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형태에 따른 불합리한 차별 해소돼야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난제 중 하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난제 중 하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용 유연화와 안정화의 충돌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디지털대전환과 더불어 고용 유연화와 일하는 방식의 혁신은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려면 거스르기 어려운 거대한 조류가 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 양극화 대책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그 형식은 국회의 입법, 정부의 행정감독, 노동조합의 요구, 법원의 판결 등 다양하나, 정치환경 변화에 따라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직 해결의 매듭을 찾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 난제 중 하나다. 현 정부는 ‘비정규직 제로화’를 내걸고 비정규직의 사용 규제와 정규직 전환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지난 5년여에 걸쳐 진행된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은 외견상 어느 정도 일단락된 상황으로 보이지만 현장에서의 근로자 간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사내하도급업체 근로자나 외주협력업체 근로자의 직접고용 요구 등 민간부문으로 불길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비정규직 규제를 강화하면 할수록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202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부가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806만 6,000명으로 사상 처음 800만 명대를 돌파하였다. 전체 임금근로자 2,099만 2,000명의 38.4%에 달하는 규모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수준이나 사회보험 수혜율 등 근로조건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태는 기간제이다. 8월 현재 453만 7,000명으로 임금근로자의 21.6%를 차지한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은 기간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노동현장에서는 2년이 되는 시점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자와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자의 희비가 엇갈린다. 이는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한동안 기간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논란이 뜨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시장의 주체들은 편법적으로라도 이에 적응하는 듯하다. 단기계약을 반복해서 갱신하다가 회전문처럼 사람을 바꾸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그런데 국회에서의 입법 논의가 진전을 보이지 않는 사이에 판례에서 주목할만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법원이 일련의 ‘기대권’ 인정 판결을 통해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보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부도 대법원판례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기간제 근로자나 용역업체 사용이 많은 기업에서는 법원의 판결 동향이 인력 운영의 유연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등장하였다.

 

기간제 근로자의 ‘기대권’ 인정 3종 세트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의 경우, 그 기간이 만료됨으로써 근로 관계는 당연히 종료되며,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못하면 갱신 거절의 의사표시가 없더라도 그 근로자는 당연 퇴직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형식상 기간을 정하였지만 실제로는 기간을 정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기간 만료가 인정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판례는 기대권 법리를 통하여 몇 가지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기간제 근로계약의 갱신기대권

기간제 근로자가 근로계약이 갱신되리라는 기대권을 가지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부당하게 갱신을 거절하면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고, 종전의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으로 본다. 기간제법 시행 이후 2년을 넘지 않도록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그 기간이 만료된 경우 사용자는 당연퇴직 처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계약 갱신이 거절된 근로자가 부당해고를 주장하여 법적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계약을 갱신해 온 관행이 있거나 다른 근로자는 갱신되고 특정인만 거절된 경우에는 분쟁이 많이 발생한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갱신기대권 법리를 세우고 일정한 경우 근로계약 기간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계약 갱신을 인정하고 있다.

우선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기간만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당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전의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으로 본다.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계약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와 경위, 계약 갱신 기준 등 갱신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그 실태,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계약이 갱신된 것으로 본다(대법원 2011.4.14. 선고, 2007두1729 판결).

이때 중요한 것이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는지 여부이다. 당사자 간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고 사용자가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 만일 근로자에게 정당한 기대권이 있음에도 사용자가 계약 갱신을 거절하려면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며, 그 증명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

사례를 보자. 지방자치단체 시립교향악단 단원을 교향악단이 설립된 2004년 12월 이후 2년 단위로 위촉계약을 체결하였고, 정기평정을 거쳐 재위촉하면서 한 번도 재위촉이 거부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단원들과 사전 동의나 협의 절차도 없이 전형방법과 응시자격을 바꾸고 재위촉을 거부하여 대규모로 갱신을 거절했다면 이는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결하였다(대법원 2017.10.12. 선고, 2015두44493 판결).

법원은 경영상 또는 운영상의 필요가 있는지, 근거 규정이 있는지, 갱신을 회피하거나 거절의 범위 최소화 노력을 하였는지, 대상자를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선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는지, 그 과정에 차별적 대우가 있었는지 여부 등을 합리적 이유의 판단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가 기간의 제한이 없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을 기대하는 것을 법적 보호를 받는 기대권으로 인정한 법리도 갱신기대권 법리와 유사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간제 근로자가 기간의 제한이 없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을 기대하는 것을 법적 보호를 받는 기대권으로 인정한 법리도 갱신기대권 법리와 유사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기대권

기간제 근로자가 기간의 제한이 없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을 기대하는 것을 법적 보호를 받는 기대권으로 인정한 법리(대법원 2016.11.10. 선고, 2014두45765 판결)도 갱신기대권 법리와 유사하다.

즉,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기간제근로자의 계약기간이 만료될 무렵 인사평가 등을 거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 인정된다.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계약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와 경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의 전환에 관한 기준 등 그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그 실태,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근로자에게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 인정됨에도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여 합리적 이유 없이 정규직 전환을 거절하고 근로계약의 종료를 통보하면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인정되지 않고, 그 이후의 근로 관계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된 것과 같게 된다.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기대권

기간제 근로자가 고용된 용역업체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새로운 용역업체가 업무를 위탁받아 도급업체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경우,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승계 여부가 문제가 된다. 법원은 기간제 근로계약 갱신기대권과 정규직 전환기대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정한 경우 고용승계기대권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2021.6.3. 선고, 2020두45308 판결).

새로운 용역업체가 종전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고용을 승계하여 새로운 근로 관계가 성립될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에게는 그에 따라 새로운 용역업체로 고용이 승계되리라는 기대권이 인정된다. 이 경우 근로자가 고용승계를 원하였는데도 새로운 용역업체가 합리적 이유 없이 고용승계를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에게 효력이 없다.

근로자에게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는지는 새로운 용역업체가 종전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의 고용을 승계하기로 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지 여부 등 구체적인 계약 내용, 해당 용역계약의 체결 동기와 경위, 도급업체에서의 용역업체 변경에 따른 고용승계 관련 기존 관행,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새로운 용역업체와 근로자들의 인식 등 근로 관계와 해당 용역계약을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위 판례가 나온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근로자A는 2009년 10월부터 oo광업소와 선탄관리작업 용역계약을 체결한 여러 용역업체에서 선탄작업을 수행하였다. 용역업체 X는 2018년 3월에 광업소와 4~12월 기간 선탄관리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종전 용역업체 Y에서 근무하던 18명 중 근로자 A를 제외한 17명과 새롭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기존과 같은 근로조건으로 근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A에 대해선 고용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통보하였다. 그러자 근로자 A는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노동위원회와 법원에 구제신청과 소송을 제기하였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고용승계기대권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고용승계기대권 인정 논거로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근로자A는 2009년 10월 이래 여러 차례 용역업체가 바뀌는 과정에서도 근로 기간의 단절 없이 고용 승계를 인정받아 계속 근무하였고, 특히 근로자 A는 2015년 용역업체X에 고용승계 되어 근무한 적도 있어서 용역업체 X가 근로자 A와 용역업체 Y 사이의 고용관계를 승계하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용역업체 X는 이전 용역업체 Y의 선탄작업 근로자 11명 가운데 근로자A를 제외한 10명에 대한 고용을 모두 승계한 사실에 비추어 기존 용역업체의 근로자에 대한 고용승계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2009년부터 oo광업소의 용역업체에서 근로하면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고용승계가 거부된 근로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에 대해선 상반된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에 대해선 상반된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대권 판결과 전략적 인적자원관리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에 대해선 상반된 평가와 입장이 대립한다. 그간 고용 유연화 논란은 해고제한 완화, 비정규직의 사용기간 연장, 파견허용업무 확대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에 의한 규제와 기대권 법리를 중심으로 한 법원의 판결이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들어 법원은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갱신 등 기대권 인정을 확대하는 일련의 판결을 내놓고 있다. 고령자로서 정년퇴직 후 재고용된 기간제 근로자에게 갱신기대권을 인정한 사례(대법원 2017.2.3. 선고, 2016두50563 판결), 1심판결이지만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근로자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갱신기대권을 인정한 판례(서울중앙지방법원 2021.6.25. 선고, 2019가합586061 판결)까지 나오고 있다.

기간제법에도 불구하고 갱신기대권 등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은 기간제근로자의 고용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에 사용자로 하여금 기대권이 인정될만한 신뢰관계가 아예 형성되지 않도록 사전에 회피할 유인을 강화시킴으로써 오히려 고용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과 같다.

‘보호의 역설’이 말해주듯이 불합리하거나 비현실적인 규제의 피해자는 언제나 사회적 약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불필요한 소모적 갈등과 법적 다툼을 방지하려면 근본적으로 근로형태에 따른 불합리한 차별이 해소되어야 한다. 나아가 사용자는 전략적 인적자원관리를 체계화하고, 근로자는 직무능력 향상을 통해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을 높이는 상생의 노동관계가 발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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