사고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죄 인정 사건(울산지방법원 2019. 7. 4. 선고 2018고단3848, 2019고단844(병합) 판결)

피고인 A는 제련업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주로서 C사로부터 납 주조 공정을 도급받아 작업하였고, 피고인 B는 C사 제련소장으로서 소속 근로자 및 수급자의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이고, 피고인 C는 비철금속 제련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사업주이다.

그런데 피고인 A의 회사에 입사한지 20일밖에 되지 않은 근로자 D가 납 주조 공정 후 배출물을 컨테이너에 담아 천장크레인을 이용해 공장 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다가 컨테이너에 가슴을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피고인 A와 피고인 B는 근로자에 대한 안전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고, 피고인 B는 특별관리물질 취급일지 미작성, 안전난간 미설치, 개구부 방호조치 미실시, 화학설비 배관 플랜지 접합부 밀착조치 미흡, 용접전원함 내 충전부 방호덮개 미설치, 이동식 사다리에 미끄러지는 것 방지하는 조치 미실시 등 다수의 안전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도 정기·특별 안전점검에서 적발된 바 있었다.

이에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인정하여 피고인 A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피고인 B와 C사는 각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였다.

규정을 사용자가 위반하면 근로자는 노무제공을 거부할 수 있고,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규정을 사용자가 위반하면 근로자는 노무제공을 거부할 수 있고,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대재해법 시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우리나라 법원은 산업재해 등 사고가 발생한 경우 안전배려 조치 불이행과 사고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면 사용자의 손해배상책임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으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불이행하거나 업무상과실치사상이 인정되면 형사처벌에 처하고 있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함에 따라 사업자 입장에서는 사법 리스크의 차원이 달라졌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사업주가 곧 경영책임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업주의 부재는 기업의 경영 위기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시행이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대기업들만 분주히 움직일 뿐 중소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는 사실상 무방비상태인 듯하다.

중대재해법을 비롯하여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입법의 목적이 사업주에 대한 보복적 처벌이 아니라 재해를 예방하고 줄이는 것이라면 정부와 국회는 중소기업의 안전보건경영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와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하여 중소기업에 대해선 중대재해법 적용을 일시 유예하고 법률자문과 안전진단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재해를 줄이려면 사업주의 관심, 근로자의 실천, 그리고 노동조합의 참여를 통해 안전이 기업문화로 내재화되어야 한다. ‘안전제일(safety first)’ 슬로건은 1906년 U.S. Steel의 게리(E.H. Gary) 사장이 경영방침을 생산제일에서 안전제일로 바꾸고 재해 감소, 품질과 생산성 향상으로 불황을 돌파한 데서 비롯되었다(<산업안전대사전>, 최상복). 중대재해법이 위기가 아니라 경영 패러다임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노사정의 슬기로운 대처와 협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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